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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發 ‘은산 분리’ 논쟁 다시 불붙다

규제 혁신이냐, 원칙 파기냐…두 개의 상반된 입장 ‘팽팽’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카카오뱅크에서 전·월세 보증금을 대출받는 과정을 체험한 뒤 질문하고 있다.(연합)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은산(銀産)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제도)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고 여야 정치권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 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해묵은 은산분리 논쟁이 다시 점화했다. 특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 방침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개최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서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 방침을 언급한 것은 필요 이상의 규제를 풀어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 핀테크(Fintech) 산업 발전, 혁신성장, 일자리 창출 등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실제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인터넷전문은행에 주요 주주로 참여한 산업자본이 적극적인 경영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두 갈래의 파장을 낳았다. 인터넷전문은행 쪽에서는 당연히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일부 엇갈린 주장도 제기됐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크게 호응하는 모습을 보인 점도 눈길을 끌었다. 반면 그동안 은산분리를 지지해온 시민단체와 금융노조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은산분리 완화 방침이 공약 파기 논란을 빚자 청와대는 급하게 진화에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대선 공약집에 포함된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항목에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가 인터넷전문은행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 내용이 담겨 있다”며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 발언으로 핫이슈 급부상

사실 지난해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도 은산분리와 관련한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 요지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안착과 성장을 위해서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자본과 기술을 갖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에 주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당초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됐기 때문이다. 우선 ICT와 금융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금융 소비자의 편익을 증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기존 금융권에서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중금리 신용대출을 활성화할 수 있고 은행 점포를 방문하지 않아도 모바일을 통해 간편결제나 송금 등 금융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게 그런 사례들이다.

아울러 새롭고 차별화된 인터넷전문은행이 도입되면 기존 은행권의 금융 서비스 개선 경쟁을 촉발함으로써 금융 산업 전반의 경쟁력 향상을 견인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기대효과였다. 또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통해 인터넷전문은행 자체는 물론 ICT 분야 등 연관산업에서도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한편 핀테크 산업의 활성화와 은행산업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제고될 것으로 기대됐다.

이 같은 효과를 보려면 당연히 ICT 분야에 상당한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한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들 산업자본의 지분 확보에 과도한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게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 주장의 근거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에 비해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이 매우 뒤처졌다. 과거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이 추진됐지만 그때마다 무산된 것도 이유다. 2002년에는 SK, 롯데 등 대기업이 벤처기업과 공동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은산분리 규제와 대기업 중심의 추진 방식에 대한 논란 등으로 흐지부지 끝났고, 2008년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과 관련된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공교롭게도 그 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논의가 중단된 바 있다.

그러다 2015년 정부가 ICT를 활용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으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논의를 재개하기에 이르렀다. 모바일 혁명 이후 세계적으로 ICT와 금융의 융합을 통한 금융 서비스 혁신이 급진전하면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우선 현행 은산분리 제도하에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2개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인가하고 추후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인터넷전문은행을 추가로 인가해나간다는 방침을 세우게 됐다.

현재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에 각각 ICT 기업으로 참여한 주요 주주인 KT와 카카오는 산업자본 지분율 상한선 10% 규정에 묶여 있는 데다 그마저도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지분은 4%밖에 되지 않는다. 양대 인터넷전문은행에 기술 기반을 제공하는 핵심 주주 자격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경영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 위한 규제 완화

최근 케이뱅크는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시도했지만 주요 주주들이 불참하면서 실패로 끝난 바 있다. 3대 주주인 우리은행, NH투자증권, KT만 고작 300억원을 납입하는 데 그쳤다. 케이뱅크는 약 20개사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지만 월등한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자본조달에 관해 주주 간에 합의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와 관련해 심성훈 케이뱅크 대표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자본 확충이 쉽지 않다”며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우회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지배적인 주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공감대가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아예 은산분리 완화를 당론으로 정했다. 또 그동안 은산분리를 당론으로 고수했던 더불어민주당도 입장을 바꾸고 있다.

이미 여야 의원들은 인터넷전문은행에 주주로 참여한 산업자본에 대한 지분 보유 한도를 34~50%까지 대거 높여주는 은산분리 완화 법안 5건을 발의한 상태다. 이들 법안은 다만 대주주에 대한 대출이나 대주주가 발행한 증권 매입을 제한함으로써 은산분리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차단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를 언급하고 여의도에서 은산분리 완화 법안 마련을 추진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 업계도 반색하고 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지난 8월 9일 실적 발표 행사에서 “은산분리 완화가 확정되면 추가 지분 취득으로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다”며 추가 지분 확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은산분리 완화 추진 과정에서 적지 않은 파열음도 예고되고 있다.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한 은산분리 완화 조치가 금융 소비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의 대원칙을 허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연합)
지난 7일 정의당 정책위원회, 경실련, 참여연대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와 여당의 은산분리 완화 추진을 강력하게 반박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은산분리 규제는 금융의 공공성 확보 및 재벌ㆍ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일 뿐 아니라, 금융산업의 건전성 유지라는 금융감독 고유의 목표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감독 원칙”이라며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해 금융 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농후하기 때문에 은산분리 규제는 중대하고 명백한 사유가 없는 한 함부로 완화할 수 없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는 2013년 벌어진 이른바 ‘동양그룹 사태’를 예로 들면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동양그룹 사태는 동양그룹이 재무상태 악화로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기업어음(CP)을 대거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안긴 사건이다. 박상인 교수는 동양그룹 사태를 ‘재벌이 금융 계열사를 사금고(私金庫)처럼 이용하면서 계열사의 동반 부실화를 야기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산업자본의 ‘사금고화’ 우려는 여전

그는 “동양그룹 사태는 금산(金産)복합 출자구조의 문제점과 금산분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동양증권이 증권사가 아니라 은행이었다면 동양그룹 사태는 특정 재벌의 몰락에서 끝나지 않고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를 야기했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금산분리는 은산분리보다 더 포괄적인 규제 개념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또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를 제한하는 게 금산분리다. 우리나라는 금산분리와 관련한 규제가 강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이날 토론회에서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핀테크 혁신 등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인터넷전문은행도 은행이므로 ICT보다는 여신관리 등 위험관리 업무가 더 중요하며,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면 다른 일반 은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은산분리는 매우 민감하면서도 복잡한 이슈다. 또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각국 금융당국에서도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에서도 대체로 은산분리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한국만큼 은산분리 규제를 철저하고 완고하게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은산분리 규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할 경우에 사금고화 등 심각한 폐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한 국가들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앞둔 지난 2015년 ‘금융과 ICT기술의 융합을 위한 무(無)규제 원칙: 금산분리에 가로막힌 핀테크 산업 성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핀테크 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과도한 규제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미국, 일본처럼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금산분리 제도와 유사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미국은 전통적인 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가 매우 강한 편이지만, 비은행 금융회사나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덕분에 제너럴모터스(GM) 등 산업자본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소유하고 있다. 일본도 비금융기관이 은행 지분을 20% 이상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소니 같은 비금융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진출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정부의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추진으로 다시금 은산분리, 나아가 금산분리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춰 유연한 금융규제 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혁신과도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대목이다. 향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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