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는 게임이라도 끝까지 하라 ··· / 그래야 배우는 게 있다”

윤윤수 회장의 휠라코리아가 시장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휠라코리아의 시가총액(3월 28일 기준)은 4조 5,531억 원이다. 코스피에 상장된 국내 의류브랜드 중 단연 최고다. 한때 뒷걸음질까지 치던 걸 기억하자면 그야말로 ‘대반전’이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의 약진은 “단기적 열풍에 그칠 것”이라는 시장의 평가를 완전히 뒤엎는 결과다. 휠라 브랜드의 화려한 부활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시장이 공격적인 투자와 브랜드 이미지 리뉴얼, 차별화된 영업 전략으로 사상 최대실적을 이끌고 있는 윤윤수 회장에 주목하는 이유다.

휠라 제공

과감한 브랜드 혁신 영업이익 껑충

윤윤수 회장은 휠라를 공식 인수한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휠라 브랜드의 이미지와 체질 개선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다. 휠라코리아의 작년 매출액(잠정실적 기준)은 2조 9546억 원으로 3조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잠정 영업이익도 약 3600억 원으로 전년대비 64.3% 포인트 늘었다. 휠라코리아의 내년 매출액 목표는 4조 원이다. 유수의 패션 브랜드들이 1조원 수준에서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 패션 브랜드로서 3조원 선에 근접한 것은 `신화적’이다.

1911년에 탄생한 휠라 브랜드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윤윤수 회장은 2003년 이탈리아 소재의 휠라 본사를 MBO(내부경영자 인수 방식)을 통해 인수했다. 2007년 3월엔 휠라코리아(주)가 휠라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본사)을 완전히 인수했다. FILA USA를 비롯한 해외지사의 로열티도 확보하게 됐다. 휠라코리아의 총 매출은 국내 매출과 자회사 매출, 해외 라이선스 로열티를 포함하는 수치다.

샐러리맨 신화··· 험난했던 인생역정

윤 회장은 휠라 브랜드를 완전히 인수한 뒤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곤두박칠 쳤던 브랜드 가치를 정상궤도로 올려놓았다. 서른 살의 나이에 한진해운에 입사한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으로서 글로벌 기업의 총수로 올라선 그에게 샐러리맨 신화라는 별칭이 따라붙게 된 계기다. 윤 회장은 한진해운을 거쳐 화승 이사, 휠라코리아 대표이사를 거쳐 휠라 회장까지 올랐다.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 성공 뒤에 숨겨진 윤 회장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윤 회장의 집에 초대받은 정승욱 전무이사는 차려진 밥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집 밥상보다 무려 1개나 많은(?) 반찬만 소탈하게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승욱 전무는 수천억 대의 자산가지만 소탈하고 검소한 모습 때문에 존경심을 갖는 직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윤 회장의 성공가도만 보면 실패라는 '그늘진 구석'은 없을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은 누구보다도 험난했다. 윤 회장은 어린 시절 의사의 꿈을 키웠다. 그의 어머니는 윤 회장을 낳은 지 100일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도 18살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살려 달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외침은 윤 회장의 가슴에 사무쳤다. 그는 재수 끝에 서울대 치대에 합격했지만 치과의사가 아닌 아버지처럼 속절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입학 6개월 만에 치대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했다.

하지만 의대 진학에 실패했고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면서도 의대 진학을 위해 3번이나 시험을 더 봤지만 계속된 실패를 맛봤다. 졸업도 서른이 돼서야 했다. 윤 회장은 이 시절을 두고 ‘나의 가장 큰 실패지만 가장 큰 자산’이라고 돌이킨다. 이때부터 윤 회장은 ‘실패하는 게임이어도 무조건 끝까지 하라’는 교훈을 되새겼다. 그의 ‘어려운 시절과 실패 속에서 참을 줄도 알고 노력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됐다’는 고백은 기업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냉혹한 시장에서 어차피 실패하는 게임이라면 빠르게 접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윤 회장은 기업경영과 인생을 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정 전무는 “회장님은 ‘실패해 손해를 보는 게임이라도 분명히 배우고 남는 게 있다’고 항상 강조했다”며 “과거 휠라코리아가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이런 경영철학이 지금의 휠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몇 년 전 윤 회장의 칠순잔치는 참석자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불과 6개월 간 다녔던 서울대 치대 합격 명단을 남산도서관에서 어렵게 찾아 스크린에 올린 순간, 참석자들 모두 노력과 인내, 좌절과 성공이 교차하는 그의 삶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과감한 투자 - 세계 1위 골프공 브랜드 인수

2011년 휠라코리아는 미국 아쿠쉬네트(Acushnet)사를 인수하면서 다시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회사는 골프공 세계 1위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를 만드는 곳으로 2016년 10월엔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아쿠쉬네트의 또 다른 골프브랜드 풋조이(Footjoy)도 휠라의 계열사가 됐다. 풋조이 역시 골프화와 골프 장갑에서 세계 1위 브랜드다. 휠라코리아는 이 회사의 지분 53%를 갖고 있다. 아쿠쉬네트의 활약으로 매년 800억 원의 돈이 굴러들어오고 있다.

휠라코리아 매출은 2015년 8158억 원, 2016년 9671억 원, 2017년 2조 5303억 원, 2018년 2조 9546억 원으로 매년 큰 폭의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2018년 기준 국내 매출이 약 5000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자회사 매출과 해외 로열티 등으로 얻는 이익이 상당히 크다. 실제로 2018년의 전체 영업이익은 3571억, 국내 영업이익은 565억이다. 윤 회장의 과감한 투자와 경영전략이 객관적인 성과로 드러난 셈이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휠라코리아 사옥 전경. 휠라 제공

휠라코리아가 급속한 성과를 내는 상황에서 최근 큰 변화가 있었다. 서초에 위치한 본사에 세를 내주고 강동구에 위치한 건물로 임대 이전을 갔다. 휠라코리아 측은 “매각 검토와 새로운 경영체계를 위한 매각 검토라는 분석은 틀린 말”이라며 “윤 회장님의 효율적인 경영지시에 따라 재무건전성과 직원의 복지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휠라코리아 사옥이 노후화되기도 했고 역세권도 아니어서 직원들의 편의를 위한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대세로 만든 ‘복고풍’ - 1020세대 열광

윤 회장은 패션디자이너는 아니지만 글로벌 브랜드 휠라를 이끄는 ‘리더’로서 무조건적인 혁신을 강조해 왔다. 정신 차리지 않고 교만하고 자만하는 순간 기업은 ‘끝’이라며 끊임없이 ‘변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 변신이야말로 휠라의 ‘부활’을 이끈 핵심이다. 윤 회장은 2016년부터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하며‘중년’ 느낌의 중후한 브랜드 이미지를 벗겨냈다. 지금의 휠라코리아는 밀레니얼 새대(1980년대부터 2000년대 생의 인구집단)와 교감하는 ‘젊은’이미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1990년대 유행한 복고풍을 토대로 트렌디한 디자인을 완성했고, 10-20대들이 이런 콘셉트의 복고풍 의류와 신발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글리슈즈 열풍을 일으킨 휠라의 디스럽터2. 휠라 제공

2년 6개월 전에 출시된 코트디럭스는 100만 켤례 이상 팔렸다. 어글리슈즈 디스럽터2는 출시 1년 9개월 만에 국내에서만 180만 켤레가 판매됐다. 해외 판매 실적은 무려 820만 켤레다. 휠라의 돌풍이 한때의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결과다. 이 신발은 전 세계에 어글리 슈즈 열풍을 일으키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실제 미국 풋웨어뉴스에서는 ‘올해의 신발’로 선정되기도 했다. 레트로효과(복고풍의 패션스타일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시장의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차별화’된 영업 전략 `강력한’ 경쟁력 확보

윤 회장은 유통에서도 변신을 꾀했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에서 온라인 매장 중심으로 바꿨다. 그의 아들인 윤근창 대표는 실제적인 유통전략을 펼치며 힘을 보탰다. 신발, 의류 편집숍 등 온라인 유통을 강화하며 큰 틀에서 혁신을 추진한 것이다. 실제 휠라코리아는 온라인 전용상품을 대폭 확대하면서 유통경로도 다양하게 넓혔다.

최근 휠라코리아 발표에 따르면 온라인 매출은 전년대비 무려 3배 가까이 성장했다. 2017년 온라인 매출이 전년대비 10배 이상 뛴 것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성장세다.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를 비롯한 단독상품을 출시하는 등 유통경로를 확대한 것이 주효했다.

스프링 헤리티지 화보 모델 김유정. 휠라는 성공적인 브랜드 이미지 리뉴얼로 10~20대를 상징하는 젊은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휠라 제공

면세 사업으로 ‘오프라인’도 확대

휠라코리아는 지난해부터 면세점에 입점하며 오프라인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기존에 강세를 보인 온라인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라인 면세점도 열었다. 온오프라인에 걸쳐 스포츠브랜드의 면세 사업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다. 실제 면세사업은 해외 진출을 원활히 돕는 중요한 전략이다. 관련 업계에선 면세점에 입점하면 3배 이상의 월 매출을 기록한다는 보고도 있다.

휠라코리아가 면세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는 해외에서의 실적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휠라코리아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더 많은 실적을 올렸다. 면세 사업을 확장해 세계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휠라코리아는 중국,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브랜드 이미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시장에서의 약진으로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 개선에 큰 효과를 본 배경이다.

윤 회장의 경영 리더십과 윤근창 대표의 유통전략이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인데, 애초 증권업계에선 휠라코리아의 약진을 유행에 편승한 반짝 효과로 봤었다. 하지만 최근 4~5년간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해외에서 더 좋은 평가와 실적을 거두면서 그런 평가는 쏙 들어갔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