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한일 양국은 과거사 문제에서 파생된 여러 갈등을 겪어왔다. 일본의 이번 무역보복 조치는 우리 사법부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표적 보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시기적으로 일본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고, 집권당인 자민당이 이번 무역 보복 조치를 선거 전략에 적극 활용하는 등 정치적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 상황에서 일본에 맞대응하기보다 일본과의 전략적인 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시민 차원에서 그쳐야

일본의 전격적인 무역 보복조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실제 일본 제품의 매출이 급감하는 등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불매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사표현 방식으로 일본 기업들을 움직이도록 하는 압박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정부나 기관이 개입되거나 감정적이고 과격하게 대응하면 시민운동으로서의 순수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상징물을 불태우거나 일본 기업 테러 등의 감정적 대응은 도리어 역효과만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 맥주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데 이런 효과는 일본 기업이 한일 간 무역 전쟁에서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는 힘이 될 수는 있다는 측면에선 긍정적 요소도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대해 일본이 정부차원에서 재보복 조치를 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불매운동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긴 어려운 까닭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일본경제보복대책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자유무역 훼손’ 日 부담감 이용해야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우리도 일본에 반격하는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 한국의 GDP는 5.45%, 일본은 1.3%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경련의 분석이 나왔다. 두 나라간 경제전쟁이 확산될 때 우리의 산업구조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얘기다. 신각수 전 일본대사는 “일본이 무역 보복을 하면서 자유무역 국가로서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등 분명한 부담감이 있을 것”이라며 “WTO 제소 등 국제 분쟁으로 번지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상황이 오래 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국내업체가 부품이나 원료를 생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본과의 대화에 나서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말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은 수출 품목이 다양하기 때문에 타격을 적게 받는다”며 “대법 판결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며 풀어갈 수 있는데 아베 정권이 지나치게 반응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일본에게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나라이기에 국익을 위해 중요한 나라”라며 “정상 간 신뢰구축에 실패하며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일본이 선거 이후 국내정치가 안정화되면 우선 정상 간 신뢰를 회복하고 2차 보복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물밑에서 교섭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자세를 취해왔다.

`글로벌 공급체인에 악영향’ 국제사회에 어필해야

유례없는 무역 보복과 갈등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국제사회에 강력하게 전달하고 어떻게든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역은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기에 일방이 피해를 입는 구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각수 전 일본대사는 “한국과 일본이 글로벌 공급체인으로 연관돼 있는 상황에서 서로가 손해를 보고 있다”며 “우리가 일본의 부품을 갖고 만들어서 중국이나 제3국에 수출하는 것인데 결국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국제 무역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사태의 영향으로 산업계는 부품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부품소재의 수입로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 전 대사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70~90%정도 공급하는 부품이나 소재를 상당부분 우리 국산품으로 대체하는 노력을 장기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이 우리보다 산업화의 역사도 길고 기초과학이 발달돼 있어서 다양한 부품소재를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도 국내에 부품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M&A를 통해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로 기술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 전 대사는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중재와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일본은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그 틀을 만들면 일본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련 사안에 대한 입법조치 등을 통해 문제를 일단락하는 등 우리 정부도 양보할 부분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일 간 맺은 여러 협정들을 뒤집지 않고 어느 정도 일본에 합의점을 시사해야만 일본 정부와 기업의 자발적 배상도 기대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우리 정부의 한 발 물러선 태도가 양국 간 훼손된 신뢰를 회복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적극성이 요구되고 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