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기술 훔친 삼성 제품’ 비난 가능성도

삼성전자로부터 영업비밀을 침해 당했다는 중소기업 A사

A사,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와 무선영업부 임원 등 상대로 민사소송 제기

삼성전자 “A사가 제공한 자료, 영업비밀 해당하는지 의문” 반박

삼성전자가 중소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탈한 의혹을 사며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삼성전자가 한 중소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탈한 의혹을 사며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해당 중소기업 측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삼성전자에 자사가 개발한 기술의 제휴를 제안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삼성전자 직원에 제공했지만 협상이 결렬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 직원이 자료 중 핵심 아이디어를 재가공해 설계 가이드를 만들었고, 이를 상부에 보고한 뒤 삼성전자 제품 생산에 적용됐다는 주장이었다. 삼성전자 측은 모든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 제품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침탈한 결과물이라는 비난에 휩싸일 상황에 놓였다.

마이크로웨이브 및 무선통신용 안테나 등의 전문 개발 업체인 A사는 지난 2010년 모바일 기기의 블루투스(Bluetooth)와 와이파이(Wifi) 안테나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특허청에 해당 기술에 대한 상표권도 등록했고, 현재 LG전자와 팬택 등의 전자회사에서 해당 기술에 대한 라이선스를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도 현재 당사가 개발‧생산하는 모바일 제품 중 블루투스 안테나 등 A사의 기술과 유사한 기능이 탑재돼 있다.

그런데 A사는 삼성전자 측의 해당 제품들이 자사 신기술의 핵심적인 부분을 부당하게 빼낸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A사가 자사의 블루투스‧와이파이 안테나 기술과 관련돼 삼성전자 측과 제휴를 맺으려 했지만 결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측이 자사로부터 제공받은 기술제안서에서 핵심 아이디어만을 빼낸 뒤 이를 재가공해 삼성전자 제품 설계에 써먹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사 관계자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관계자 B씨와 만나 자사의 블루투스‧와이파이 안테나 기술 관련 제안을 했다.

B씨는 지난 2014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승진해 현재 임원급 연구위원으로도 재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당시 A사 측은 기술 거래 성사를 위해 해당 기술의 내용이 상세히 담긴 제안서를 B씨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A사 입장에서는 아쉽게도 삼성전자와의 거래 협상은 없는 일이 됐다.

이후 A사에서는 삼성전자에서 개발 및 출시한 제품의 안테나 기능 중 당시 B씨에게 건넸던 제안서 내 핵심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기술이 적용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A사 측은 B씨를 비롯한 삼성전자 측이 거래 교섭 과정에서 자사의 기술적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영업상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확신했다.

결국 A사의 대표이사는 지난해 1월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과 B씨 등 삼성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에 따른 소송을 제기했다. 소 제기 1년을 넘긴 현 시점까지도 A사와 삼성전차 측은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A사 측은 B씨가 의도적으로 자사 기술을 침해한 정황이 명백하며, 이번 사건이 단순히 B씨 개인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사업부와 개발팀 임원들이 조직적으로 빚어낸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우선 A사 측은 B씨의 당시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차)목의 신설 조항을 위반한 것에 정확히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차)목에서는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신설 조항에서는 ‘사업제안과 입찰, 공모 등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기술적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그 제공목적에 위반해 자신 또는 제3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해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하게 하는 행위’ 역시 부정경쟁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타인의 영업비밀을 통째로 침탈하거나 베끼지 않고 해당 영업비밀과 관련된 정보를 세탁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부정경쟁행위에 속한다는 의미다.

물론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자가 당시 이미 그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거나 그 아이디어가 동종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A사는 B씨에 기술 제휴를 제안한 이후에나 특허청에 해당 기술에 대한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때문에 B씨와 삼성전자가 A사의 기술을 빼내지 않고, 이중 일부 아이디어만을 빼내 재가공 했다고 할지라도 부정경쟁행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대법원이 지난 1998년 6월 선고한 판결(사건번호 98다1928)과 2009년 10월 선고한 판결(2008도9433) 등의 판례에서도 기초자료를 가지고 새로운 것으로 변형해 만든 자료를 사용한 것 역시 ‘간접사용’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시돼 있다.

원래 자료를 그대로 쓰거나 한 번 세탁해 사용한 것 모두 타인의 자료를 기초해 만든 것이라면 동일하게 침탈한 것으로 본다는 설명이었다.

A사 측은 이번 사건에 있어서 B씨가 자사 측으로부터 받아간 기술제안서 내의 내용을 변형 및 재가공해 새로운 설계 가이드를 만들었고, 삼성전자 측에서 이를 통해 기술 개발 및 제품 생산에 사용했다면 간접사용으로 삼성전자 법인 역시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B씨는 A사 측으로부터 제안서를 제공받은 후 삼성전자 블루투스 안테나 설계 가이드를 작성했고, 이를 삼성전자 사업부장에 보고한 뒤 전 개발부서에서 사용하도록 배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B씨가 “사업부장님 지시로 안테나 적용가이드를 배포한다”라는 내용과 함께, 관련 첨부파일 및 유의사항이 포함된 이메일을 전 개발실에 전송한 증거가 제시됐다.

이에 A사는 B씨가 자사로부터 제공받은 제안서 내 핵심 아이디어 3가지를 빼내 세탁한 뒤 블루투스 안테나 설계 가이드를 제작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역시 이번 사건의 소송당사자로서 소송 결과에 따라 책임론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연합)

무엇보다 A사 측 제안서 내의 기술과 B씨가 작성한 설계 가이드 상 기술의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도 B씨가 A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주장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측은 A사 측이 자사와 기술 제휴 협상을 시도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고, 해당 자료 내용 중 B씨가 작성한 블루투스 안테나 설계 가이드의 내용과 유사한 부분도 포함돼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다만 A사 측 자료에는 B씨가 작성한 가이드상의 핵심 아이디어 등이 결여돼 있고, A사 측 자료 내용만으로는 B씨가 설계 가이드를 작성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삼성전자 측은 A사가 B씨에 제공한 자료가 과연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A사로부터 제안받은 기술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과 추가로 확인할 부분이 있어서 당사에 특허 또는 기술적으로 명확히 정리된 자료를 요청했지만, A사가 이를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A사 측은 “이번 사건은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통해 라이선스 협상 목적으로 받을 것을 다 받아놓고 이를 결렬시킨 다음 받은 기술을 세탁해 사용했다는 것이 문제”라며 “현재도 삼성전자는 A사가 당시 제안한 기술을 세탁해 연 100만대씩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