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규제 빠져나간 회사들에게 ‘그물망’ 던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8월2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

강민경 기자

지난 8월 24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입법예고 브리핑을 갖고 재벌 규제 강화 및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골자인 개정안을 설명하며 입법을 예고했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은 1980년 공정거래법이 만들어진 이래 38년 만의 일이다.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전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에 비해서는 완화됐지만 전반적으로 현행 체제에 비해 압박이 심해졌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기업별로는 일부 조항 변경에 타격을 입거나 우려했던 규제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등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공정위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적극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대기업 총수 일가가 국내 계열사에 대해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상장사 30% 이상, 비상장사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해당 회사들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공정위는 앞으로 규제 기준이 되는 총수 일가 지분 보유율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규제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사익편취 규제의 기준이 되는 총수 일가 지분 보유율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둘 다 ‘20% 이상’으로 일원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이들 회사가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도 사정권에 두기로 하면서 규제 대상을 확대했다. 규제 목적상 상장사와 비상장사간 지분율 기준에 차이를 둘 이유가 없고, 규제 격차에 따른 규제 회피 사례가 발생한다는 점 등이 지분율 조정의 주된 근거로 작용했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231개사에서 607개사로 늘어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익편취 규제 대상은 현행 대비 약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규제 대상(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상장사와 20% 이상 비상장사 등) 231개사에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 30% 미만인 상장사 27개사와 총수 일가 지분율 50% 초과 보유 자회사 349개사 등 376개사가 모두 더해지면 총 607개사로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 사익편취 규제 기준에 해당하는 회사는 47개 기업집단 소속 231개사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37개사가 제외됐으나 41개사가 다시 추가되면서 4개사가 증가했다. 현행 기준으로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많은 기업집단은 △중흥건설 35개 △호반건설 16개 △효성 15개 순이다. 반면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적은 기업집단은 삼성ㆍ신세계ㆍ두산ㆍ한진ㆍ금호아시아나 등으로 각 1개씩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사익편취 규제에 공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 “현행 공정거래법상 제도에 사각지대가 많아 실효성 및 정합성 제고를 위해 개정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2013년 처음 도입된 사익편취 규제의 경우, 당시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한해 상장사 및 비상장사를 차등화해 제도가 설계됐으나 이후 일부 지분 매각 및 자회사 변경 등 각종 규제 회피 사례가 이어졌다는 것이 공정위 측 주장이다.

지난달 27일 공정위가 배포한 ‘2018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에 따르면,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에 속한 회사는 376개에 달했다. 현재 규제 대상 231개를 크게 웃도는 결과였다.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 30% 미만인 상장사는 19개 기업집단 소속의 27개사였다. 삼성그룹의 삼성생명, 현대차그룹의 이노션ㆍ현대글로비스, GS그룹의 GS건설, 신세계그룹의 신세계ㆍ신세계인터내셔널ㆍ이마트 등이다.

규제 기준에 거의 근접한 지분율을 갖고서도 사각지대에 숨어 있던 상장사에 대한 공정위의 별도 언급도 이어졌다. 이노션(29.99%), 현대글로비스(29.99%), KCC건설(29.99%), 코리아오토글라스(29.90%), HDC아이콘트롤스(29.89%), 태영건설(29.95%), 영풍(29.74%) 등 7개사가 이에 해당됐는데, 이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29%와 30% 사이였다.

효성그룹이 ‘규제 사각지대 회사’ 가장 많아

아울러 이번 개정안에 새로 신설된 규정인 자회사 지분율 관련 규제 대상은 349개에 해당했다. 이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50%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242개사(47개 기업집단 소속)와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 30% 미만인 27개사가 50%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107개사(19개 기업집단 소속)를 포함한 집계다.

위 통계를 기반으로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 회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집단은 효성(27개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다음으로 △유진 21개 △넷마블 21개 △중흥건설 19개 △호반건설 18개 순이었다.

공정위는 다수의 기업집단이 이러한 사각지대를 이용해 규제를 회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개정안이 입법돼 상장사 및 비상장사 모두 20% 이상으로 지분율 기준을 일원화하고 이들 회사가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이 되면, 사각지대가 사라지면서 건전한 기업문화가 정립될 것이라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반면 재계는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 강화가 ‘기업 옥죄기’ 수준이라고 반발한다. 특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기업집단의 경우 자회사에 대한 규제 확대에 따라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롯데, SK, LG 등을 비롯한 지주회사의 비상장 자회사 대부분이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해당된다”며 “정부가 애초에 지주회사의 책임 제고를 위해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라고 압박해놓고 이제 와서 그것을 규제하겠다고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소 미흡한 규제 기준으로 인해 해당 개정안에서 또 다른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총수 일가 지분율을 산정할 때 직접지분에 간접지분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총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은 “‘자회사 50% 초과 지분 규제’ 같은 경우엔 또 다시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구역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총수 일가의 간접지분을 포함해야 한다”며 “간접지분을 통해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꼼수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또 “해당 법 자체가 기업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닌 총수 일가를 향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치진 않을 것”이라며 “총수 일가가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 사익을 편취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인데 이것으로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제도 개편안에는 찬반 엇갈려

한편, 지주회사 제도 개편을 놓고는 ‘공정위가 특정 기업에 대한 봐주기를 감행했다’는 등의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지주회사가 보유하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장사는 20%에서 30%로,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다만 새로 설립되거나 전환되는 지주회사만 해당 요건을 따르고, 기존 지주회사의 경우엔 신규로 자회사 및 손자회사를 편입하는 경우에만 강화된 요건이 적용된다. 기존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자발적으로 상향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공정위의 대안이다.

지주회사 규제와 관련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브리핑에서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곳은 2개 그룹밖에 없다”며 “이 2개 그룹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는 사전 규제를 적용하기보다 신규 지주사로 전환하는 경우에 해당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이러한 지주회사 제도 개정안이 특정 지주회사에게 수조원대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규제 대상이 되는 기존 지주회사는 55개이고 그 중 추가지분 매입이 필요한 자회사는 100개, 손자회사는 82개로 확인됐다.

공정위 측은 “2개 지주회사에 소속된 3개의 자회사 및 손자회사에서 다른 지주회사에 비해 추가 지분 매입이 현저히 과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2개 지주회사에 실질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용진 의원은 이에 대해 “‘현저히 과다하게’라는 것은 공정위의 자체적 판단일 뿐”이라며 “공정위가 2개 지주회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곳은 SK그룹과 셀트리온그룹인데, 이 2개 그룹을 위해 기존 지주회사 전체를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이는 재벌개혁 정책의 후퇴”라고 비판했다.

순환출자 규제를 놓고도 공정위의 재벌개혁 의지가 도마에 올랐다. 공정위는 신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기업집단에 한해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시민사회 및 재계 등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현재 순환출자 고리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의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지적과 “예외적 사례에 대한 딱딱한 법률이 경제민주화 실패를 야기했기 때문에 경직적인 사전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옹호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에 공정위는 “규제 실익과 정부 정책을 신뢰한 기존 지주회사 및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해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을 논의한 것”이라며 “예외 사례에 집중된 과잉규제에서 탈피해 다양한 부처와 협업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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