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사업 분리발주 의무 무시, ‘갑질근절’ 취지 무색

서울투자운용㈜이 서울리츠 1호의 공공주택 건설공사 사업과 관련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로 최근 1심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서울시의 한 공공주택 건설공사 사업 현장의 공사 입찰업무를 담당했던 법인이 최근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중소기업체 보호와 일감몰아주기 방지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전기공사 분리발주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행위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H 서울주택도시공사와 주택도시기금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서울리츠임대주택 제1호 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서울리츠1호)’는 지난 2016년 6월경 서울시 강동구의 한 공공주택 건설공사 사업과 관련해 부동산의 취득과 개발, 임대, 관리 등 공사 및 자산관리 업무를 서울투자운용㈜에 위탁했다.

지난 2017년 9월경 서울투자운용은 해당 공공주택 건설공사에 대한 입찰을 실시했고, 같은 해 12월 공사 입찰에 낙찰된 회사들과 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발생했다. 서울투자운용이 각 공사의 입찰을 공고할 때, 전기공사를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발주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턴키방식(일괄발주)으로 입찰 공고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검찰은 서울투자운용 법인 그리고 당시 전기공사의 입찰 업무 관련 책임자였던 이 회사 임원급 직원들을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지난달 초 법원은 이 사건 재판에서 서울투자운용 법인과 직원들 모두에게 벌금형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측 서울투자운용 법인과 이 회사 직원들은 해당 판결에 불복해 현재 항소장을 제출한 상황이다.

사실 공공사업의 전기공사는 원칙적으로 전기공사업자가 아니라면 이를 도급받거나 시공할 수 없다.

때문에 발주처는 특별한 예외 사유가 없는 이상 전기공사를 분리 발주해야 한다. 이는 전기공사를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해 전기공사업자에게만 입찰 참여권을 부여한 뒤 지명경쟁 입찰로 계약을 맺는 형태를 의미한다.

전기공사업법 제11조에서는 전기공사를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해 발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전기공사를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 발주하지 않은 채 발주처가 공사를 입찰하거나 도급했다면, 발주처의 법인과 업무 책임자 등은 전기공사업법의 벌칙규정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전기공사에 대한 분리발주 의무가 상식적인 수준의 내용이지만, 아직도 이를 위반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이 전기공사업법 시행령 제8조에서 규정하는 ‘분리발주의 예외 사유’를 들어 전기공사를 일괄발주하고 있다. 해당 규정에는 공사의 성질상 분리발주를 할 수 없거나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공사로서 기술관리상 분리발주가 불가능한 경우 등이 포함돼 있다.

서울투자운용 측도 이 사건 1심 재판 과정에서 분리발주의 예외 사유를 들어 당시의 공공주택 건설공사가 ‘설계·시공 일괄공사’에 해당해 공사의 성질상 분리발주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그러나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공공주택 건설공사에 대해서도 전기공사의 분리발주 의무를 지킨 사례가 다수 존재하며, 공공주택 건설공사를 입찰하는 단계에서 설계·시공 일괄 입찰 방식으로 진행한 것은 서울투자운용 측의 경영적 판단이었을 뿐 전기공사를 분리 발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당시 서울투자운용 측의 공공주택 건설공사가 공사의 성질상 분리해 발주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무엇보다 서울투자운용은 기존에 용역을 맡았던 다른 사업장에서 역시 정보통신공사업법에 따라 분리발주 의무가 있는 정보통신공사에 대해 일괄발주하면서 정보통신공사협회로부터 고발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에 서울투자운용 측은 이와 같은 고발이 또 다시 제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해당 공공주택 건설공사에서는 정보통신공사를 분리해 발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서울투자운용이 위탁한 공공주택 건설공사의 전기공사에 관해서도 정보통신공사와 마찬가지로 분리발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설계·시공 일괄 입찰이라는 공사 방식의 특수성을 들어 분리발주가 불가능한 경우라고 해석하기 어려운 점에 비춰봤을 때, 피고인들이 공사의 성질상 분리해 발주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오인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솜방망이 처벌에 여전한 분리발주 의무 위반 행위

앞서 언급했듯이 전기공사에 대한 분리발주 의무를 위반하는 사례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서울투자운용 사건의 경우처럼 발주처가 해당 공사가 분리발주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었다는 점에서 고의성이 짙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일괄입찰 방식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이라고 여기거나,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줄 목적으로 분리발주의 예외 사유를 들어 전기공사의 일괄발주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전기공사업법에서 전기공사의 분리발주를 원칙으로 두는 이유는 소규모 전기공사 전문업체의 입찰 참가기회를 높여 중소기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전기공사의 분리발주 의무의 이행은 국내 건설업계가 지향하는 중소기업체 보호 및 일감몰아주기 갑질 방지 등의 긍정적 효과를 이끌 수 있는 기본적 사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법적문제가 돼 형사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최대 500만원의 벌금형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서, 의도적으로 전기공사의 분리발주 위반 행위를 저지르는 현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특정 공사사업의 주간사 및 출자자, 토지주 등이 발주업무 담당자의 분리발주 의무 이행에 대한 관리o감독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면, 이런 문제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투자운용 측의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서울리츠1호의 주주인 SH공사 그리고 이 SH공사의 지도감독 기관인 서울특별시에서 분리발주 의무 위반의 예방 및 사후 관리의 의무가 있었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투자운용 측이 진행한 공공주택 건설공사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 등의 승인권자로서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사 현장에서의 위법사항이나 법적문제 여부에 대한 파악이 필요했다.

서울특별시는 본지에 서울투자운용 측이 이번 전기공사업법 위반으로 인해 1심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알 수 없었으며, SH공사의 지도감독 기관으로서 서울리츠1호 사업과 관련해 향후 위법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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