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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미술 시장의 큰손’ 한국의 재벌 컬렉터들

재력ㆍ심미안 어우러진 수집 열정…이건희ㆍ서경배는 ‘세계 200대 컬렉터’
삼성미술관 리움ㆍ호림미술관 모범적 운영 사례로 꼽혀
태광그룹ㆍ대림그룹ㆍ일신방직 오너 등도 컬렉션 돋보여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홍라희 전 리움 관장 부부는 세계적인 수준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품 수집의 즐거움은 나눌 때 더 커지고 명예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기업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기업인 중에 부의 사회 환원 활동의 일환으로 미술품 컬렉션을 하고 미술관을 통해 공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활동을 하는 한국의 재벌 컬렉터에는 누가 있을까.

먼저 삼성미술관 리움을 세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유화증권과 성보실업의 창업자이자 성보문화재단을 통해 호림미술관을 세운 고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뮤지엄산을 세운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 송암미술관을 통째로 인천시에 기증한 OCI 창업주 고 송암 이회림 회장, 지난 봄 용산 새 사옥에 아모레퍼시픽뮤지엄의 문을 연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돌장승 등 석물에 특화한 우리옛돌박물관을 세운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 현대미술관회 회장을 지내고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은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일반에 컬렉션을 공개하고 있다.

이 중 우리나라에서 컬렉션과 박물관 설립을 통해 가장 모범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을 꼽자면 먼저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림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미술관은 고미술과 근현대 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전시를 하는 곳으로 꼽힌다.

물론 이 두 곳 이전에 간송 전형필 선생의 간송 컬렉션과 동원 이홍근 선생의 동원 컬렉션이 있다. 다만 간송 컬렉션은 간송의 별세 이후 사실상 컬렉션 추가는 중단된 상태이고 동원 컬렉션은 그의 사후 국립중앙박물관에 통째로 기증됐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수를 헤아리면 동원 컬렉션은 삼성 컬렉션에 비견될 정도다.

호림박물관의 설립자인 고 윤장섭 호림문화재단 이사장은 황해도 개성 출신이다. 그는 유화증권과 성보실업을 창업한 기업인으로 생전에 1만5000여 점 정도를 수집했다. 여기에는 국보 8점과 보물 52점,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11점이 포함된다. 특히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나 불경 등의 고인쇄물과 도자류, 조선조 후기의 서화류는 호림박물관 자체 소장품만으로도 맥락을 나눠 전시기획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질과 양을 자랑한다.

고 윤장섭 유화증권 창업자 국보ㆍ보물 다수 수집

윤 이사장은 1971년 <청자상감유로연죽문표형주자>를 사들이면서 본격적인 문화재 수집에 나섰다. 짧은 기간에 그가 좋은 작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개성 동향으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황수영과 진홍섭 전 연세대 석좌교수 등 이른바 개성 3걸과 교류하면서 고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쌓았기 때문이다. 최순우 전 관장은 그가 작품을 사들일 때 편지로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 호림박물관 전경
강남 땅 투자와 농약 회사, 사금융 운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윤 이사장은 1980년대 초부터 성보학원을 세우고 성보문화재단을 통해 호림박물관을 만들었다. 부의 사회 환원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2016년 별세하기 직전 4년간 800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성보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이 시기에 보물로 지정된 고려 수월관음도를 해외에서 사들이기도 했다. 말년까지 컬렉션에 정열을 쏟은 것이다.

윤 이사장은 별세 전에 호림박물관의 안정적인 운영과 재원 확보를 위해 성보문화재단에 유물 소유권을 모두 넘기고 부동산과 유가증권 같은 개인 재산도 기부했다. 개인 박물관의 취약점인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강남 요지에 있는 건물에서 나오는 수익금이 박물관으로 들어오도록 조치를 취해 놓은 것이다. 그의 별세 뒤에 둘째 아들인 윤재륜 전 서울대 교수가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윤장섭 이사장은 큰아들에게는 성보화학을, 셋째 아들에게는 유화증권을 남겼다.

윤 이사장이 기업 규모 이상의 컬렉션을 완성했다면 영업이익과 매출 규모에서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보기술(IT) 회사로 삼성전자를 성장시킨 삼성의 오너 이건희 회장은 리움 컬렉션을 세계적인 컬렉션으로 끌어올렸다.

삼성의 미술품 컬렉션은 호암 컬렉션과 이건희 컬렉션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고미술품 중심으로 컬렉션을 해서 생전에 호암미술관을 지어 일반에 공개했다. 2대 회장인 이건희 회장은 부친 이상의 고미술품을 모았고, 여기에 더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현대 미술품도 컬렉션했다.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위주로 선보이고 있는 공간이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한국에서 국보급 달항아리와 겸재의 금강전도, 이중섭의 소, 로댕이나 프랜시스 베이컨, 게르하르트 리히터 같은 청동기 시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리움이다.

  • 삼성미술관 리움에 설치돼 있는 아나쉬 카푸어의 작품 '큰 나무와 눈'(김진녕 제공)
리움의 고미술 전시관인 뮤지엄1의 1층 불교회화실에는 20세기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가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제작한 명상적인 청동조각 <디에고>(1964~65년작) 좌상이 그림자를 던지며 앉아 있고, 그 오른쪽으로는 보물 제784호인 <지장도>(고려 14세기), 고려시대(14세기 후반)의 자수 불화 <아미타여래도>가 나란히 걸려 있다. <아미타여래도> 오른쪽에는 마음의 심연을 색면(色面)으로 표현했던 마크 로스코의 <무제>(1969년작)가 걸려 있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도 할 수 없는 전시 연출이다. 이런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소장품이 없기 때문이다. 자코메티나 로스코의 작품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의 경매에서 작품당 500억~1000억원대를 오르내리는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배정하는 예술품 구입 예산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포함해 삼성문화재단의 소장품은 약 1만5000여점. 이 가운데 한국 고미술품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한국 근현대 작품이 3000여점, 해외 미술품이 800여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컬렉션을 담아내고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2014년 개관) 건물 자체도 미래의 문화유산이다.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뮤지엄1과 장 누벨이 설계한 뮤지엄2, 렘 쿨하스의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건물이 공통의 로비로 연결돼 있다. 유명 건축가의 ‘건축 샘플러’를 한데 모은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인 셈이다.

삼성문화재단 소장품 무려 1만5000여점 달해

이런 건축가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의뢰주의 재력과 평판,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공간에 담겨 있는 삼성가 컬렉션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그의 아들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이 수십 년간 컬렉션에 돈과 시간, 애정을 쏟아 부은 결과물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청자진사주전자>(국보 제133호) 등 국보 12건과 보물 9건 등 국보급 문화재 21건을 수집했지만 삼성의 2대 회장인 이건희 회장은 이보다 더 많은 국보급 유물을 컬렉션했다.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공개하고 있는 국보와 보물 관리 현황을 보면 삼성가에서 갖고 있는 국보는 37건, 보물은 106건 등 총 143건이다. 호암 생전에 국보가 12건이었던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나고 보물은 5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16년 상반기 기준으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모두 328건이 있고, 이 중 10%가 넘는 37건이 삼성가 소유다.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를 망라하는 방대한 규모이고, 단일 기관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62건) 다음가는 규모이다.

삼성가에서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소유자는 이건희 회장이 제일 많고 삼성문화재단, 홍라희 관장 순이다. 그리고 이 보물급 고미술품의 관리자는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두 곳이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삼성가에서 수집한 1980년대의 유물 중 상당수가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임을 밝히고 있다. 이 전 부관장은 자신이 쓴 <리컬렉션>이란 책을 통해 관련 일화를 공개했었다.

“이건희 회장의 국보 100점 프로젝트는 대부분 1980~1990년대에 들어 집중적으로 수집한 결과다. 그의 국보 수집은 이병철 회장과 의논되었던 일은 아니었다.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 수집은 일찍부터 시작되었고, 호암미술관과는 별개로 진행되었다. 그는 이미 개인 수집가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작품을 인수했다. 대표적인 유물로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금강전도>(국보 제217호) 등과 특급 도자기도 많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본격적인 국보급 유물의 수집은 <고구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에서 시작되었다.”(<리컬렉션>, 46쪽)

일반인이 통상적으로 삼성 소유라고 알고 있는 미술품은 이건희 회장이나 홍 전 관장의 개인 소유가 있고, 삼성문화재단(리움) 소유로 나뉘어져 있다. 리움 소장품으로 알려진 미술품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 외부 전시에 협조 출품하는 경우 어떤 작품은 ‘리움 소장품’, 어떤 것은 ‘개인 소장품’으로 적시되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이병철 회장의 고미술 컬렉션이 엄청나다고 알려졌지만 실상 ‘공개된’ 수치만 놓고 보면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홍라희 전 관장도 한 인터뷰에서 “사실 호암 컬렉션 중 반수 이상은 애 아빠가 모은 것”(<우먼센스>, 1989년 9월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홍라희 관장도 자신 명의의 보물 5점이 있다. 이 중 세 점은 청자다.

백자 전문가인 우당 홍기대는 2014년에 펴낸 <우당 홍기대 조선백자와 80년>이라는 책에서 이건희-홍라희 부부의 고미술품 공부에 대한 에피소드를 언급하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서 잠시 만났던 분이 어느 큰 회사의 2세(이건희)였다. 나이가 젊었던 만큼 수집도 수집이지만 많이 배우려고 무척 애를 쓰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략) 첫인사를 나눈 다음날부터 내가 사는 보광동 집으로 두 내외가 찾아왔다. 그렇게 적극적이었다.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내가 이런저런 물건을 꺼내 보여주자 그 중 접시 하나가 마음에 든다며 하나를 달라고 했다. 한 열흘 이런 일이 계속되니 내 쪽에서 두 손을 들었다.”(<우당 홍기대 조선백자와 80년>, 123쪽)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열정은 국내 미술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한국 근현대 미술품 시장에서 경매가를 경신하는 박수근이나 이중섭, 김환기의 작품 값이 급등한 데는 삼성이 컬렉션한 작품이라는 후광이 있다.

이렇게 국내 미술계 전체를 리드하던 리움은 이건희 회장이 침묵 속에 빠지고 또 다른 축인 홍 전 관장이 퇴임하자 동면 모드에 들어갔다. 기획전 없이 상설 전시 <시대교감>(고미술), <동서교감>(현대미술)으로 사실상 문만 열어놓고 있는 상태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숨을 고르고 있다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서경배 회장은 떠오르는 태양이다. 2015년 미국의 미술 관련 미디어인 아트뉴스가 발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이건희 회장 부부와 함께 서경배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말 입주를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의 용산 신사옥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디자인이 화제가 됐다. 한국의 오피스 건물에서 보기 힘든 디자인은 서 회장이 고른 것이다.

용산 신사옥에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 뮤지엄

이 건물 지하 1층에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이 있다. 지난 3월에 소장품 위주의 프레 오프닝 쇼를 하고 5월에 미디어 아티스트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전시를 열었다. 오는 10월에는 소장품 위주의 고미술품 쇼를 열 예정이다. 상설전이 없는 대신 기획전 위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이다. 50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소장품을 선보이는 상설전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이 건물 지하 1층에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이 있다.
보물 1426호 <수월관음도>(2005년 1월 지정)나 1441호 백자 달항아리(2005년 8월 지정), 보물 제1450호 분청사기 상감사각묘지 및 분청사기 인화문 사각편병(2006년 1월 지정) 등의 소유자는 (주)아모레퍼시픽이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선대 서성환 회장이 화장용 기물 등을 컬렉션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컬렉션은 서경배 회장 때부터라는 게 미술계의 중론이다.

그는 고미술뿐만 아니라 현대미술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새 사옥 자리에 있던 옛 아모레퍼시픽 1층 로비에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라는 조각품이 있었다. 새 사옥 완공 뒤 서경배 회장은 포켓 공원에 놓은 공공 미술품으로 올라퍼 엘리아슨의 거울을 이용한 대형 설치 작품을 선택했다.

현대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재벌 오너 중에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 빌딩을 신문로에 세우면서 건물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를 예술극장과 미술관으로 채웠다. 3층에 들어선 세화미술관은 소장품을 선보이기보다는 기획전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이호진 컬렉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화예술문화재단의 소장품은 빌딩 로비와 흥국생명 빌딩 야외 공원에 전시되고 있다. 광화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 줄리언 오피, 자비에르 베이앙 등 현대작가 위주의 컬렉션이다.

  • 세화미술관이 자리한 서울 새문안로 흥국생명빌딩 앞. 이 곳에 세화예술문화재단의 대표 소장품인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이 전시돼 있다. (세화미술관 제공)
미술관 경영만으로 유명해진 3세 경영인도 있다. 대림그룹 이해욱 부회장은 재벌가 컬렉터 중 드물게 직접 대림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대림미술관은 인스타그램용 인증샷의 ‘성지’로 불릴 만큼 기획하는 전시마다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대림미술관은 한국에는 드문, 줄서서 기다리다 입장하는 미술관이 됐다.

대림미술관은 이해욱 부회장의 모친인 한경진 관장(2014년 작고)이 1993년 대전에 설립한 한림미술관이 뿌리다. 2002년 미술관을 서울로 옮겼고 이해욱 부회장은 2003년 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한경진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의 후원 조직인 현대미술관회 초기 멤버였다. 1980년대 초 활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현대미술관회에는 정희자 전 대우개발 회장(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 고 박계희 워커힐미술관 관장(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고 한경진 관장 등이 회원으로 참여해 미술아카데미 활동 등을 통해 안목을 기르며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이후 미술관을 설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 미술 컬렉터 역사의 한 흐름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도 1982년 현대미술관회에 가입해 1991년 부회장, 2001~2005년 회장직을 맡으면서 미술품 컬렉션을 본격화했다. 여기서의 인연으로 2000년대 들어 삼성문화재단 이사, 아름지기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대미술관회’는 재계 컬렉터 인맥의 산실

김영호 회장도 이름난 컬렉터다. 현대미술, 그중에서도 미니멀한 좁은 스펙트럼을 지키며 적어도 500점 이상의 컬렉션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김영호 회장(연합)
그가 300점 정도라고 10년 전에 밝혔지만 이후 컬렉션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컬렉션을 한남동 일신빌딩이나 여의도 일신빌딩에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이 아닌 로비나 통로에 걸어놓고 있다. 특히 한남동 일신빌딩은 1층의 일신홀 로비에 걸려 있어 누구나 가서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그는 “내 명의의 미술관 건립을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수집품을 흩트리지 않고 때가 되면 공공기관에 기증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미다.

최근 가나아트센터에서 <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이라는 제목의 개인 컬렉션 전시를 열고 있는 임히주 전 신세계갤러리 고문도 김영호 회장의 현대미술관회 활동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는 현대미술관회에서 1985년부터 2008년까지 23년간 현대미술아카데미 운영을 총괄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도 일했고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신세계갤러리의 고문으로 일했다.

임 전 고문의 소장품 전에 일신방직 여의도 사옥 앞에 설치된 마우리 스타치올리의 <일신91>의 모델링 작품 등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한국 컬렉터에게 인기가 있었던 현대 작가의 작은 기념품 같은 미술품이 많이 등장했다. 이를 통해 지난 시절의 국내 미술 시장 흐름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국내 재벌가의 현대미술품 컬렉션 취향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는 이런 배경도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기업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삼성그룹에서 분가한 한솔그룹의 뮤지엄산도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으로 꼽힌다. 꾸준히 기획전을 통해 소장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정확한 소장품 리스트는 역시나 밝히지 않고 있다. ‘개인 소유’라 밝힐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규모는 작지만 좁고 깊게 파는 컬렉터도 있다. 1970년대부터 석물 수집 외길을 달리는 천신일 세중 회장은 2015년 서울 성북동에 우리옛돌박물관을 세웠다. 우리옛돌박물관에는 일본에서 환수해온 문인석 47점과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옛 돌조각 1242점, 자수 300점, 현대회화 80점을 소장하고 있다. 자체 전문 인력을 통한 상설전과 기획전 등 미술관답게 운영하고 있다.

미술관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보물급의 고미술품 컬렉션을 확보하고 있는 컬렉터도 있다. 고미술 전시회에 자주 가는 이들은 ‘일암관’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일암관 소장품은 여러 전시에 자주 불려 다니기 때문이다. 일암관은 고려산업 신성수 회장의 컬렉션 이름이다. 그는 신덕균 동방유량 창업자의 셋째 아들로 고려산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신 회장은 부친이 설립한 눌원문화재단을 운영하는 한편 일암관이라는 이름으로 컬렉션을 수집하고 있다. 주로 고미술품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일암관 소장품 중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제1189-2호 <박문수 초상>, 제1498호 <조선후기 문인초상>, 보물 제1599호 <경상총여도>, 보물 제1616호 <예안 김씨 가전 계회도 일괄> 등이 있다.

특이한 것은 부인인 남화진씨의 명의로도 보물 및 국보 지정을 받은 유물이 있다는 점이다. 보물 제569-16호 <안중근 의사 유묵-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는 신 회장의 부인 남화진씨 소유이고 관리자가 신 회장 이름으로 돼 있다. 2005년 8월 보물 1440호로 지정됐던 달항아리는 2007년 12월 국보 제310호로 재지정됐다. 이 국보 달항아리는 남화진씨 소유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위탁 전시 중이다. 언제든 일반인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보물급 달항아리 컬렉터로는 김영무 김앤장 대표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보물 제1438호와 1439호로 지정된 백자 달항아리 두 점을 소장하고 있다. 또 보물 제1287호 고려시대 지장보살삼존도(1998년 10월 지정)와 보물 제1399호인 청자 퇴화선문 표주박모양 주전자(2004년 3월 지정), 보물 제1449호로 지정된 청자 기린 연적(2006년 1월 지정) 등도 그의 소장품이다.

달항아리의 인기는 높다. 보물은 더 귀하다. 2005년 8월에 보물로 지정된 백자 달항아리는 다섯 점이었다. 제1437호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438호는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 소장품, 1439호는 최상순씨 소장품, 1440호는 남화진씨 소장품, 1441호는 아모레퍼시픽 소장품. 이 중 1438호와 1439호는 김영무 변호사로 소유자가 바뀌었고, 1440호는 국보 310호로 재지정됐다.

10년, 20년 뒤에는 국보급 보물이라고 해도 국립기관 소유분이 아닌 이상 소유자 리스트가 바뀔 수도 있다. 재물은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고, 사람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유산은 남는다. 그래서 많은 컬렉터들이 모으는 것만큼이나 컬렉션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재산은 물려주면 흩어지기 마련이기에 상속세 걱정을 해야 하는 재벌급 컬렉터들은 명예와 자신의 이름이 달린 컬렉션의 불멸을 위해 공공기관에 기증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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