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보수금 지급, 집주인에 묻다니(?)… 허점에 의혹 더해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이 자택 공사비용을 삼성물산 등 계열사가 대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물론 해당 의혹에 대한 문제점 역시 드러나며 논쟁의 여지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이 자택 공사비용을 삼성물산 등 계열사가 대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중소기업이 과거 이부진 사장 등 삼성 오너일가의 자택에 대한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사대금을 오너일가가 아닌 삼성물산 및 삼성에버랜드 등이 대신 납부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중소기업의 제보를 토대로 이부진 사장 등에 대한 형사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상태다. 다만 이번 의혹에 대해 현행법상 맞지 않는 부분과 반박 가능한 지적이 상당수 드러나면서 향후 논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소하 원내대표 등 정의당 관계자들은 지난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자택 공사대금을 삼성 계열사가 대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소하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삼성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일가 주택 공사비용 33억원을 삼성물산 자금으로 대납한 혐의를 받고 있다”라며 “오늘 기자회견은 재벌총수 일가가 자택을 수리하면서 그 비용을 기업을 통해 대납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음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측은 건축물 유지ㆍ보수 전문업체 G사의 K대표로부터 받은 제보를 토대로,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삼성 총수일가 자택의 개축 및 증축 공사대금을 삼성 계열사 법인이 대납했다고 폭로했다.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주장에 따르면, G사는 지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 측과 거래관계를 맺고 삼성 총수일가의 자택 내 방수와 콘크리트 결합 문제 등 30여건의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G사가 처리한 공사비용 전액은 삼성물산과 삼성에버랜드 또는 주식회사 계선 등을 통해 정산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G사는 삼성물산의 이건희 회장 자택 리모델링 공사비 대납과 관련해 인테리어 작업을 담당했던 업체다.

K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나와 지난 2006년 이뤄진 이부진 사장 자택 내 면적 25㎡ 크기의 연못 공사현장 사진을 제시하며 “방수공사를 잘못한 것을 제가 가서 처리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K대표는 당시 관련 세금계산서가 나타난 사진을 공개했다.

또 그는 G사가 방수공사에 대한 하자보수뿐만 아니라, 이부진 사장 자택 내 수영장의 신축 및 방수관련 실험에도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왼쪽 세번째)가 지난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삼성물산 건설 부문 부실공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윤소하 원내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밝힌 의혹에 대해 삼성물산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한다”라며 이부진 사장에 대해서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으로 형사고발할 예정임을 강조했다.

‘집 주인’ 이부진, 하자보수 비용 부담할 책임 있었나

사실 이날 삼성 측의 입장을 들어보지 않은 채 정의당과 G사 K대표의 폭로 내용만을 살펴보면, 국내 최대 재벌가인 삼성 총수일가가 약 수백만원에 이르는 자택 공사비용을 삼성물산 등 계열사에 대납시켰다는 것인 만큼 다소 충격적일 수 있었다.

다만 당시 이부진 사장의 자택에서 G사가 진행한 공사의 종류, 그리고 이 사장 자택과 삼성물산 및 G사 간의 관계, 무엇보다 관련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번 의혹 제기에 여러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문제가 되고 있는 이부진 사장의 한남동 자택은 삼성물산이 수주해 공사를 진행했고 지난 2005년 완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이부진 사장은 주택의 신축을 의뢰한 일종의 도급인이며, 건설사인 삼성물산 측은 이 사장의 의뢰를 통해 공사대금을 받고 집을 지어준 시공사 또는 수급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로 살펴보자면, 이부진 사장은 아파트의 입주예정자 또는 구분소유자에 해당한다. 삼성물산의 경우 해당 아파트의 신축 및 시공에 나선 건설업자다.

주택과 아파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신축 건물의 경우 입주가 이뤄진 후 크고 작은 하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하자가 입주자의 과실이 아닌 시공사(또는 수급자)의 시공 과정에서의 부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한 보수의 책임 역시 시공사가 지게 된다.

주택 입주 예정자는 보통 계약단계에서 시공사와 사이에 완공 및 입주가 이뤄진 뒤 주택법 및 주택법 시행령 등에서 정하고 있는 하자가 발생한 경우 그에 대한 보증책임을 시공사 측이 부담한다는 내용의 하자보수보증계약 역시 체결하게 된다.

이는 굳이 당사자 간 협의에 이뤄진 계약조항이 아닌 건설산업기본법과 민법상에도 명시된 상식 차원의 내용이다.

실제로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에 따르면, 수급인(삼성물산)은 발주자(또는 도급인, 이부진 사장)에 대해 공사의 종류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에 발생한 하자에 대하여 담보책임이 있다.

또 민법 제667조에 따르면, 완성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때에는 도급인은 수급인에 대해 상당한 기간을 정해 그 하자의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 또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하자보수뿐만 아니라 그에 갈음하는 손해배상까지 요구할 수 있다.

민법 제671조에서도 이와 같은 취지의 규정이 나타나 있는데, 여기서는 토지, 건물 기타 공작물의 수급인은 목적물 또는 지반공사의 하자에 대해 인도 후 5년간 담보의 책임이 있다.

이부진 사장은 자택 신축의 도급인이며, 삼성물산은 공사대금을 받고 집을 지어준 수급인으로 향후 하자보수의 책임은 삼성물산에 있었다. (사진=연합)

본지가 삼성물산 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이부진 사장 역시 여느 주택 신축 의뢰자들과 다름없이 공사 계약 단계에서 향후 하자보수 책임을 사업주체인 삼성물산 측이 부담한다는 계약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설명했듯이 굳이 당사자 간 계약이 아니더라도 민법상 당시 이부진 사장 자택에서 발생한 하자보수의 책임은 삼성물산이 지고 있었고, 당연히 그 하자보수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역시 삼성물산 측이 부담해야 했다.

삼성물산은 본지에 당시 이부진 사장 자택의 하자보수 책임이 있었고, 향후 하자가 발견되자 그 책임의 이행에 나섰다고 해명했다.

연못 방수 하자보수 공사비 책임, 명백히 삼성물산에

그런데 하자보수 공사의 경우 시공사들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부 전문성을 요구하는 하자보수의 경우 전문업체에 하도급을 맡기기도 한다.

삼성물산 측 역시 당시 연못 방수공사에 대한 하자보수를 G사에 맡겼고, 기자회견장에서 G사 K대표 역시 “(연못의) 방수공사를 잘못한 것을 제가 가서 처리했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당시 G사가 맡았던 임무는 하자보수가 분명했다.

정리해 보자면, 하자보수의 책임 및 그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는 집 주인 이부진 사장이 아닌 집을 시공한 주체인 삼성물산에 있었다.

또 삼성물산으로부터 관련 업무 일부를 수급한 G사는 공사비용을 이부진 사장이 아닌 삼성물산 측으로부터 정산받는 것은 대납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만약 이부진 사장이 지급한다면 이것은 불필요한 이중납부에 해당했다.

입장을 바꿔서 이번 문제를 제기한 정의당 관계자가 신축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입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거실 벽 일부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전문 감정사를 통해 이것이 시공사 측의 부실시공에서 비롯된 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해당 아파트의 시공사 측은 하자보수에 들어갔는데, 자신들이 도저히 정해진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없거나 완벽히 보수할 기술이 없어 일부 공사를 전문업체에 도급을 맡겼다.

이후 하도급 업체가 공사를 마쳤는데, 그에 따른 공사비용을 시공사가 정산하는 것을 보고 “왜 집 주인인 정의당 관계자가 공사비용을 안 주는 것인가, 이건 시공사의 대납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비(非) 삼성계 건설사 관계자들 역시 하자보수의 책임을 시공사가 떠맡고, 하자보수에 대한 하도급 업체가 공사비용을 시공사로부터 정산받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입을 모았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오른쪽 두번째)는 삼성물산 측에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물론 윤소하 원내대표 측도 상대방의 반박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연합)

다만 도급인이 굳이 하자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는 계약조건을 걸었거나, 하자가 전적으로 도급인의 잘못으로 발생해 보수가 이뤄졌다면 시공사가 하도급 업체의 하자보수 공사비용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이부진 사장 자택 연못의 방수공사가 삼성물산의 부실시공이 아닌 집 주인인 이 사장 측의 과실로 발생했음에도 삼성물산이 하자보수의 책임을 무리하게 떠맡은 것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계약상 하자보수 책임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이 하자보수에 나선 것이라면 이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G사 K대표도 연못의 방수공사가 잘못됐던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했고, 삼성물산 측 역시 본지에 당시 시공상 문제로 발생한 하자가 맞다고 설명해줬다.

무엇보다 이부진 사장의 자택은 2005년경 완공됐고, 하자보수에 돌입한 것은 2006년이었다.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건설공사의 종류별 하자담보책임 기간’에는 ‘방수’에 해당하는 전문공사의 경우 하자담보책임의 기간을 3년으로 두고 있다.

삼성물산 측도 당시 이부진 사장 자택의 하자보수 문제는 모두 시공사의 하자담보책임 기간 내에 발견되고 공사에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사실 이건희 회장의 자택 공사비용을 삼성물산이 대납했다는 의혹은 해당 공사가 ‘인테리어 작업’이었고, 이는 하자보수가 아닌 증축 및 리모델링 공사에 해당하므로 이를 시공사가 대납할 경우 당연히 법적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그런데 하자보수는 시공사가 공사 및 비용부담의 책임을 지는 것이 법적으로나 당사자 간 계약조건상 전혀 문제될 부분이 없었다.

설령 당시 G사 측이 이부진 사장 자택 하자보수 비용을 삼성물산이 아닌, 에버랜드 측에 받았다고 한다고 해도 이것이 과연 대납 또는 배임 여부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G사 K대표는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2006년 당시 이부진 사장 자택 연못 방수공사의 대금은 삼성물산이 아닌 에버랜드로부터 받았으며 관련 증거도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그는 기자회견장에서는 삼성물산에서 발행한 세금계산서 2건만을 제시했을 뿐, 에버랜드로부터 대금을 받았다는 세금계산서나 영수증 등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향후 추가 폭로를 예고했을 뿐이었다.

이에 삼성물산 측은 현재 K대표의 주장을 반박할만한 관련 자료를 찾고 있지만, 2006년도에 작성돼 오래된 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K대표가 발급받은 하자보수 대금과 관련된 세금계산서가 에버랜드에서 발행됐을지라도, 여기에도 삼성 측 입장에서는 해명할 부분이 있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의 자택 공사대금 대납과 관련된 이슈가 불거졌을 때도 언론보도 등을 통해 다뤄진 사실이지만, 과거 삼성 오너일가는 자택의 신축, 증축, 보수 등 전반적 관리를 자산관리 전문업체에 맡겼다.

그런데 삼성 오너일가는 당시 자택의 관리를 에버랜드 소속 건물관리 사업팀에 맡겼다. 현재 이들은 지난 2014년 1월 삼성 계열의 경비·건물관리 전문업체인 에스원이 에버랜드의 건물관리 사업을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에스원 소속으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이건희 회장과 이부진 사장 등 오너일가가 에버랜드 건물관리팀에 자택 관리를 무료로 맡긴 것이 아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상태였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사진=연합)

때문에 K대표가 만약 당시 에버랜드 측으로부터 대금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대납, 횡령 또는 배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에버랜드 건물관리 사업팀이 삼성 오너일가로부터 자택 관리에 대한 대금을 지급받고, 또 이들이 에버랜드 명의로 K대표 측에 자택 공사에 대한 대금을 지급했다면, 오너일가가 자택 관리를 위해 지급한 돈이 결과적으로 K대표 측에 돌아간 만큼 불법적 소지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윤소하 원내대표는 이번 의혹에 대해 삼성물산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한다고 했지만, 과연 제기한 의혹에 역으로 돌아오는 의문점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갈지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