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직군 노동자들 “불법파견 덮으려 거짓 서명 강요”

IBK기업은행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법파견' 논란이 쟁점이 되고 있다. 사진은 기업은행 본점.(사진=연합)

강민경 기자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이 비정규직(용역업체 소속) 노동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정규직 전환을 발표한 이후 자회사(인력 전문 업체) 간접고용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경비직군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졌다. 경비직군 노동자들은 “기업은행 내에 만연한 불법파견 행태가 이슈화되면 직접고용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행 측이 용역업체를 시켜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이 없었다’는 문서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은행 경비직군 노동자들은 본인들이 용역업체 소속임에도 기업은행 측의 직접 업무 지시가 만연하다고 주장한다. 기업은행 측이 경비직군에게 직접 지시하는 업무는 경비업 이외에 은행 임원 및 행사 외빈 관련 의전 업무, 택배 업무, 주차장 관리 업무, 차량 관리 업무, ATM기 및 동전교환 업무, 각종 세금 처리 및 심부름, 고객 응대 등이다. 이는 ‘불법파견’에 해당한다.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합법적 파견’은 ‘허가를 받은 파견업체가 노동자를 고용한 후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용 사업주에게 노동자를 파견해 사용 사업주의 지휘감독 하에 노동을 제공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위와 같은 ‘불법파견’은 위장도급 하에서 이뤄지는 사례다. 민법 제664조에 따르면, 도급은 ‘당사자 일방(용역‧하청업체)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발주‧원청업체)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약정하는 계약’인데, 이와 상이하게 형식적으로는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노동자의 근로조건 결정 및 업무지휘 감독 등에 대해서는 용역업체가 아닌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지시하는 것 등이 불법파견에 해당된다. 또 경비업법에 의해 용역업체 경비원에게 경비 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지시하는 것도 위법의 문제가 된다.

용역업체 소속 경비원에게 ‘위법적 업무 지시’

지난해 12월 기업은행 경영지원그룹장이 각 지점에 발송한 공문(왼쪽)과 최근 기업은행 용역업체가 경비직군 노동자들에게 서명을 요구하는 해당 문서.(자료=공공연대노조)

실제 지난해 12월 7일 기업은행 경영지원그룹장 명의로 각 지점에 발신된 공문에는 ‘경비‧차량 안전과 관련해 몇 가지 당부 드립니다. 첫째, 경비원의 경비 업무 외 업무 지시 금지입니다. 특히 서류 작성, 차량 운전, 우체국 심부름 등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등의 문구가 적시돼 있다. 해당 서류 자체가 이미 불법적 업무 지시가 만연한 은행 내 고용형태를 방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노동자들은 주장한다.

배재환 기업은행 노동자대표단 간사(경비직군 대표•공공연대 서울경기지부 기업은행지회장)는 “경비원들은 용역업체 소속인데 원청업체인 기업은행 직원들이 경비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 있고, 이는 명백한 불법파견”이라며 “법적으로 원청업체는 노동자에게 계약 업무 외의 기타 업무를 지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불법파견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의 파견을 회피할 목적으로 원청업체가 도급 형식을 빌려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례가 잦은데, 이런 경우엔 노동자에 대한 기타 노동법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불법 파견된 노동자 보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달 초부터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다. 기업은행 경비직군 노동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현재 5개 용역업체에 분산 소속된 경비직군 748명을 대상으로 각 용역업체가 일사불란하게 노동자들에게 특정 문서를 내밀며 서명을 강요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해당 문서에는 ‘경비 업무만 실시하고 있음’과 ‘경비 업무 외 업무를 하고 있음’이라는 두 개의 문구 옆에 각각 공란이 있었다. 해당되는 공란에 체크를 한 후 서명을 해야 하는 문서다. 그런데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용역업체 측이 조사 용지를 임의로 수정한 후 가져가거나 “경비 업무만 하고 있다는 공란에 체크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너 말고는 다 서명했다” 등의 협박까지 일삼았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서명 안하면 불이익 있을 것” 협박도 받아

경비직군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의 서명 강요는 기업은행 측의 지시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견 근로자 보호법에 ‘불법파견이 증빙되는 경우 원청업체가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직접고용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근거다.

배재환 간사는 “불법파견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기업은행 측이 이미 정해놓은 자회사로의 간접고용이 불가능하게 될 것 같으니 용역업체를 통해 경비직 노동자들에게 서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업은행 측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심부름을 비롯한 잡일을 시켜놓고 이제 와서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은행 측의 편법적 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지적했다. 김세진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책국장은 “기업은행 측이 용역업체 측에 서명을 받으라는 지시를 했다면 용역업체는 이를 거부할 수 없고, 용역업체의 강요에 노동자들은 더더욱 거부할 수 없는 구조”라며 “기업은행 측이 용역업체를 통해 그러한 서명을 받았다면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업은행 측은 경비직군 노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불법파견 및 서명 강요 논란에 대해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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