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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한국경제

전 산업 부진에 세계무역환경 악화일로...日화이트리스트 배제로 기업들 "하반기 최악"
올해 상반기 한국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미중무역 갈등 및 반도체 단가 하락에 이어 일본 무역보복 조치 등 곳곳서 적신호가 켜졌다. 지표로 보나 체감상으로 보나 경제 상황이 악화했음은 분명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전망도 불투명하단 점이다. 경기 동향이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악일 것이란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 올해 상반기 한국의 수출 실적이 최악 수준을 보였다.
전산업 생산 ‘뚝’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라는 게 있다. 도소매 판매액·생산·출하 등으로 구성되는 동행지표에서 추세요인을 제거한 지표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보여주는데, 100을 기준으로 이를 하회하면 불황으로 판단한다. 상회하면 호황으로 본다.

올해 상반기 한국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단 한 번도 100을 못 넘었다. 오히려 갈수록 내리막을 걸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이 수치는 99.1로 집계됐다. 이어 98.6(2월), 98.5(3월), 98.4(4월), 98.6(5월), 98.5(6월)씩 기록했다.

상황이 이런 것은 국내 경기를 견인하는 건설과 제조업 등이 대내외적 여건으로 고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설비 투자가 잠깐 늘어난 기간이 있지만, 이는 기저효과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의미없다.

구체적으로 올해 1분기 전산업의 생산지수(계절조정지수·기준연도 2015년=100)는 106.5를 나타냈다. 이는 전년도 같은 시기 대비 0.4% 하락한 수치다. 올해 2분기 지수는 107.0을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0.5% 낮아진 수치다.

한국 경제의 기둥인 제조업 상황이 특히 안 좋았다. 올해 1분기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01.9를 보였다. 전년 같은 분기보다 0.4% 하락한 기록이다. 올해 2분기 지수는 101.3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1.2%나 떨어진 수준이다.

주52시간제 도입 등 정책적 요소도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생산능력지수는 통상 적정 생산능력으로 본다”면서 “해외생산 증가 및 조업 시간 단축 등의 영향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건설 경기는 더욱 심각했다. 올해 2분기 건설수주(경상)는 작년 동기 대비 4.9% 감소했다. 건설수주는 지난해 2분기에도 전년 대비 12.1%씩이나 감소한 바 있다. 올해는 특히 5월 실적이 나빴는데, 지난해 5월 대비 무려 32.3%나 줄어들면서 분기 전체 마이너스를 이끌었다.

기획재정부는 “미중 무역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 및 세계경제 성장세 둔화 등의 대외여건이 지표에 영향을 줬다”며 “투자·수출·소비 활성화 등 경기보강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초강력 태풍을 맞아 하반기 경제 환경은 시계제로 상태로 빠졌다.

올해 상반기 설비투자도 크게 악화했다. 지난달 설비투자지수는 전월 대비 0.4% 늘었는데, 이는 지난 5월 투자가 7.1% 감소한 데 따른 기저효과란 게 중론이다.

실제 통계표를 뜯어보면 올해 설비투자지수는 최악이다. 지난 1분기 설비투자지수는 100.8을 기록했다. 작년에 비해 24% 하락한 결과다. 2분기 설비투자지수도 101.9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1% 하락한 것이다.

향후 상황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지표로도 나타난다. 미래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올해 들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2월 이 수치는 98.3을 나타냈다. 이어 98.2(3월), 98.3(4월), 98.1(5월), 97.9(6월)을 기록했다.
  • 올해 산업활동동향
수출 ‘빨간불’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는 195억5000만 달러로 흑자기조는 유지했다. 그러나 이 기간 수출이 2715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8.5% 감소했다. 일평균 수출액은 20억5000만 달러로 작년보다 13.5% 줄었다.

이제부터는 일본이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 2일 일본 정부가 각의를 열고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의결했기 때문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에 대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가 1100여 개로 확대될 여지가 생긴 셈이다.

겹겹이 악재다. 최근 한일 양국의 무역관계는 가뜩이나 안 좋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대(對)일본 수출액은 25억3300만달러다. 수입액은 41억5500만달러다. 전년 동월대비 0.3%, 9.4%씩 줄어든 수치다. 무역수지도 16억2200만달러로 어김없이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월 반도체 가격은 이미 전년보다 37.7%나 떨어졌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직전까지는 반도체 공급하락 등의 우려로 D램 현물 가격이 20%가량 오르는 역설이 잠시 발생한 바 있으나, 앞으론 다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반도체만 문제는 아니다. 석유화학(-20.4%) 석유제품(-12.8%) 등의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줄줄이 하락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대외 여건 불확실성 등에 따른 변화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기업 영업이익 30%…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까지

기업들은 8월 전망부터는 최악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은 8월 경기 동향이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악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수 부진에 이어 미·중 무역 분쟁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경기 악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주요 상장사들의 상반기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이날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125개 상장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총 44조87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7% 급감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125개사 상반기 영업이익의 58%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64%나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30일 SK하이닉스 등급 전망을 기존의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차입금 증가와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제재에 따른 조정이다. 무디스는 등급전망 하향 배경으로 “일본과 같은 수출 규제가 더욱 확대하면 SK하이닉스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시장지위가 상당히 약화되거나, 미세공정전환이 지연되면 신용등급에 하향압력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의 수출 제재 이후 글로벌 신용평가사 가운데 SK하이닉스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한 것은 무디스가 처음이다. 다만 기업신용등급은 ‘Baa2’로 유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8월 전망치가 80.7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10년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BSI가 기준치(100.0)보다 낮을수록 부정적인 전망을 의미한다.

문제는 제조업(74.7)의 경기 전망은 더 부정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2009년 3월(76.8)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중화학공업의 종합경기 전망은 71.9로 2009년 2월 이후 가장 낮았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트레일러 및 기타운송장비’가 52.3로 가장 부정적으로 나타났고, ‘고무·플라스틱 및 비금속광물’, ‘1차 금속 및 가공’이 각각 63.6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일본의 핵심소재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는 한국 GDP를 평균 4.47% 감소시키는 영향을 미치며, 반도체 소재 부족분이 30%일 경우 GDP 손실분은 2.15%, 45%시 4.42%로 확대된다고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 국가 간 비교 우위를 확인할 수 있는 무역특화지수(TSI)를 통해 한일의 경쟁력을 확인한 결과, 화학, 플라스틱·고무·가죽·기계분야는 ‘절대 열세’, 금속과 전기·전자는 ‘열세’”라며 “반도체와 화학·기계 등 한국의 주력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핵심 소재·부품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우리금융연구소의 ‘하반기 기업의 실적과 주요 산업의 업황 전망’ 보고서는 올해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지난해와 비교해 3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반도체 부문 하반기 영업이익은 60.9% 감소할 것이고, 정보기술(IT) 업종과 철강 분야의 극심한 부진을 점쳤다. 김수진 연구원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화할 경우 일본산 중간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은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 당분간 기업 실적에 대해 보수적인 전망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상재 유진투자연구원은 “일본의 수출규제처럼 핵심 소재의 수량을 규제할 경우 공급망 자체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가격규제보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할 수 있다”며 “우리 정부와 기업이 국내외 대체 수입선 확보, 국내 기업으로의 수입대체 유도, 기술향상을 통한 중간재 투입량 축소 등 공급체인의 재구조화를 통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상당한 시간과 불확실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인 대책이다. 단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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