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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제전쟁' 2R…재계 불안감

2차 보복 오나? 노심초사…"정부 지원 당부"
  •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이 제안한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설치 방안의 답변 시한이 지난 18일로 만료됐다. 일본이 추가 보복 카드를 뽑아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이 다음 달부터 안보상 우방 국가인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면서 국내 산업계 전반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화이트 국가 배제가 현실화되면 기존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이어 전자·정밀·기계·화학 등 국내 핵심 산업 전반에 걸쳐 1100여개 핵심 품목의 수입도 어려워진다. 재계는 수입선 다변화 등 장기전을 대비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또 국산 대체 소재·부품 개발에 정부와 국회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당부하고 있다.

18일 재계와 외신에 따르면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제3국 중재위 설치 ‘디데이’인 이날 이후 추가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은 이날까지 한국 정부가 중재위 설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대항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사실상 2차 무역 보복을 단행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일본산 소재나 부품을 주로 수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국내 정보기술(IT), 전자, 배터리, 자동차 전장 업체 등의 긴장감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전자·공작기계 등 日 의존도 높은 업종 긴장감 최고조 1차 보복의 타깃이었던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회로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필수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공급처를 추가로 확보하고 테스트에 돌입했다. 공급처는 국내를 포함해 중국과 대만, 러시아 등이다. 문제는 품질 테스트 기간이 6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쓰던 일본산 불화수소는 99.999% 이상의 초고순도이다. 품질에서도 불순물 입자 종류, 크기도 균일해 불량률이 굉장히 낮았다는 평가다. 이에 반해 중국이나 대만산의 경우 아직까지 일본산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어 반도체 업계는 수출 규제 품목 범위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판인 실리콘 웨이퍼나 웨이퍼에 빛으로 회로를 그리는 핵심 재료인 블랭크 마스크, 메탈 화학기상증착기(CVD), D램 공정에 쓰이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리지스트 등으로 확대될까 우려하고 있다. 웨이퍼는 일본의 신에츠화학·섬코 등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블랭크 마스크도 국내 제품의 품질이 일본 제품을 대체할 수준이 아니라고 평가되고 있고, 일부는 일본 업체 호야가 독점 생산 중이다. 메탈 CVD도 일본 장비업체가 전 세계 90% 이상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토리지스트나 블랭크마스크는 당분간 일본산을 대체하기 어려워 생산 공정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우려로 삼성전자는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가 강화된 3개 소재가 아닌 다른 소재를 생산하는 일본 업체에 “앞으로도 안정적인 공급을 부탁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 공정에 필수적인 섀도마스크가 규제 품목에 오를까 걱정하고 있다.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2차 보복 타깃으로는 일본산 소재나 부품을 주로 수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국내 IT, 전자, 배터리, 자동차 전장 업체 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의 완제품 사업 담당인 IT모바일(IM) 및 소비자가전(CE) 부문은 지난 17일 협력사들에 공문을 보내 ‘일본산 소재·부품을 최소 90일분 이상 확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재고 확보 시한은 가능하면 이달 말까지, 늦어도 8월 15일까지로 지정했으며, 확보한 재고 물량이 소진되지 않을 경우 추후에 책임지겠다는 조건 등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18일 일본을 방문했다. 대한양궁협회장 자격으로 ‘2019 도쿄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프레올림픽)’에 참석하는 게 주목적이지만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자동차 부품·소재 수급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어 현지 공급망을 점검하고 현지 분위기에 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소재·부품 국산화 노력…규제 완화 요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일본의 대한국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해 한국 기업이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9년 상의 제주포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일본에서도 다 보고 있는데 공개적으로 (비난) 해서야 되겠냐”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의 지지와, 국회 및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데 대해 경제계가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의는 2017년 국정농단사태 이후 전경련을 대신해 사실상 경제단체를 대표하고 있다.

박 회장은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 탈피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 지원 필요성도 언급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이 최선을 다해 대처하려면 정부와 국회가 전폭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며 “(기업이) 수급처를 다변화하려면 대체품이 개발돼야 하는데, 개발 인허가에 2년이 걸리면 되겠냐”고 되물었다.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관련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17일 ‘통상전략 2020’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될 경우 850개 수준의 전략 수출품목이 규제를 받게 될 것”이라며 “만약 일본 수출 규제가 장기화한다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소재·부품 국산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16일 열린 3분기 임원 모임에서 “일본 수출 규제는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며 “특히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차별화된 핵심 역량 확보 등을 통해 외부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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