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놓은 朴회장, "도약 위한 결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논란과 관련해 책임을 지기 위해 전격적으로 퇴진을 결정했다. 2002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지 17년 만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데 이어 박 회장이 자진 사퇴키로 하면서 재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시아나는 3월 28일 “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한정 감사보고서 파문 등으로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그룹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그룹 회장,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대표이사(등기이사), 금호고속 사내이사 자리를 모두 내려놓게 된다. 이는 박 회장이 현재 가진 그룹 내 모든 직함을 내려놓은 것을 의미한다.

29일 금호산업 주주총회에서 박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었으나 박 회장이 퇴진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해당 안건은 자동 폐기될 전망이다.

박 회장의 퇴진의 배경에는 그룹 전체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최근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은 것이 컸다는 분석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부실에 빠지면 그룹 전체에 재무 리스크가 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시아나항공은 감사보고서 수정으로 지난 무려 195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여파로 금호산업도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고 주식시장에서 두 회사의 주식 매매가 지난 22~25일 정지되기도 했다.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올해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현재 신용등급이 BBB-인 아시아나항공은 신용등급이 한 단계만 떨어지면 ‘투기등급’으로 분류된다. 또 신용등급과 연계된 차입금을 조기 상환해야 하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은 지난달 26일 감사의견 ‘적정’을 받은 감사보고서를 공시했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시장 불신을 키웠다.

박 회장이 이날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압박감과 책임감이 드러났다.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논란과 관련해 그룹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책임을 통감하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퇴진을 결정했다”며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퇴진이, 임직원 여러분들에게는 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란 모순에서 많은 고심을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일생을 함께 해 온 그룹이 어려운 상황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은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도록 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고객의 신뢰 확보와 재무적 안정을 과제로 남기게 돼 안타깝다”며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제 불찰이고 책임”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사회에 기여하며 업계 최고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비상경영 체제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새로운 회장과 경영진을 도와 각고의 노력과 협력을 다해 주시길 부탁 드린다고 당부했다.

그룹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채권단과 체결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MOU(양해각서) 기한이 다음 달 끝나는 만큼 MOU 연장이 절실하다. 박 회장의 퇴진은 전날 저녁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협조를 요청한 후 이뤄졌다. 그룹은 박 회장이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기 전 이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진정성을 설명했다고 했다. 이 상황을 종합해보면 박 회장은 채권단을 설득하기 위해 용퇴라는 강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회장은 1991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2002년 그룹 회장에 취임해 공격적으로 회사 규모를 키웠다. 박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순위 7위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과도한 차입에 의한 인수·합병(M&A)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이에 대해 책임지고 2009년 그룹 회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1년 만에 복귀한 박 회장은 2014년 아시아나항공 대표로 다시 취임하며 지금까지 경영을 책임져 왔지만, 이번 감사보고서 사태로 결국 퇴진을 다시 선택하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우선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해 경영 공백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1972년 그룹에 입사해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 핵심 계열사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금호산업과 대한통운 사장 등을 역임했고, 금호그룹 중국 본부장을 맡아 금호고속의 중국 진출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룹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 명망 있는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부 영입을 공언한 만큼 차기 회장은 전문경영인이 선임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3세 경영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적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시아나IDT는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IT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박 사장은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전략경영담당 이사, 전략관리부문 상무, 금호타이어 전무를 거쳤다. 이사가 된지 6년 만에 금호타이어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을 맡아 서재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과 투톱체제를 구축했다. 박 사장은 위기관리 능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워크아웃 돌입과 졸업을 모두 겪어 경영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전해진다.

이종혜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