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동의 없이 고객사 이관 요청 확인… 화풀이는 사업주에

CJ대한통운이 무고한 택배집배점 사업주에 무리한 채무를 지우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CJ대한통운(대표 박근태)이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없이 무고한 택배집배점 사업주에 수천만원의 채무를 지우려 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택배기사 및 대리점주들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만큼, 대한통운은 이번 사건으로 더 큰 비난을 받는 동시에 또 한 번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CJ대한통운(이하 대한통운)의 택배집배점으로 등록되면 특정 지역을 책임배송지역으로 지정해 고객사 및 일반고객들에 대한 화물운송 업무를 할 수 있다.

택배집배점 계약에 따라 대한통운은 집배점 측에 화물의 개발, 집하, 배송, 기타 부수업무 등을 수행함에 있어 생기는 수수료와 함께 매월의 운임 정산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반대로 집배점 운영자는 운송 업무로 발생한 매출금을 익일 대한통운에 입금해야 한다. 계약이 이뤄지기 전에는 대한통운 측에 일정의 이행보증예치금을 예치해야 하며, 택배업무 위수탁에 따른 손해배상채무 지급보증을 위해 이행(지급)보증보험 명목의 금액을 담보로 설정해야 한다.

지난 2014년 말 A씨는 지인인 B씨의 소개로 대한통운과 위와 같은 택배집배점 계약을 맺고, 서울 강북지역 인근을 배송지로 하는 대한통운 집배점을 개설했다.

A씨는 해당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 대한통운 측에 수백만원의 이행보증예치금을 이체했고, 곧바로 보증보험사와 이행(지급)보증보험 계약을 체결해 보험증권을 발급받아 역시 대한통운 측에 제출했다.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 A씨의 택배집배점은 사업자가 A씨의 명의로 돼 있었지만, 그는 집배점의 영업과 관리 등의 총괄업무를 B씨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로부터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기간 동안 B씨는 자신의 측근들이 운영하고 있던 집배점의 신용고객사 10여곳을 A씨의 집배점으로 이관 등록했다. 이를 통해 해당 고객사들은 A씨의 집배점과 새롭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당시 B씨는 그 과정에서 대한통운 측 지점 담당자에게 고객사 이관 등록에 대해 구두로 요청해 확인을 받았다. 다만 그는 ‘명의상 사업자’에 불과했던 A씨의 동의를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수의 고객사가 발생한 만큼 A씨의 집배점의 매출금과 정산금 역시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2016년 가을까지 이 집배점이 대한통운 측에 미납한 운송매출금만 무려 5500만원이 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통운 측은 계약상 미입금 행위에 따른 제재 조치에 들어갔다. 실제로 대한통운과 A씨가 맺은 택배집배점 계약서 조항에 따르면, 집배점 사업자가 운송매출금을 신고의무를 위반하거나 미입금 행위가 월간 3회 이상 발생하는 등의 경우 계약해지 또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상표 사용권 회수 등의 제재를 할 수 있었다.

결국 지난해 초 대한통운 측은 A씨 집배점에 대한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미납한 운송매출금 5500여만원을 입금해 달라는 취지의 통보서를 보냈다. 그러나 A씨 측은 이를 이 미수금을 끝까지 입금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대한통운 측은 이 미수금을 자사에 대한 A씨의 손해배상채무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 대한통운은 A씨가 계약과정에서 이행(지급)보증보험을 계약한 보증보험사에 A씨의 채무불이행을 사유로 5500여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본사. (사진=한민철 기자)

그런데 보증보험사가 해당 청구 사실을 A씨에 통보하자 A씨는 이 보험금의 지급을 보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A씨는 자신이 5500여만원의 미납금을 대한통운 측에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느 날 집배점의 여신한도가 대폭 감소한 것을 깨닫고 대한통운 지점 담당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는 B씨가 자신의 동의도 없이 타 집배점의 고객사들을 이관 등록한 뒤 상당액의 운송매출금을 미납해 비롯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해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해 보자면 A씨 집배점이 대한통운에 미납한 5500여만원의 매출금은 이관된 고객사들로 인해 생긴 것으로, A씨는 B씨에게 고객사 이관 등록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이를 동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5500여만원의 미수금을 대한통운 측에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아닌 B씨나 그로부터 고객사 이관 등록 요청을 확인한 대한통운 지점 담당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A씨는 해당 대한통운 지점 담당자에게 B씨의 고객사 이관 요청을 확인해 준 것을 두고 강력히 항의했고 해결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대한통운 측은 A씨가 B씨에 집배점의 영업 및 관리 등 총괄업무를 맡긴 사용자 또는 명의 대여자인 만큼, 상법 제24조 등에 따라 A씨 역시 B씨의 과실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대한통운 측은 A씨가 집배점 총괄업무를 맡기기 위해 B씨에 투자금을 지급하고 서로 택배수입금을 배분한 점 등에서 비춰봤을 때, B씨가 주도한 고객사 이관 등록 역시 A씨의 대리권을 수여해 이뤄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자 A씨는 대한통운을 상대로 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자신이 대한통운이 주장하는 미납금 5500여만원에 대한 채무가 없다는 사실을 법원의 판단으로 확정 짓겠다는 의미였다.

고객사 이관 등록 확인 때, 사업주 동의 여부 ‘서면’으로 남겼어야

지난달 중순 결론이 난 이 사건 재판에서 법원은 대한통운 측 주장을 단 한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법원의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그리 오래 걸리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A씨와 대한통운 사이의 가장 큰 쟁점은 B씨가 고객사를 이관 등록한 사실을 A씨가 인지했는지, 즉 당시 이관 등록이 적법 또는 유효했는지 여부였다.

그런데 이미 사건 초기부터 B씨는 당시 이관 등록이 A씨의 요청이나 동의가 없이 단지 대한통운 지점 담당자에게 구두로 요청해 확인받았을 뿐이라고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사건 관계자가 인정한 부분만 보더라도 B씨가 이관한 고객사에서 비롯된 미수금에 대해 A씨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면, B씨의 고객사 이관 등록은 적법 또는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이 상식적이었다.

특히 대한통운의 주장처럼 B씨가 A씨로부터 집배점의 총괄업무를 대리한 만큼 연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분 역시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가 B씨와 집배점 업무 수행을 위해 맺은 계약상 B씨의 의무는 A씨의 집배점이 담당하고 있는 거래처에 물품을 인계하며, ‘A씨의 동의 하에’ 택배물류에 대한 영업 활동 및 대리점 관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집배점 사업주 A씨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고객사 이관 등록은 A씨의 동의 또는 요청이 없었고 그의 의사조차 확인하는 절차 역시 없었던 만큼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A씨에 물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오히려 법원은 대한통운의 확인의무 소홀에 큰 책임이 있다고 바라봤다. 대한통운 측은 신용고객사의 이관 등록을 함에 있어 인수자는 물론 인계자의 이관 요청 동의의사를 고객사 이관동의서 등의 서면으로 확인해야 했다.

여기서 인수자는 A씨의 집배점이었고, 인계자는 B씨 측근들이 운영하고 있던 집배점이었다.

박근태 CJ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장. (사진=연합)

그러나 B씨가 고객사 이관 등록을 요청할 때 인수자인 A씨의 동의뿐만 아니라 인계자인 B씨 측근들의 동의 의사 역시 서면으로 반영돼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또 대한통운 측 지점 담당자가 B씨로부터 고객사 이관 등록 요청을 받고, 이를 사업주인 A씨에 이를 직접 확인하거나 B씨가 A씨의 업무를 대리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도 파악하지 못한 점은 대한통운 측의 과실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없이 그리고 고객사 이관 등록 과정에서 필수적인 인수자 및 인계자의 동의가 구두가 아닌 서면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모르고 무고한 사람에게 막대한 채무를 지우려 했던 대한통운의 행태는 상당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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