운전자 판단 부족을 지자체 의무 소홀(?)

침수 피해 차량 문 또는 창문 열거나 불법주차공간에 세워뒀다면, 보험사 보상 의무 없어

더케이손보, 침수 도로에 무리하게 진출한 과실 뒤로하고 지자체 교통 통제 등 지적

법원 “도로 안정성 충분히 갖춰… 침수된 도로 진출한 운전자 과실 크다”

더케이손해보험이 차량의 침수 피해에 대한 과실 판단을 둘러싸고 자사 자동차보험계약이 돼있는 차량의 운전자 측 과실보다 '부족한 근거'로 지자체의 교통 통제의무 소홀에 보다 큰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의 차량은 기사 속 내용의 차량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차량의 침수 피해에 대한 과실 판단을 둘러싸고 부족한 근거로 ‘남탓하기’에 집중했던 더케이손해보험(대표 황수영)의 사례가 최근 밝혀졌다.

태풍이나 폭우 등으로 차량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는 경우, 해당 차량이 자동차보험 상 자기차량 손해 담보에 가입돼 있다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차량이 침수되면서 블랙박스 기능에 이상이 생겨 정확한 손해사정에 애를 먹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차량이 침수될 당시 문 또는 창문이 열려 있었다면 이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침수 도중 차량의 문이 열리거나 반대로 침수 전에 문이 열려 있었지만 차량이 이곳저곳으로 휩쓸리면서 닫힐 수 있다.

보험사들이 이 부분을 명확히 확인하는 과정 역시 쉽지만은 않아 공정한 손해사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만큼 침수 차량에 대한 손해사정에 있어 보험사들에게 보다 꼼꼼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고, 무엇보다 보상하지 않는 예외적 경우들에 대해 반드시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대로 차량의 문 또는 창문, 컨버터블 차의 선루프(sun roof)가 열린 상태에서 침수가 됐다면 보상하지 않는 경우다. 이어 차량 내부에 보관돼 있던 개인 물품 역시 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할지라도 보상하는 손해에서 제외된다.

주목해 볼 부분은 침수 당시 차량이 어느 곳에 위치했는지 역시 보상 여부에 있어 중요한 판단 요소라는 점이다.

만약 차량이 불법주차공간에 세워져 침수 피해를 입었거나, 침수가 명확히 예상돼 지자체 등에서 운행제한구역으로 지정한 곳에 차량을 통과 또는 주차하면서 피해를 겪었다면 역시 보상이 제한되는 손해에 해당한다.

물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으로 알아둬야 할 내용은 운전자가 침수가 예상되는 도로임에도 이곳에 무리하게 진출하는 바람에 침수 피해를 입게 됐다면, 이 역시 보상이 제한되는 손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경우에 있어 보험사와 피보험자 또는 보험사와 도로 책임자 등 사이에 과실 비율 책정을 둘러싸고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운전자인 피보험자가 침수가 예상되는 지역에 차량을 진입시켜 침수 피해를 입은 경우, 보험사들이 도로의 책임자인 지자체 등에 차량 통행 통제 의무 위반 또는 도로 주변 배수로 관리 태만 등의 이유로 과실을 묻으며 잡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설립해 자동차보험 상품으로 유명한 더케이손해보험의 사례가 그랬다.

자사의 자동차보험계약이 돼 있는 차량이 침수 피해를 입자 운전자의 무리한 침수 도로 진출에 대해 크게 문제를 삼지 않고, 지자체의 도로 침수에 대한 관리 의무 그리고 도로 통제 의무 소홀에 대해 지적하면서 지자체를 상대로 자사가 피보험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집중호우로 인해 침수 피해가 발생하던 충청남도 천안시의 한 도로에서 A씨는 자신의 차량을 몰고 있었다.

사고 당일 아침 9시경 A씨는 도로에 빗물이 급격히 차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보다 더 큰 도로로 나아가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교차로로 진입했지만 이미 도로 위에 불어난 빗물로 차량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다행히도 A씨는 당시 데케이손보와 자동차보험계약을 체결해 자기차량 손해 담보에 가입돼 있었기 때문에 침수 피해로 인해 발생한 차량 수리비 명목의 보험금 3800여만원을 더케이손보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다.

이후 더케이손보 측은 해당 사고가 발생했던 도로와 침수 피해에 대한 지자체의 의무 위반이 A씨의 사고에 기인했다며 해당 도로의 관리자인 천안시 측에 과실 책임을 물었다.

더케이손보 측은 당시 천안시가 A씨의 차량이 침수 피해 겪었던 도로 인근의 배수구를 정비하고 빗물저류 배수시설 등의 시설을 설치해 도로 주변 하천이 범람하지 않도록 방지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천안시가 해당 도로가 침수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에 도로 진입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더케이손보 측은 A씨 차량의 침수 피해 사고에 대한 천안시 측의 과실이 70%에 해당한다며 과실 비율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내려진 법원의 판결은 더케이손보 측의 주장과는 달랐다. 이 사건 재판을 담당한 재판부는 운전자인 A씨가 침수 사고를 예방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에, 그가 일으킨 과실의 비중이 더욱 크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날 A씨 차량의 침수 피해가 발생한 도로 인근의 누적 강수량은 200㎜에 달했다. 또 사고 당일 새벽 시간대부터 A씨 차량의 침수 피해가 발생한 인근에는 호우주의보가 그리고 사고가 발생했던 아침 9시경에는 호우경보가 발효됐다.

특히 사고 발생 2시간 사이에 인근 누적 강수량이 무려 136㎜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차량 운전 상황에서 운전자 역시 도로 침수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는 설명이었다.

다시 말해 집중호우로 일시적으로 도로에 빗물이 급격히 차올랐고, 운전자 역시 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만큼, 차량의 진출을 멈추거나 다른 진출로를 찾아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A씨가 당시 대로에 진출하기 위해 향했던 교차로 상에 빗물이 상당히 차있었고, 차량의 침수 우려를 판단할 수 있었던 만큼 침수 도로에 무리한 진출을 했던 A씨의 과실이 크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A씨로서는 사고 당시 지대가 낮고 침수 가능성이 있거나 이미 침수 중이었던 도로로 굳이 진행하지 않고, 다른 도로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사고 발생을 예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더케이손해보험 본사. (사진=한민철 기자)
재판부의 판결 내용에 따르면, 집중호우에 대비한 배수구 정비 등 천안시의 사고 방지 의무의 위반에 대한 더케이손보 측의 지적과는 다르게 사고 당시 도로의 침수된 부분 근처에는 배수로가 설치돼 있고 그 배수로가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성을 갖춘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시 천안시 측이 집중호우 피해에 대비해 비상근무를 실시하는 한편 피해 지역 인근에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도로 침수로 인한 재해예방 및 피해복구 활동에 힘썼던 만큼 천안시의 의무 위반이 아니며, 이런 상황에서 차량 통행 통제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바라봤다.

결국 더케이손보 측의 주장은 법원으로부터 한 가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차량 침수 피해에 대한 운전자의 과실을 낮추기 위해서는 침수가 우려되는 도로에 무리하게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집중호우가 발생해 도로의 침수가 우려된다면 다른 도로에 진입을 고려해 보거나, 인근 주차지역에서 차량을 안전하게 대피시켜놓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