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프로젝트 ‘ITER’ 착착 진행 중
한국은 ‘KSTAR’로 핵융합 연구 가속

‘궁극의 미래 에너지’,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에너지의 시대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핵융합 에너지 개발을 위한 국제적 협력도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미래 에너지 산업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핵융합 에너지 프로젝트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카다라쉬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개념도. 장치 가운데 밝게 빛나는 부분이 초고온 플라즈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아이언맨>. 이 영화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직접 최첨단 기술로 만든 철갑 슈트를 입고 아이언맨으로 변신해 악당들을 통쾌하게 무찌른다. 아이언맨은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엄청난 파워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한다.

아이언맨의 ‘슈퍼 파워’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원은 바로 가슴 부분에 장착된 채 강렬한 빛을 내는 ‘아크 원자로’다. 아크 원자로는 상온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다. 하지만 상온 핵융합은 영화에서와는 달리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상과학(SF) 영화인 만큼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 설정이지만 현실화에는 제약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핵융합’이란 과연 무엇일까. 쉬운 예를 들어본다면 우리 태양계의 중심에 있는 항성인 태양을 핵융합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태양은 탄생 이래로 50억년 가까이 스스로 막대한 양의 빛과 열 에너지를 발산해 왔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태양이 전달해주는 에너지 덕분이다.

태양이 자체적으로 빛과 열을 낼 수 있는 것은 태양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수소 핵융합 반응 때문이다. 태양은 수소와 헬륨을 비롯해 70여 가지의 기체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태양을 구성하는 성분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수소다. 태양 중심부에서는 수소의 원자핵이 서로 충돌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는 핵융합 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이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태양계로 방출되는 것이다.

태양이 에너지 방출하는 메커니즘이 핵융합

태양의 수명은 약 100억년으로 추정된다. 태양은 탄생한 지 50억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50억년 가량 빛과 열을 내며 존속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태양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은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으로 평가된다. 현재 국제사회가 수많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핵융합 에너지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에너지원으로서의 엄청난 잠재력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핵융합 반응은 인류가 발견한 에너지원 가운데 가장 에너지 생산 효율이 높다. 원자력발전의 기초가 되는 핵분열 반응과 비교하면 7배 이상의 에너지를 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령 1kg의 우라늄 235가 핵분열 과정에서 방출하는 에너지는 200억kcal 정도 되는데, 동일한 양의 수소 1kg은 핵융합 과정에서 1500억kcal의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핵융합 반응이 수소를 연료로 이뤄진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이자 우주 전체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다. 지구상에서도 대기와 물, 지각(地殼) 속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다시 말해 핵융합 반응의 연료가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현재 인류가 에너지원으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화석연료는 머잖아 고갈된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40~70년 정도, 석탄은 150~160년 정도 사용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핵융합 반응의 연료는 무려 1500만년 이상 거뜬하게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화석연료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원흉으로 지목돼 점차 사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지구상의 모든 당사국들에게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수소 원자핵의 충돌로 이뤄지지만, 지구에서는 핵융합 반응의 연료로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사용한다. 중수소는 바닷물의 전기분해를 통해 얻는데, 바닷물 1리터에서 0.03g을 확보할 수 있다. 중수소 1g은 석유 8톤과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에너지 생산 효율이 매우 높다.

삼중수소는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양이 매우 적지만, 핵융합 장치에서 리튬과 중성자를 반응시켜 만들 수 있다. 리튬은 지구상의 지표면과 바닷물에서 어렵지 않게 추출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하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핵융합 반응은 지구의 자연상태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따라서 인위적, 인공적으로 핵융합 반응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운영 중인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KSTAR의 모습.

1억℃ 넘는 ‘플라즈마’ 상태 만드는 게 관건

수소는 1억℃ 이상의 초고온에서 ‘플라즈마(Plasma)’ 상태가 됐을 때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플라즈마는 고체, 액체, 기체와 함께 물질의 4가지 상태 중 하나다. 기체가 초고온으로 가열되면 플라즈마 상태로 바뀐다. 플라즈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돼 제멋대로 움직이는 불안정한 상태를 띤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최대의 기술적 관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1억℃에 달하는 초고온의 플라즈마 상태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플라즈마의 불안정성을 제어하면서 장시간 유지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1950년대에 핵융합 에너지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과학자들은 이 화두를 붙들고 오랜 세월을 헤쳐 나왔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핵융합 반응 장치가 제시돼 왔다. 그중에서 실용화에 가장 근접한 것은 ‘토카막(Tokamak)’이라는 장치다. 토카막은 플라즈마를 진공 용기 속에 넣은 다음 초전도 자석으로 자기장을 걸어 벽에 닿지 않도록 한 상태에서 초고온으로 가열해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는 장치다. 1960년대 당시 소련의 연구자들이 고안한 이후 효율성을 인정받아 대부분의 실험용 핵융합 장치에 채택됐다.

현재 국제사회는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해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를 공동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1988년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의 참여로 시작됐다. 2003년 한국과 중국이 참여하고 2015년에는 인도가 동참하면서 7개국이 함께 손잡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기술 협력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2007년 프랑스 남부 지방의 카다라쉬에서 착공된 ITER는 2024년 완공될 예정이며, 그 다음해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ITER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토카막을 채택했다. 각 참여국들이 할당된 품목을 직접 제작하고 납품해 현장에서 조립 과정을 거쳐 완성하는 건설 방식도 독특하다.

또 7개 참여국들은 전문인력을 ITER 건설 현장에 파견해 공동으로 작업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각 참여국들은 핵융합 장치 설계와 건설, 운영에 관한 종합적인 노하우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궁극의 미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에너지 시대가 열리면 ITER 프로젝트 참여국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도 크다.

우리나라는 ITER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2040년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위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TER 건설에 필요한 전체 품목 중에서 우리나라에 할당된 것은 초전도 도체, 진공 용기 본체, 진단 장치 등 10가지다. 핵융합 장치 건설에 필수적인 품목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는 한국이 자체적으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KSTAR: 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를 건설해 성공적으로 운영해 온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라는 평가다. 초전도 자석, 진공 용기 등은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위한 핵심적인 기반기술로 꼽힌다.

프랑스 카다라쉬에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 현장.

한국 비롯한 7개국이 미래 에너지 주도권

KSTAR는 현재 우리나라 핵융합 에너지 연구개발의 본산인 국가핵융합연구소 실험동에서 운영되고 있다. 1995년부터 건설 사업이 시작돼 2007년 완공된 바 있다. 총 사업비는 정부와 민간을 합쳐 3090억원이 소요됐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그동안 KSTAR를 운영하면서 플라즈마 발생 실험 2만회를 돌파했다. 2008년 최초로 플라즈마 발생 실험에 성공한 이후로 매년 2000회 가량 플라즈마 실험을 수행해 왔다.

특히 국가핵융합연구소는 핵융합 상용화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0년 초전도 핵융합 장치 중에서는 세계 최초로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H-모드)’에 성공한 데 이어, 2011년에는 핵융합 연구의 최대 난제 중 하나로 꼽히는 ‘핵융합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ELM)’을 초전도 토카막 조건에서 제어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나아가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고성능 플라즈마 지속시간 70초를 달성하며 1분의 벽을 넘었고, 2017년에는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의 물리 조건을 규명하고 34초간 완벽하게 억제함으로써 ITER 운영에 필요한 운전 조건을 최초로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올해는 플라즈마 온도를 높이기 위해 새롭게 추가된 ‘중성입자빔 가열장치(NBI-2)’의 시운전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가열 성능 부족으로 달성하기 어려웠던 고성능 플라즈마 100초 운전에 도전한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에는 추가적인 중성입자빔 가열을 통해 1억℃의 플라즈마 운전에 도전할 예정이다.

윤시우 KSTAR연구센터장은 “올해 목표인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100초 돌파는 플라즈마 운전에서 중요한 대부분의 물리현상을 규명하고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100초 운전 성공은 연속운전으로 가는 시발점이자 핵융합 상용화로 가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억℃의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는 앞서 말한 대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우리나라와 함께 ITER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 중국의 국가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 플라즈마 물리연구소는 최근 실험용 핵융합 장치인 이스트(EAST)를 통해 1억℃의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중국은 2035년에 핵융합 발전소 상용화를 달성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추진 중이다.

2025년 ITER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지구상에서 핵융합 에너지 시대의 본격적인 서막이 열리게 된다. 불과 7년 뒤다. 상용화 시점은 2030년대 이후로 예상되는데, 국가별 역량에 따라 앞서나가는 경우도 나올 것이다.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핵융합 에너지의 등장은 글로벌 에너지 산업 판도를 격변으로 몰고 갈 만한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운명을 뒤바꿀 시점이 머지않았다.

<박스> 핵융합과 핵분열의 차이점

핵반응에는 핵분열과 핵융합의 두 가지가 있다. 핵분열은 원자폭탄과 원자력발전를 가능하게 하는 현상이다. 핵분열 반응을 일으킬 때는 우라늄, 플루토늄 등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다. 따라서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은 방사성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방사능 물질이 유출될 위험도 상존한다.

반면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연료로 하는 핵융합 반응은 방사능 위험과 거리가 멀다. 핵융합 반응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이 아주 미량인 데다 반감기도 수십 년에 그칠 만큼 짧다. ‘핵’이라고 하면 ‘핵폭발’이나 ‘방사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핵융합 반응은 핵폭발과는 무관하며 방사능도 걱정할 수준이 아닌 셈이다. 핵융합 에너지를 ‘무한 청정 에너지’로 지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윤현 기자 unyon21@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