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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후…‘제2 초호황’이 온다

최근 메모리 수요 감소는 일시적…내년 1~2분기 이후 경기상승 재점화 전망
4차 산업혁명 진전, 5세대 이동통신 개막으로 반도체 수요 지속적 증가 예상
반도체 산업의 경기 사이클 향방이 초미의 관심사다. 한국의 최대 수출 산업이자 국내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진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이른바 ‘슈퍼사이클(초호황)’을 이어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역대급 수익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반도체 초호황이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산업은 과연 앞으로 어떤 흐름을 탈 것인가.

  • 지난 2년간 초호황을 누렸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지만, 일시적인 하강 후에 재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쌍두마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2018년 3분기 기준으로 각각 43.4%, 29.1%에 달한다.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각각 40.8%와 11.3%를 차지하고 있다.

두 회사의 D램 및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합계는 각각 72.5%와 53.1%다. 메모리 반도체를 대표하는 양대 제품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지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어 반도체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10월 D램 고정(거래)가격은 DDR4 8Gb 제품 기준으로 7.3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10.7% 하락한 가격이다. 또 지난 10월 낸드플래시 고정가격 역시 64Gb MLC 제품 기준으로 전월 대비 5.8% 하락한 3.25달러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때 주로 일어나는 일이다. 즉, 최근 들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제품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메모리 반도체 경기 하강 시그널 잇달아

지난 2016년 하반기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려 왔다. 같은 기간 D램 가격은 3배 정도 뛰었고, 낸드플래시 가격도 2배 가까이 올랐다. 특히 2017년 세계 D램 시장은 전년 대비 74% 증가세를 기록할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반도체 경기가 ‘슈퍼사이클’에 올라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 2년여 동안 반도체 초호황이 이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데이터센터 확충에 나선 점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기업들이 폭증하는 데이터 처리를 위한 대대적 투자를 단행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대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서는 상당량의 D램이 필수적으로 소요된다. 그런데 세계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3개 회사가 약 95%를 장악하며 과점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폭증하는 D램 수요를 공급이 충당하지 못해 지속적으로 D램 가격이 올랐고, 그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 업계 3강도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2016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화두로 제기된 ‘4차 산업혁명’이 글로벌 메가트렌드를 형성한 것도 반도체 초호황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반도체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에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지난 9월까지 24개월 연속 증가라는 초유의 고공행진을 이어 왔다. 특히 지난 9월 반도체 수출액은 124억 달러로,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그다음 달부터 우리나라의 주력 반도체 제품인 D램 가격이 꺾이기 시작했다.

  • 클라우드 컴퓨팅이 세계적인 대세로 떠오르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경고’가 맞아떨어져

사실 그 전에 이미 반도체 경기 하락을 예고하는 적신호가 켜지기는 했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반도체 경기가 고점을 지났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잇달아 내면서 심상찮은 전조가 드리웠던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8월 초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투자 전망을 ‘중립’에서 ‘주의’ 단계로 하향 조정했다. 당시 모건스탠리 측은 “반도체 업황이 과열 신호를 보이고 있으며,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면 심각한 재고 조정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9월 초에도 보고서를 통해 “D램 수요가 약화하면서 재고 및 가격 하락 압박이 더욱 커졌으며, 낸드플래시는 공급 과잉으로 업황이 나빠졌다”며 반도체 시장 전망을 더욱 어둡게 내다봤다.

반도체 경기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잇달아 나오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메모리 반도체 3강으로 꼽히는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는 충격파도 발생했다. 나아가 반도체 경기 악화에 대한 우려도 점차 커졌다. 결과적으로 지난 10월부터 D램 고정가격이 하락세로 반전하면서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의 반도체 경기 전망은 적중한 셈이 됐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지난 11월 말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19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 규모를 4901억 달러로 예상했다. 올해보다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가 2.6%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지난 8월 제시한 전망치인 5.2%에서 반토막이 났다.

특히 WSTS는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0.3%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7년 61.5%, 2018년 33.2%의 엄청난 증가세를 보였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접어든다는 예상이다. 다만 비(非)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꾸준히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 반도체 시장은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WSTS의 예상이다.

이렇게 되자 국내에서는 ‘반도체 위기론’이 더욱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기준 한국 전체 수출액의 21%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한 반도체 산업의 경기가 꺾인다면 국가 경제 전반에 상당한 여파를 미칠 전망이다. 실제 영국의 대형은행 바클레이스는 지난 11월 하순 “한국의 반도체 수출 둔화가 한국 기업들의 생산과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메모리 반도체 경기는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사이클을 반복해 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D램 시장의 추이를 보면 대략 1년 정도의 짧은 호황 뒤에는 2~3년에 걸친 불황이 이어지곤 했다. D램 수요 초과로 가격이 오르면 D램 생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설비 증설에 나서기 때문에 곧이어 공급 과잉이 나타나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이 반복돼 왔던 것이다.

이 같은 설비 증설 경쟁, 이른바 ‘치킨게임’에서 버텨내 결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승리자가 된 기업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이다. 그 외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펼쳤던 다수의 기업들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가 개막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반도체 경기 사이클,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의 반도체 시장 역사를 감안하면 최근 2년간의 반도체 초호황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예전과 달리 호황이 매우 길게 이어진 데다 가격 상승세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향후 메모리 반도체 경기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예전처럼 ‘짧은 호황 뒤의 긴 불황’ 공식이 유효하다면 내년부터 한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한파가 불어 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도체 위기론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그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향후 반도체 시장의 경기 사이클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수요처로는 PC, 스마트폰, 서버 등이 꼽힌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가속화로 반도체 수요처가 더욱 다양해지고 있는 데다, 수요량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WSTS의 전망대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내년에 소폭 역성장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불황 진입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시 말해 지난 2년간의 증가세가 워낙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판매량이 조금 줄어들어도 경기 자체를 불황 국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D램 산업은 공급 과점화와 수요처 다변화 영향으로 과거에 비해 공급 과잉 기간이 확연하게 단축되고 있다”며 “내년 1분기까지 ‘미니 다운 사이클(작은 경기 하강)’을 경험한 후 2분기부터는 공급 제한과 수요 개선에 따라 D램 산업이 다시 경기 상승 국면으로 재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부터 한국,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가 본격화하는 점도 반도체 경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미 한국 이동통신업계는 지난 12월 1일을 기해 세계 최초로 5G 전파를 쏘아 올리며 서비스 상용화에 돌입한 상태다. 다만 5G 휴대전화는 내년 상반기 무렵부터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5G 시대 개막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사양 제품 판매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초고속, 대용량 데이터통신 서비스를 즐기려면 스마트폰의 ‘스펙’이 한층 더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성능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품이 바로 반도체다. 고성능 반도체 탑재량을 늘려야 스마트폰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다. 아울러 5G 서비스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면서 반도체 수요는 더욱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김영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5G의 글로벌 표준이 결정되고 서버 투자가 다시 확대되는 2020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2차 슈퍼사이클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메모리 반도체 2차 슈퍼사이클의 중심은 인공지능 서버와 모바일 콘텐츠 확대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삼성 중국 반도체 메모리 제2라인' 기공식을 열었다. 연합
<박스> 중국 반도체 굴기, 얼마나 위협적인가

중국 정부는 ‘중국 제조 2025’라는 첨단산업 육성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그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정보기술(IT), 전기전자,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현실화하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군림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적이라는 예상이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일각에서는 2018년부터 중국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양산 능력을 갖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 바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양산 능력 확보에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설사 양산하더라도 그 규모가 유의미한 수준이 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는 루트가 차단된 것도 양산 능력 구축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어쨌든 중국 반도체 산업이 지금 당장 세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영우 SK증권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은 세계 1위 기업과 비교할 때 D램의 경우 7년, 낸드플래시의 경우 3~5년,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수탁생산)의 경우 4~5년 정도 기술격차가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반도체 설계 부문은 다양한 품목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있어 제조 능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게 되면 세계 반도체 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예상이다. 결국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시간의 문제일 뿐, 머지않아 다가올 현실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 우위를 유지하려면 더욱 분발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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