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불평등 악화’ 부작용에 대한 경고등 켜져
저생산성 부문에 대출이 집중되는 것도 문제점

금융은 돈이 필요한 곳에 자금을 융통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활동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금융은 매우 긴요한 역할을 한다. 실물경제와 금융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근래 들어 금융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경제에 역효과를 유발한다는 견해가 학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행하는 학술지 <금융연구> 최신호(32-3호)에는 주목할 만한 논문 두 편이 실렸다. 하나는 금융산업이 지나치게 발전하면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저(低)생산성 부문을 확대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금융산업 본연의 역할을 다시금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두 논문의 내용을 살펴본다.

우리나라 금융 자원이 생산성이 낮은 가계 부문과 소기업에 집중적으로 쏠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첫 번째 논문은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집필한 <금융발전이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효과: 한국 경제에 대한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신관호 교수는 은행 및 금융기관이 제공한 ‘민간신용’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금융발전의 측정치로 삼아 금융발전이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최근 선진국에서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일례로 OECD는 지난 2008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 소득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은 소득불평등이 지나치게 악화되는 경우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몇 차례 내기도 했다.

국내외 학자들의 다수 연구 결과를 보면 소득불평등 문제에 관한 한 금융은 긍정적인 역할과 부정적인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다. 먼저 긍정적인 역할 측면에서는 금융발전이 저소득층에 금융서비스 기회를 많이 제공하게 되면 그들이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에 소득불평등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 역할 측면에서는 금융발전이 이미 많은 것을 누리는 고소득층에 더 많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금융발전’의 지표로 삼는 한편 소득분배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를 ‘소득불평등’의 지표로 활용했다. 그 결과 금융발전 초기에는 소득불평등이 완화되지만, 금융발전이 지속되면 오히려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20% 정도에 도달하면 지니계수가 최소값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니계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20%에 이를 때까지는 금융발전이 소득불평등을 완화하지만 그 이후로는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뜻이다.

한국 GDP 대비 민간신용 비중은 100% 훨씬 넘어

우리나라는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60년 11%에 불과했으나 2015년 기준 137%에 달할 만큼 크게 팽창했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960년대 초부터 이미 30%를 넘었는데, 2015년 기준으로는 99%에 달한다.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면에서 우리나라가 이른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 회원국들의 평균보다 훨씬 높은 상태에 이른 것이다. 참고로 금융산업이 매우 발달한 미국과 일본은 2015년 기준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80%와 176%에 달한다.

신관호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100%에 육박하거나 넘어섰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금융발전은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GDP 대비 주식시장 규모를 금융발전 지표로 삼아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했다. 그 결과도 민간신용 지표를 활용했을 때와 비슷했다. 즉 주식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악화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에서는 돈을 버는 투자자가 외국인, 기관 등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투자자들은 돈을 잃기 마련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주식시장 확대가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통계적 분석 결과를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

한국의 GDP 대비 주식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86%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치인 66%를 20%포인트나 웃도는 수치다. 다만 143%에 달하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일본 등 100%를 넘는 몇몇 선진국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신관호 교수의 연구 결과는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금융산업이 발전하더라도 그 혜택이 모든 계층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금융상품은 이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 접근하기 어려워 금융발전의 혜택이 이미 금융에 익숙한 계층에만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해당 계층의 소득 상승에만 금융이 활용돼 소득불평등은 악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산업의 양적 발전이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경로도 있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소득이 여타 산업에 비해 과도하게 높아지는 경우다. 실제 민간신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GDP 대비 주식시장 규모 둘 다 세계 최고인 미국의 경우가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신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 상위 1% 소득자 중에서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1979년 7.7%에서 2005년 13.9%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금융산업 확대의 과실이 상당 부분 금융 종사자들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뉴욕대의 토마스 필리폰(Thomas Philippon) 교수와 미국 버지니아대의 아리엘 레셰프(Ariell Reshef) 교수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미국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급여 수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급여 중에서 30~50%가 노동시장 균형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즉, 미국 금융 종사자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고 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금융산업의 양적 확대가 적정 수준 이상이 되면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실증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금융업 종사자들의 급여 수준도 논란의 대상

2008년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것도 금융회사들이 과도하게 수익 창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참사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시 리먼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등 초대형 금융회사들이 파산한 것도 최고경영진이 지나치게 위험 추구를 조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관호 교수는 “금융산업의 높은 수익은 금융 종사자들의 높은 급여로 이어지는 반면, 손실이 생기는 경우 이를 공적자금으로 해결한다면 결국 국민의 부담을 통해 금융 종사자들이 높은 급여를 받는 셈이 되는 것”이라며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통해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금융 종사자들의 급여가 정당한 기여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연구위원과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교신저자)가 집필한 <우리나라 금융의 적정성과 경제성장 효과>도 한국 금융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 논문은 ‘금융심화(Financial Deepening)’가 적정 수준을 초과하면 금융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부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실증분석을 통해 증명했다. 금융심화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다. 두 저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규모를 금융심화의 측정 기준으로 삼았다. 앞서 신관호 고려대 교수가 ‘금융발전’의 지표로 삼은 것과 같은 내용이다. 요컨대 금융심화와 금융발전은 금융산업의 양적 확대 정도를 나타내는 사실상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과잉금융’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과잉금융은 금융심화가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지만, 임계치를 넘어 고도화되는 단계에 이르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감소하게 된다는 게 골자다. 다시 말해 금융이 실물경제에 필요한 이상으로 과잉 공급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저자들이 세계 각국의 자료를 토대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심화도가 50% 이하인 경우에는 금융심화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0~100% 구간에서는 경제성장에 대한 효과의 유의성(有意性)이 사라지고, 100%가 넘으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보이게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천구 연구위원은 “최근 연구들은 양적으로 측정한 금융심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금융의 구성과 (금융이 공급되는) 산업 분포에 변화가 생기고 저생산성 분야로 자금과 인력이 흘러 들어가 경제 전체의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양적인 측면의 금융심화도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단계를 넘어섰다. 캐나다 경제학자 장 루이 아르캉(Jean-Louis Arcand)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금융의 경제성장 기여 효과는 금융심화도가 100~120% 구간일 때 극대화되고, 이 구간을 넘어서면 그 효과가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의 금융심화도는 이미 140%를 돌파한 상태다.

가계/소기업 대출 비중 높아 자원배분 효율 감소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금융 고유의 자원 배분 기능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단적인 예로 가계대출의 급증을 들 수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대출 비중은 2004년 62.5%에서 2016년 92.8%까지 크게 늘어났다. 2016년 기준 국가별 GDP 대비 가계대출 비중을 보면 한국은 스위스, 호주,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국가로 나타났다.

아르캉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대출 비중이 50%를 넘으면 경제성장 효과가 감소된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가계대출 부문에서 상당한 과잉금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소비 및 저축의 위축→보유 자산 매도→자산 가격 하락→금융시장 충격→거시경제 침체’의 경로를 통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김천구 연구위원과 박정수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기업대출 부문에서도 잠재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금융은 모름지기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공급돼야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국내 금융산업은 부가가치 창출 비중이 적은 소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기준 국내 총 부가가치에서 직원 수 1000명 이상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3.9%이고, 직원 수 50명 이하 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4%다. 반면 대출 비중은 1000명 이상 대기업이 42.3%이고 50명 이하 소기업이 27.3%다. 즉, 부가가치 창출을 적게 하는 소기업들에게 오히려 대출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소기업 중에서도 부가가치 창출이 더 적은 부동산업과 운수업, 창고업 등의 대출 비중이 높은 것도 우리나라 금융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대출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슬로바키아, 포르투갈, 스위스에 이어 4번째로 높다.

대기업이 총 부가가치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대출 비중이 적은 것은 주식, 채권 등 직접금융 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이후 금융 자유화 및 금융시장 개방의 영향으로 직접금융 시장이 급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대기업들은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대출)보다 직접금융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김천구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금융은 기업보다는 생산성이 낮은 가계 부문으로 쏠리고 있으며 기업으로의 간접금융 역시 소기업, 특히 저생산성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며 “금융이 저생산성 부문 확대를 초래해 전반적인 금융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어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적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unyon21@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