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무고 주장에도 해고 강행…‘연이은’ 성추행 사건 논란 의식했나

한국씨티은행이 사내 성추행 혐의를 받고 면직 처분을 받은 전 직원으로부터 소송 후폭풍에 휘말렸다. 사진은 한국씨티은행 본점.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한국씨티은행이 사내 성추행 혐의를 받고 면직 처분을 받은 전 직원으로부터 ‘징계권 남용’ 등으로 법적 소송에 휘말렸다. 해당 직원은 무고함을 호소했음에도 씨티은행 측이 무리하고 성급하게 해고 처분을 내렸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씨티은행은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해 정당하게 징계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역시 씨티은행 내에서 일어진 여직원 몰카 사건과 불과 몇 개월의 차이를 두고 이뤄진 점을 비춰 봤을 때, 씨티은행 내부의 성추행 사건 예방 및 각종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씨티은행(이하 씨티은행)의 직원이었던 남성 A씨는 올해 초 사측으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약 두 달 전 직원들과의 회식 중 동료 여직원 B씨를 노래방에서 성추행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B씨는 A씨로부터 성추행당했다는 사실을 주변 동료들과 사측에 알렸고, A씨는 성추행 사실을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씨티은행 검사부는 즉각적인 사실 확인 절차에 들어갔고, 사고 당사자인 A씨와 B씨 그리고 주변에 있었던 회사 동료 C씨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또 사고 당일 현장에서 찍혔던 사진 자료들도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씨티은행 측 징계위원회는 A씨에 대한 면직 처분을 내렸지만, 최근 A씨는 씨티은행을 상대로 해고무효 및 수천만원의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여전히 A씨 자신은 B씨를 성추행하지 않았으며, 당시 씨티은행 측이 B씨와 C씨의 진술에 지나치게 신빙성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결백함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는 지적이었다.

A씨 측은 지난달 진행된 이 사건 재판에서 B씨가 성추행 사실을 사측에 보고하며 일이 커지자 당시 B씨 측에 보냈던 모바일 메신저 등을 자신의 무고함에 대한 증거로 제시했다.

당시 A씨는 B씨에 성추행과 관련 허위 주장을 멈출 것을 촉구하는 취지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다수 보냈다. A씨는 자신이 절대로 성추행을 하지 않았으며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을 담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A씨 측은 씨티은행 측의 당시 대처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자신에 대한 해고가 징계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A씨 측의 징계권 남용 주장처럼 씨티은행이 그를 해고하는 과정에서는 다소 문제 삼을 부분이 있었다.

본지가 지난달 취재해 보도한 국내 한 대형건설사에서 벌어진 직원들의 성폭행 사건의 사례에 따르면, 이 건설사는 피해자인 여직원으로부터 피해 사실을 들은 뒤 피의자로 지목된 남직원을 비롯해 성폭행 당일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진술을 모두 꼼꼼히 검토했다.

무엇보다 이 건설사는 사고 당사자와 관련자들의 진술뿐만 아니라 피의자인 남직원이 피해자 여직원을 부축해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장소까지 데려가는 폐쇄회로(CC)TV 영상도 확보했다. 이와 같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자 피의자인 남자직원 역시 성폭행 사실에 대해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고, 이후에야 사측도 그에 대한 해고 결정을 내렸다.

반면 이번 씨티은행 성추행 사건의 경우 A씨 측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지만,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사측이 지나치게 B씨와 C씨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A씨가 B씨를 성추행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A씨 입장에서는 당시 씨티은행 측이 빠르게 사건을 마무리 하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A씨 측은 씨티은행의 면직 처분이 징계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연합)

이에 씨티은행 측은 당시 A씨와 B씨 성추행 사건에 대해 즉각적 조사와 조치를 진행했고, 검사부 차원에서 A씨의 진술과 B씨 및 C씨 등의 진술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A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B씨가 A씨로부터 성추행으로 의심되는 행동을 당한 직후 곧바로 C씨 등에 진술한 내용, 그리고 A씨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 자료 등도 참고해 신중히 징계 결정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물론 아쉽게도 해당 사진 자료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고, 앞서 언급한 건설사의 사례와는 다르게 노래방 현장에서 CCTV를 확보해 조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씨티은행 측은 성추행 사건이 밀폐된 공간에서 직접적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일차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한 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 이후에야 목격자의 진술과 사건 전후 상황 등 다양한 정황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A씨 측은 씨티은행 측의 이런 주장 자체가 조사의 공정성을 잃고 강력히 무고함을 주장하는 자신을 끝내 해고시켰다며 소송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A씨에 대한 해고 결정이 피해자로 지목된 B씨가 A씨를 형사고소하거나 씨티은행 측이 그를 고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씨티은행 측 소송대리인은 A씨와의 이 사건 재판에서 B씨의 A씨에 대한 형사고소가 이뤄졌는지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고소 자체를 검토하고 있고, 확인은 안 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씨티은행 측은 자사 소송대리인의 설명과는 다르게 이미 B씨가 A씨를 형사고소 해서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며 사측에도 수사협조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사건 발생 반년을 훌쩍 넘긴 기간 동안 아직도 경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며 사측에 수사를 단지 요청 중인 사항이라면, 경찰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A씨에 대한 해고 결정이 이뤄졌다는 의미였다.

물론 직장 내 성추행 또는 성폭행, 폭행 등의 사건이 일어나면 사내 조사와 징계위원회를 통해 피의자 직원의 해고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향후 논란의 여지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일 뿐 피의자로 지목된 이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면, 수사기관의 정식 수사를 통해 결론을 낸 뒤 면직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씨티은행 측은 “형사절차와 징계절차는 별개의 절차이며, 징계위원회는 확보된 자료에 기해 충분히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얄궂게도 씨티은행은 A씨와 B씨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몇 달 전 당시 차장급 직원이 근무시간에 여직원의 특정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하다 적발돼 강한 제재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씨티은행은 A씨 성추행 사전 직전에도 사내 몰카 사건으로 잡음이 일기도 했다. (사진=연합)

당시 관련 사고가 언론에도 보도돼 금융 업계에서도 회자가 됐던 만큼,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는 씨티은행 차원에서는 큼직한 성추행 사고 이후에 잇따른 동종 사고로 발생할 후폭풍을 의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한편, 씨티은행 측은 위와 같은 성추행 사고가 사내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성범죄 방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주기적인 인사정보를 통해 은행 윤리강령과 직장 내 상호존중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적극적인 상부보고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고, 익명으로 성희롱 신고가 가능한 상부 보고 핫라인을 운영, 매년 국내법에 의해 의무 시행하는 성희롱 예방교육 외에 전 직원 대상으로 관련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철저한 성범죄 예방 교육이 사내에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성추행 사건에서 비롯된 잡음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