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만에 국적항공사 매물로…SK·한화·CJ 등 ‘2조원 베팅?’탐색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알짜배기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이 빠른 시일 내 ‘새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5일 금호산업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의결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금호아시아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금호 측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즉시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된 수정 자구계획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산은은 조만간 채권단 회의를 열어 금호아시아나가 제출한 수정 자구계획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 뒤 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매각 방식은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 찾기는 구주(舊株) 매각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인수자는 금호산업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지분(33.5%)을 모두 사들인 뒤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충하고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금호 측은 ‘통매각’을 약속했다. 자회사의 사업이 항공업과 관련이 깊고, 한데 묶어야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수자가 요청하면 분리 매각을 협의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몇몇 자회사를 놓고 뜻이 맞지 않아 인수합병(M&A)이 무산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매각과는 별개로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전량을 담보로 잡았다. 사실상 매각과정을 산은이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자구안에는 매각 작업이 길어지거나 어긋날 가능성에 대비해 ‘안전장치’도 포함됐다. 채권단에 구주에 대한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 얼롱·drag along)을 주고, 아시아나항공 관련 상표권도 넘긴다. 드래그 얼롱은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을 끌어다 제3자에 팔 수 있는 권리다. 채권단이 이 권리를 갖게 되면 매각을 안전하게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금호아시아나는 이른 시일 안에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주관사 및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 매각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자회사까지 한꺼번에 통매각할 가능성이 높아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하면 매각가격은 1조~2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SK·한화·CJ 등 주판 튕기기 아시아나항공(당시 서울항공)은 31년 만에 새 주인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22개국 64개 도시에 76개 국제선 노선을 갖춘 대형 국적항공사다. 취득이 까다로운 항공운송사업면허를 보유한 데다 현금 창출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인수합병(M&A) 매물로 꼽힌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국적 대형항공사(FSC) 면허와 LCC 면허 두 개(에어부산·에어서울)를 한꺼번에 가져갈 수 있다. 국내 유력 대기업들과 사모펀드(PEF)들이 합작 투자를 검토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다.

항공업계와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일단 SK그룹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는다. 인수대금이 수조원대로 전망돼 탄탄한 자금력과 신용도를 갖춘 기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SK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금성자산 6조7830억, 이익잉여금 12조2173억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현금화가 용이한 단기금융상품, 금융기관 예치금을 합한 연결 시준 현금보유액은 28조5500억원으로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지난해 SK그룹은 회사채 시장에서 가장 많은 규모인 7조 117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하면서도 견고한 신용도를 증명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재 인수 후보로 오르내리는 그룹 중 자금력을 고려하면 단연 SK그룹이 부담 없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또 SK그룹은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이룬 경험이 있다. 유공(SK이노베이션),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비롯해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 등의 굵직한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확장한 그룹이다. 그룹의 정유 사업과 항공 사업은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투자처가 아시아나항공이 될 가능성을 높게 점쳐 볼 수 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SK이노베이션을 통해 항공유를 들여왔다.

앞서 지난해에도 SK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에 휩싸였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여기에 더해 최규남 전 제주항공 대표가 SK수펙스추구협의회(부사장)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최 부사장은 지난해 3월 퇴임까지 6년 동안 제주항공에 몸담으며 기업공개(IPO)를 성사시키고 회사를 1위 저비용항공사로 키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SK는 공시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한화도 유력한 후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기 엔진,부품을 제작하는 한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만약 한화그룹이 항공운송업을 할 경우 항공기 제작사와의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고 계열사의 부품을 납품할 수도 있다. 과거 항공업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에 투자했다가 사업이 반려됐다. 이 때문에 항공사 M&A 때마다 한화그룹은 항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화 또한 현금성자산(2조2173억원)과 이익잉여금(3조6602억원)은 탄탄하다.

금융업계는 이와 함께 면세점, 저비용항공사(LCC)를 운영하는 대기업들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세계, CJ, 애경 등이다. 일부 대기업은 이미 대형 PEF들에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항공사 최대주주가 되려면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PEF 단독으로는 인수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PEF 중에서는 IMM프라이빗에쿼티와 스틱인베스트먼트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익 282억 원을 올렸는데, 금융비용으로 1635억 원이 나가면서 전체 순손실 1959억 원을 냈다. 아시아나항공이 떠안고 있는 차입금만 해결한다면 재무구조가 단숨에 개선될 여지는 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시아나항공은 영업능력이나 현금흐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조원대로 예상되는 인수 대금과 부실 징후를 보이는 경영 지표 등을 감안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부채 규모는 7조979억원으로 부채 비율은 649%에 달한다. 시장에선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1조에서 1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하는데, 이와 별도로 올해 안으로 갚아야 할 금융부채는 1조1904억원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관광·호텔업 등으로의 사업 다각화, 저비용항공사(LCC)와의 차별화 등이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의 열쇠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린 기업 중 상당수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인수 후보자 명단에 새롭게 오르내린 금호석유화학과 호반그룹도 인수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국적 항공사 인수에는 변수가 적지 않은 데다 아시아나항공의 몸값이 치솟는 것을 막기 위해 ‘후보 기업’들이 겉으론 무관심한 척하면서 물밑에서 치열한 탐색전을 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종혜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