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 운용’ 치우친 방침이 증시 하락장서 손실 부추겼나

국민연금기금이 올해 1~7월 기준 국내 주식 투자에서만 약 8조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해외 주식, 국내 및 해외 채권 등 다른 투자 부문에서 괜찮은 성과를 거둬 전체적으로는 8조7000억여원의 수익을 냈다. 약 643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기금은 운용 성과가 국민의 노후자금과 직결된다. 국민연금기금 운용 성과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본다.

올해 국민연금기금이 국내 증시 침체 여파로 국내 주식 투자에서 상당한 손실을 봤다. 코스피 주가 하락세를 보여주는 주가 상황판. (연합)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은 2018년 7월말 기준 643조4000억여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세계 3대 연기금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기금 규모가 거대하다. 하지만 가입자들에게 연금 급여를 안정적으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기금 운용을 통해 꾸준하게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도 맡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금융 부문, 복지 부문, 기타 부문 등 3개 부문으로 운용되는데 금융 부문이 전체의 99.8%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금융 부문에 대한 운용이 전부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금융 부문의 기금 운용은 크게 주식(국내/해외), 채권(국내/해외), 대체투자(국내/해외)의 세 갈래로 나뉜다. 대체투자는 주식,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 자산과 다른 영역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인프라, 벤처투자, 사모투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등에 대한 중기(中期) 전망을 감안한 ‘중기 자산배분 계획’을 매년 수립한다. 중기 자산배분 계획은 5년 후의 목표 수익률과 위험 한도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투자 대상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결정하는 5년 단위 중기 전략이다. 요컨대 향후 5년간 국민연금기금을 어떤 자산에 얼마의 비중을 두고 투자할 것이냐를 정하는 최적의 자산배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2018년 마련한 중기 자산배분 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2022년 목표 포트폴리오로 주식 45% 내외, 채권 45% 내외, 대체투자 10% 이상을 설정해두고 있다.

이에 맞춰 수립된 2018년 ‘연간 기금운용 계획’에 따르면 올해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채권 47.1%, 국내 주식 18.7%, 해외 주식 17.7%, 대체투자 12.5%, 해외 채권 4.0%의 목표 포트폴리오에 따라 투자하게 돼 있다.

국민연금 운용서 국내 주식 비중 두 번째

문제는 올해 목표 포트폴리오에서 투자 비중이 두 번째로 높은 국내 주식 부문에서 큰 손실이 났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주식 부문에서 8조861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 주식 평가액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기금이 보유 중인 국내 주식 평가액은 2017년 말 131조5200억여원에 달했지만 올해 7월말에는 123조820억여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수익률로 따지면 -6.11%다.

이런 결과는 지난 5년간의 국내 주식 평가액 추세를 보더라도 상당히 당혹스러운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 평가액은 각 연도 말 기준으로 ▨2013년 83조9380억여원 ▨2014년 83조9300억여원 ▨2015년 94조8960억여원 ▨2016년 102조3590억여원 ▨2017년 131조5200억여원을 기록했다. 국내 주식 평가액이 2014년에 전년 대비 아주 소폭 줄어든 것을 빼고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이어온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2017년에는 전년 대비 무려 29조1610억여원의 엄청난 폭등세를 나타낸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올해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주식 부문에서 왜 이렇게 큰 손실을 봤을까. 국민연금공단 측은 “국내 주식 부문이 전년 대비 낮은 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 증시 부진의 여파가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국내 주식시장은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지난 7월말 기준으로 연초 대비 7.0% 하락하는 등 저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 증시 추락 여파로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 증감세가 코스피 지수 변동과 거의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2017년 코스피 지수는 21.8% 상승률을 보였는데,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25.88%를 기록했다. 또 올해 들어 지난 7월말 기준으로 코스피 지수는 7.0% 하락했는데,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6.11%를 기록했다. 조금 차이는 나지만 거의 유사한 증감세를 나타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 제16조에 따르면 ‘국내 주식의 내부 운용(직접 운용)은 사전에 투자 가능 종목군을 구성하고, 투자 가능 종목군에 포함된 주식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투자하며, 중장기적으로 패시브 운용(Passive Management)을 지향한다’고 규정돼 있다. 아울러 ‘국내 주식의 위탁 운용은 민간기관의 투자 기법을 활용하여 투자 스타일을 다양화하며 액티브 운용(Active Management)을 지향한다’고 명시돼 있다.

패시브 운용(패시브 투자)은 코스피200 등 특정 지수의 등락에 따라 편입된 종목을 거래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시장 평균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장지수펀드(ETF)나 인덱스펀드 등이 그런 사례다. 패시브 운용에 반대되는 개념이 액티브 운용(액티브 투자)이다. 액티브 운용은 펀드매니저가 개별 주식 종목의 가치를 분석해 선별적으로 매매하는 투자 방식이다. 시장 평균 수익률 이상을 목표로 한다. 다만 패시브 운용에 비해 수수료 등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세계 연기금들도 패시브 투자 비중 높아져

최영민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패시브 투자 시장 확대의 함의’라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대형 연기금의 기조 전략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 역시 핵심 전략으로 패시브 투자를 채택하고 있다”며 “특히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주식 비중이 높아지면서 보유 주식을 사고파는 적극적 운용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액티브 투자 비중은 축소되고 패시브 투자 비중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영민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연기금들은 총자산의 약 3분의 1을 패시브 운용 방식으로 투자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2배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패시브 운용은 개별 종목의 속성을 따르지 않고 대량 매입을 하기 때문에 ‘펀더멘털’과의 연관성을 약화시키는 한편 시간 경과에 따라 정보의 비효율성을 높이는 경향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또 패시브 운용이 확대되면 잠재적으로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분산화 효과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단적인 예로 패시브 운용을 하게 되면 하락장에서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올해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 부문 손실도 국내 증시가 뒷걸음질치는 상황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패시브 운용과 액티브 운용을 상반된 전략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전략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다시 말해 투자 환경에 맞춰 패시브 운용과 액티브 운용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수익률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 유력 자산운용사 대표가 말한다. “올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에서 손실을 봤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식이라는 위험자산의 속성상 수익이 날 수도 있고 손실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기금의 운용 성과는 단기간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적정하게 자산배분을 했는지, 또 운용 전략은 적절한 것인지 등은 따져볼 문제다.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양적 완화가 진행되면서 금융이 팽창하던 시기에는 주가지수가 그냥 올랐다. 그런 상황에서는 패시브 펀드도 덩달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금융 수축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그런 점에서 패시브 운용에 다소 치우쳐 있는 국민연금의 운용 전략을 진지하게 재고해볼 시점인 것 같다.”


<박스> ‘장기 수익률’은 국내 주식이 최고

올해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 부문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수익률을 살펴보면 그래도 국내 주식이 투자 대상으로 선호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국민연금기금이 운용하는 자산군별 수익률을 살펴보면 ▨국내 주식 11.58% ▨해외 주식 9.21% ▨국내 채권 2.17% ▨해외 채권 1.87% ▨대체투자 8.50%를 기록했다. 국내 주식 수익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처음 출범한 1988년부터 2017년까지 수익률을 보더라도 ▨국내 주식 8.37% ▨해외 주식 8.42% ▨국내 채권 4.84% ▨해외 채권 4.39% ▨대체투자 8.14% 등으로 국내 주식은 해외 주식에 근소한 차이로 뒤진 2위를 기록했다.



김윤현 기자 unyon21@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