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정반대’ 결과… BNK 부실공시 의혹, 다시 도마 위에(?)

BNK금융지주와 예금보험공사 간 경남은행 주식매수계약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새국면을 맞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 2016년부터 업계와 정치권의 주목을 받아왔던 BNK금융지주와 예금보험공사 간 경남은행 주식매수계약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법원은 BNK금융지주의 주장을 받아들여 예금보험공사가 BNK 측 청구금액 전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최근 내려진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는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에 BNK금융지주 측은 지급받아야 할 손해배상액 액수가 기존보다 턱없이 줄어들었음은 물론, 소송 초기 제기된 부실공시 의혹의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생긴 다소 난처한 상황을 맞았다.

지난달 24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부장판사 김시철) 심리로 열린 BNK금융지주가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예금보험공사가 BNK금융지주에 6억 2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결과는 원고인 BNK금융지주 측의 일부승소였지만, 사실상 BNK금융지주 측의 패소에 가까웠다.

이 사건 원심 판결에서 인용된 BNK금융지주 측 청구사항 대부분이 항소심 재판부로부터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심 판결에서는 BNK금융지주 측이 청구한 532억여원 전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이에 한참을 모자라는 6억 2000여만원밖에 받을 수 없게 된 셈이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이 법정공방은 지난 2014년 10월 금융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BNK금융지주과 예금보험공사 간 ‘경남은행 주식 매수’에서 비롯됐다.

당시 두 회사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경남은행 발행주식 총수의 약 56.79%를 1조 2269억 800만원에 BNK금융지주 측이 매수한다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예금보험공사는 BNK금융지주에 경남은행 주식 약 4467만주를 인도했고, 경남은행은 BNK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앞서 BNK금융지주는 경남은행에 대한 예비실사 및 확인실사 그리고 수차례의 협상을 거쳤다.

이어 두 회사는 주식매매계약 과정에서 세부 계약조항에 매도인인 예금보험공사가 매매대상 회사인 경남은행의 재무제표와 법령준수 여부 등이 진실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내용의 ‘진술 및 보장’ 사항을 실었다.

여기에는 매도인인 예금보험공사가 제공한 경남은행에 관한 진술 및 보장 사항 그리고 기타 정보가 실제의 현황과 다를 경우 그로 인한 손해를 매수인인 BNK금융지주 측에 배상하며, 그 금액의 매매대금의 10% 이내로 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돼 있었다.

다시 말해 경남은행의 향후 자산손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부실한 사항이 있었음에도 예금보험공사 측이 이에 대한 내용을 허위 또는 불투명하게 BNK금융지주 측에 제공했다면, 계약상 진술보장 위반 사항으로서 예금보험공사 측의 손해배상 의무가 생긴다는 의미였다.

두 회사의 주식매매계약이 이뤄진 지 1년 뒤인 지난 2015년 10월경, BNK금융지주 측은 예금보험공사가 주식매매계약상 진술 및 보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당시 BNK금융지주 측은 경남은행이 과거 ‘대손충당금 설정 오류 및 과소 적립’에 따라 순자산가치가 과대평가 됐다고 주장했다.

대손충당금은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채권을 미리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설정하게 되며, 이에 대한 오류가 있었다면 주식매매계약상 재무제표 진술보장 위반에 따라 예금보험공사 측의 손해배상 책임이 생긴다는 입장이었다.

또 BNK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 측이 주식매매계약상 경남은행 또는 그 임직원은 과거 3년간 벌과금, 과태료, 영업상 불이익 초래 등 법령의 중대한 위반 사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진술 및 보장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위반 사유가 다수 밝혀져 역시 법령 위반의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경남은행의 분할합병 비용에 대한 진술보장 위반 사유까지 더해져 BNK금융지주는 약 103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요구서를 예금보험공사에 보냈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 측은 외부 회계법인 등의 법률자문과 금융위원회의 의견을 통해 분할합병 비용 진술보장 위반 관련 일부 금액인 10억여원만을 손해액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거절했다.

두 회사 간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BNK금융지주 측은 기존의 손해배상액 중 일부인 532억원을 지급하라며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권도 주목했던 BNK금융지주와 예금보험공사의 법적 분쟁

주식매매계약상 진술보장 규정을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둘러싼 두 회사의 법적 갈등은 업계뿐만 아니라 정치권 내에서도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해영 의원은 두 회사의 소송 내용 중 예금보험공사가 사전에 경남은행의 부실 사항을 알고서도 무리하게 BNK금융지주와 주식매매계약을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김해영 의원은 해당 의혹이 사실인 동시에 예금보험공사의 잘못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면, BNK금융지주 측이 요구한 손해배상액을 공적자금을 투입해 보전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했다.

두 회사 간의 원심 소송 결과는 지난 2017년 12월 BNK금융지주 측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BNK금융그룹, 부산은행 본점 사옥. (사진=연합)

이 사건 원심 재판부는 청구 사항 중 인수 전 경남은행의 대손충당금 설정오류 및 과소적립 부분에 있어 원고 BNK금융지주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 결과 인정된 사실에 따르면, 경남은행은 지난 2013년 당시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져 있던 법인 A사 그리고 수년째 당기순손실 및 누적결손금이 지속돼 채무상환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던 B사 등의 자산건전성 등급을 상향했고, 이들 회사의 대손충당금을 과소 적립하는 오류를 범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당시 경남은행이 ‘개별평가법’이 아닌 ‘집합평가법’에 따라 대손충당금 설정을 잘못한 결과이자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 위반한 회계처리에 해당하므로, 예금보험공사 측의 주식매매계약상 재무제표에 관한 진술보장 조항 위반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예금보험공사 측은 재무제표상 대손충당금에 대한 내용은 사실이 아닌 가치평가 영역에 속하므로, 대손충당금 적립에 관한 오류를 회계원칙상 중대한 위반이자 제무제표에 관한 진술보장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특히 BNK금융지주가 인수 전 경남은행에 대한 예비실사 및 확인실사를 수개월 간 거쳤고, 회계법인으로부터 경남은행의 당시 기준재무제표에 대한 적정의견 검토를 받았던 점도 근거로 들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당시 재판부는 원고 청구 사항 중 경남은행 또는 임직원의 법령준수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부분에 대해서도 BNK금융지주 측의 손을 들어줬다.

실제로 재판부는 경남은행 여신위원회가 지난 2012년부터 C사에 여신운용규칙상 한도를 초과한 부당대출을 실행했고, 사후관리 및 점검 의무를 위반한 결과 수십억 원의 대출채권 잔액을 상당 부분 회수하지 못하는 등 C사를 포함한 여러 회사에 여신운용규칙 및 관련 법령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경남은행 한 지점의 직원이 지난 2012년 2014년까지 회삿돈 16억여원을 횡령해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약 1억여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15억여원이 회수되지 않아 사측 손실이 발생한 바 있다.

재판부는 두 가지 경우가 모두 경남은행 측이 관련 법령을 준수하지 못해 자산손실을 입었고, 이는 예금보험공사의 BNK금융지주에 대한 법령준수 진술보장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물론 예금보험공사 측은 관련 사항들이 경남은행의 내부 규정일 뿐 법령위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이는 재판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상 전세 역전으로, BNK금융지주 ‘부실공시’ 논란 재점화되나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대손충당금 설정오류 및 과소적립 부분 그리고 법령준수 진술보장 위반 등에 대해 원심과는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앞서 원심에서는 당시 경남은행이 집합평가법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설정했고 이는 K-IFRS를 위반한 회계처리라고 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개별평가법과 집합평가법의 적용은 해석에 있어 다양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BNK금융지주 주장처럼 개별평가법을 적용한다고 할지라도 대손충당금을 산정함에 있어 어느 정도 주관적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라며 “당시 경남은행도 자체적으로 자산건전성 분류기준과 대손충당금 적립기준 등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었고, 구체적인 해석과 운용에 있어서는 경남은행의 실무 관행을 존중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했다.

이는 당시 경남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 등과 관련해 K-IFRS에 반하거나 재무상황을 중요한 면에서 적정하게 반영하지 못했다고 할 수 없고, 때문에 예금보험공사의 BNK금융지주에 대한 재무제표 진술보장 위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경남은행 측의 법령준수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부분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C사의 경우가 경남은행의 내규 위반에 해당할 수 있어도 금융당국 등 정부기관의 어떤 제재도 없었기에 법령위반에 속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경남은행 직원의 횡령 건에 대해서도 사측과 문제의 직원과 소송 과정에서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지며, 이 역시 정부기관으로부터 벌과금, 과태료 등의 ‘중대한 법령행위 위반’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항소심 재판에서 BNK금융지주 측이 청구한 법령준수 진술보장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부분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NK금융지주 측은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지난 13일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BNK금융지주의 입장에서는 기존보다 턱없이 줄어든 손해배상액 부분이 재판부에 상고장을 제출하게 된 주요 계기였겠지만, 또 다른 큰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동안의 재판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 측으로부터 지적받아 온 BNK금융지주 측의 과실이 이번 항소심 결과로 인해 법적사실로 인정될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BNK금융지주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기 전 경남은행에 대한 예비실사 및 확인실사 그리고 수차례의 협상을 꼼꼼히 거쳤다.

그렇다면 예금보험공사와 경남은행이 공모해 마음먹고 속이려고 하지 않았던 이상, 문제가 된 재무제표 관련 진술보장 위반 등에 관해 BNK금융지주 측도 충분히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예금보험공사에 긍정적인 항소심 판결이 내려지면서 BNK금융지주 측의 과거 부실공시 논란까지 재점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 본사. (사진=한민철 기자)

이 사건 원심 소송이 진행될 때부터 지적 받아온 부분이지만, 당시 BNK금융지주 측은 경남은행의 인수로 발생한 부실 자산이 1000억원대에 이른다는 점 그리고 예금보험공사와 532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게 된 사실도 공시하지 않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BNK금융지주 측은 일부 언론에 경남은행의 부실 자산은 소송에서 승소하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주주 손실과 관계가 없기에 공시할 의무도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 결과로 인해 BNK금융지주가 애초 내놓았던 해명의 설득력이 흔들리게 됐다. 동시에 향후 재판 결과가 예측불가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두 회사의 긴 법적갈등을 둘러싼 업계의 이목은 더욱 집중될 전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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