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 커버스토리> 부의 이동① 주식 부호 판도 변화로 본 ‘머니 무브’

전통 강자들 주춤하는 사이로 ‘샛별’들의 약진 눈부시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 5명 모두가 상위 10위 안에 포진
바이오ㆍITㆍ게임산업 ‘뉴 리더’들이 주식 갑부 반열 올라
주가는 한 기업의 내재가치를 반영한다. 주주는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기업의 내재가치를 자신의 부(富)로 이전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 중에서 부호(富豪)라고 불릴 만한 이들은 누구일까.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국내 주식 부호들은 대부분 잘나가는 기업의 오너 혹은 대주주 일가의 구성원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인 재벌그룹 오너 일가들 사이로 신흥 주식 부호들의 도약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이는 산업의 판도 변화와 기업의 실적 추세가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간한국>은 창간 54주년 기념호를 맞이해 지난 5년간 국내 100대 주식 부호의 판도 분석을 통해 ‘부의 이동’ 실태를 심층 조명해본다. 주식 부호 순위 자료는 재벌닷컴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5년간 국내 주식 부호 중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전자의 꾸준한 성장세 덕분에 주식 평가액이 지난 8월말 기준으로 16조 6000억여원에 달한다.

지난 2015년 8월 K-뷰티 대표주자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서경배 회장이 약 3000억원 차이로 이건희 회장에게 근접한 적이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지난 5년간 누구에게도 결코 추월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 8월말 기준 서경배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5조 9000억여원을 기록했다. 서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2015년 10조원을 넘어섰다가 그 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난해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보복의 직격탄을 맞으며 실적이 악화하면서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뒷걸음질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건희 회장과의 격차는 오히려 10조원 이상으로 훨씬 커졌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주식 부호 2위를 유지했던 서경배 회장이 주춤한 사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 자리를 꿰찼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난 8월말 기준 주식 평가액은 7조 8000억여원에 달한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절반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8월만 하더라도 주식 평가액이 1조원을 조금 웃돌았다. 순위는 18위였다. 그러다 이듬해인 2015년 8월말 주식 평가액이 8조 7000억여원으로 급등하면서 단숨에 주식 부호 3위로 치솟았다. 비상장기업이던 삼성SDS가 상장되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가치가 일거에 반영된 덕분이었다.

그 해 이건희 회장의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도 삼성SDS 상장을 계기로 일순간 주식 부호 10위권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부진, 이서현 자매는 삼성SDS와 삼성물산의 지분을 똑같은 비율로 갖고 있다. 두 자매는 2015년부터 줄곧 주식 부호 순위에서 공동 랭크되고 있다. 지난 8월말 기준으로 두 사람의 주식 평가액은 2조원을 약간 웃돌고 있고, 순위는 공동 9위를 기록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주식 평가액은 지난 8월말 기준 2조6000억여원으로, 주식 부호 7위에 올라 있다. 이건희 회장 부부와 세 자녀가 주식 부호 10위 안에 모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재벌그룹 일가의 재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그룹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뒷걸음질

반면 자산 규모 기준으로 국내 2위 재벌그룹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 부자(父子)는 주식 평가액이 줄어들면서 주식 부호 순위도 몇 계단씩 하락한 점이 눈길을 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라는 쌍두마차를 앞세워 2010년대 초반 세계 자동차 시장의 빅5 기업으로 도약하면서 승승장구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미국 및 일본 자동차 기업들의 반격과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약진으로 기세가 한풀 꺾였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면서 실적 부진에 대한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주식 평가액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2014년 8월말 기준으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각각 7조 1000억여원, 4조여원으로 주식 부호 2위와 4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 8월말에는 각각 4조여원, 1조 9000억여원으로 주식 부호 순위에서 6위와 11위로 밀려났다.

주식 부호 순위 최상위권에서 꾸준하게 입지를 지키고 있는 인물 중에는 삼성 오너 일가 외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존재감도 크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5년간 한번도 빠짐없이 주식 부호 톱5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의 주식 평가액은 지난 8월말 기준으로 4조 3000억여원에 달했다.

지난 8월말 현재 주식 부호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인물 중에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4위),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8위)은 신흥 주식 부호의 대표주자들로 꼽힌다. 서정진 회장과 방준혁 의장의 주식 평가액은 각각 4조 5000억여원과 2조 4000억여원에 달한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등 이른바 셀트리온 3형제 기업을 앞세워 바이오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기업인이다. 방 의장은 ‘리니지2 레볼루션’ 등 글로벌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국내 게임산업을 주도하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특히 두 사람은 집안 배경이 특별할 것이 없는 ‘흙수저’ 출신으로서, 각자 사업 분야에서 한 우물을 집요하게 판 덕분에 대박을 터뜨린 자수성가형 부호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선대(先代) 창업자의 가업을 물려받은 재벌그룹 오너 일가의 전통 부호들과는 대비되는 셈이다.

신흥 부호의 등장은 비단 이 두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내 100대 주식 부호부호 명단을 보면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선 인물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전통 부호들과 달리, 이들 중 상당수는 산업 트렌드 변화 속에서 스스로 기회를 포착해 자수성가한 신흥 부호들이다.

특히 100대 주식 부호 중에서 신흥 부호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부(富)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전통산업에서 신(新)산업으로 옮겨가면서 전통 부호의 지위를 신흥 부호들이 꿰차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00대 주식 부호 중 신흥 부호 비율 증가세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신산업이 성장하는 나라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를 품고 있는 미국을 들 수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세계를 주름잡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의 창업자들이 바로 그런 사례인 것이다.

국내 주식 부호 상위권에 진입한 신흥 부호 중에는 지난 8월말 기준으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4위),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8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16위), 김대일 펄어비스 이사회 의장(21위),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23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25위),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34위),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36위), 정용지 케어젠 대표(43위), 김가람 더블유게임즈 대표(47위), 김선영 바이로메드 대표(58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주식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들 신흥 주식 부호가 성공을 일군 업종이 대부분 정보기술(IT) 서비스, 게임, 바이오 등이라는 점이다. 현재 부의 흐름이 어떤 산업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신흥 부호들의 약진과는 달리 전통 부호 중 일부는 점점 하락세에 접어드는 경우도 있어 눈길을 끈다. 일반인들의 통념으로는 재계 20위권 안에 드는 상위 재벌그룹 오너들은 주식 부호 순위에서도 상위를 차지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 주식 부호 순위를 보면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지난 8월말 기준 재계 5위 대기업집단을 이끄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1조1000억여원에 그쳤다. 순위 역시 22위로 처져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2014년 8월말 주식 평가액 1조7000억여원으로 주식 부호 7위에 올랐으나, 그 후 주식 평가액이 줄어들면서 순위도 뒷걸음질쳤다. 롯데그룹의 주력사업인 유통업의 성장 정체가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역시 유통업을 주력사업으로 삼고 있는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도 비슷한 양상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2014년 주식 부호 13위에 올랐지만, 지금은 19위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에는 22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주식 평가액 역시 거의 횡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 허창수 GS그룹 회장(39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44위),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5위),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51위) 등 쟁쟁한 그룹을 이끌고 있는 총수들도 기업 규모에 걸맞지 않은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일부 전통 부호들의 순위가 일반의 통념에 걸맞지 않게 낮은 것은 그만큼 세상의 변화와 산업 트렌드의 부침이 빠르게 일어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쉽게 말해 과거 전통 부호들의 부를 뒷받침했던 산업군이 성장 정체나 쇠퇴에 직면한 반면, 신흥 부호들의 도약대 역할을 한 신산업에서 새로운 부가 창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100대 부호 주식 재산 증가세 주춤

100대 주식 부호 판도 변화를 보면 또 하나 의미심장한 대목이 발견된다. 지난 5년간 100대 주식 부호의 주식 평가액 합계액이 100조원 언저리에서 큰 변동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주식시장이 장기간 박스권에 갇혀 있었던 상황과 연관성이 있다.

지난해 오랜 만에 국내 증시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올해 들어 한 순간에 열기가 식어버렸다. 그런 탓에 100대 부호의 주식 평가액 합계액은 지난해 8월말 112조 4000억여원에서 올해 8월말 105조 8000억여원으로 줄어들었다. 1년 만에 7조원 정도가 증발한 셈이다.

우리나라 주식 부호들의 자산 증가는 곧 국내 산업의 성장을 뜻한다. 반면 그들의 자산 감소는 산업의 정체나 퇴행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 경제 전체에도 부정적인 결과다. 그런 점에서 보면 100대 주식 부호의 주식 평가액이 횡보를 하거나 뒷걸음질치는 것은 좋지 않은 시그널인 셈이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가 말한다. “어떤 기업의 주가는 패션(유행)을 반영합니다. 한때 유행하면 고공행진을 하다가 어느 날 ‘올드 패션’이 되면 추락하는 거죠. 패션은 그 시점에서 어떤 산업이 유망한가 하는 것을 시사합니다. 주가에는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심리가 반영되기 때문이죠. 어쨌든 주가는 어떤 산업과 어떤 기업의 미래 가능성이 높은지를 읽을 수 있는 계기판 역할을 합니다. 물론 주식 부호 판도를 결정짓는 요인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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