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몸살…한국 피해 상대적으로 더욱 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1, 2위 수출국이다. 지난해 영국 경제분석기관 픽셋에셋매니지먼트가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국가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6위로 꼽혔다. 미중 간 무역갈등으로 인한 한국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실제로 그 여파는 산업과 금융 등 다방면에서 나타났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중 간 무역갈등에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금융시장 ‘출렁’

미중 간 무역갈등에 국내 금융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미국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공식 지정한 지난 5일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시장에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3년 2개월 만이다. 사이드카는 선물가격이 전일 종가 대비 코스피 5%, 코스닥 6% 이상 급등 혹은 급락해 1분간 지속될 경우 주식시장의 프로그램 매매 호가를 5분간 정시시키는 것을 뜻한다. 발동 당시 코스닥 선물지수는 6.26%, 현물지수는 6.63% 하락했었다.

코스피 시황도 악화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2일 2000선이 무너진 데 이어 한때는 1900선까지 붕괴했다. 그렇게 엿새 이상 하락을 지속했다. 지난 7일 종가는 1909.70으로 약 3년5개월 만에 종가 기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를 절하 고시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미중 갈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탓에 투자자들의 심리도 크게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춘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과 경기 상황이 모두 원화 약세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은 지금의 높아진 수준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그는 3분기 원·달러 환율 전망치는 기존 1180원에서 1190원으로, 4분기 전망치는 기존 1170원에서 118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추가적인 상향 조정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6일 원·달러 환율은 1223원까지 치솟았다. 물론 중국 정부가 환율 안정용 채권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난 7일 원·달러 환율은 엿새 만에 하락 반전하긴 했다. 하지만 수차례 확전을 거듭해 온 무역분쟁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안도할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미중이 협상을 재개하고 간극을 줄이고 있다는 긍정적 뉴스가 확인이 돼야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의 비상등은 곳곳서 감지된다. 시장 급락에도 여전히 높은 코스닥 신용융자잔고도 마찬가지다. 한국증시는 2016년 이후 최저점을 경신하고도 지난 2일 기준 5조원가량의 신용융자잔고를 보였다. 이는 작년 저점이었던 2018년 10월말보다 약 15% 높은 수준이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락장에서 높은 신용잔고는 반대매매로 인한 추가 하락과 연결돼 있어 좋지 않은 신호”라고 설명했다.

세계가 충격

물론 이 같은 상황이 한국만의 모습은 아니다. 세계 증시가 급락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커다란 피해를 봤다. 지난 6일(현지시간)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 개장했다. 일본 닛케이 225지수는 개장하자마자 2.87% 급락했고, 토픽스 지수도 2.77% 하락했다. 호주의 S&P/ASX 200 지수는 1.32% 떨어졌다. 중국도 상해종합이 1.62%, 홍콩항셍은 2.85% 떨어지며 사실상 아시아 전 지역이 ‘블랙먼데이’를 맞았다.

이 같은 충격은 서구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독일 DAX지수는 전날 대비 1.8% 하락했다. 프랑스 CAC40지수는 2.19% 낮아졌다. 영국 FTSE100지수는 2.47% 급락했다. 미국 역시 피해를 면치 못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767.27포인트 떨어진 2만5717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 가장 큰 하락폭을 보인 것이다. 장중 한때는 961.63포인트 밀리기도 했다.

향후 전개될 상황은 일단 중국 인민은행의 대응 방식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관세 관련 압박이 있을 때마다 인민은행은 지급준비율 인하로 대응해 온 바 있다. 이에 대해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은 인민은행이 지급준비율 인하 대응을 안 하고 있지만, 만약 추가 대응이 나온다면 양국 갈등 격화의 방아쇠가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환적 물동량 29개월 만에 하락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은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 “한국 원화의 달러 대비 가치가 1.4% 떨어졌다”며 “한국은 중국과 광범위하게 교역을 하는 결과로 통화 가치가 위안화를 따라가는 위안 블록 국가의 일부”라며 미중 환율 전쟁의 낙진의 첫 사례로 한국을 들었다.

한국은행도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우리나라의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8일 전망했다. 미·중 갈등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고 이 때문에 교역심리가 위축돼 수출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2000년 IT 버블 붕괴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물량지수’(선박 제외)는 올해 4월 작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으나 5월에는 3.3% 감소했고 6월엔 7.3% 줄었다.

여파는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부산항 환적 물동량 증가세가 꺾였고 7월에는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29개월 만이다. 8일 부산항 터미널 운영사들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신항과 북항 9개 터미널에서 처리한 컨테이너는 20피트짜리 기준 186만4000여개로 지난해 같은 달(181만4000여개)보다 2.7% 증가했다. 이 가운데 한국의 수출입화물(89만5900여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4% 늘었지만, 환적화물(96만8300여개)은 0.5% 줄었다. 환적 화물은 부산항에서 배를 바꿔 제3국으로 가는 다른 나라의 화물을 말한다.

미·중 양국이 상대국 수출품에 고율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바람에 교역량이 줄어든 것이 직접적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부산항 환적화물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는 9월부터 중국 수출품에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 부산항을 거쳐 가는 환적화물은 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수출시장·품목 다변화 해야"

하반기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를 꼽은 기업들은 향후 정세를 예측하느라 분주하다. 일본 수출 규제에 미·중 환율전쟁까지 본격화돼 불확실성이 가중되자 6일 원/달러 환율은 3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요동치고 쳤다.

지난 2분기 ‘환율 효과’ 덕에 호실적을 기록한 자동차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뛰면 자동차 업계 매출은 42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불안정한 경영 여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올 하반기 미·중 무역 갈등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교역 둔화와 투자 심리 위축, 신흥국 경기 부진 등 다양한 부정적 요인들로 인해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어려운 경영 환경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는 대부분 국내에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 하락이 실적 개선에 긍정적일 수 있다. 가전 등 전자 제품도 해외거래 시 사용하는 결제 통화 종류를 30개 이상으로 다변화해 환 헤지를 하고 있어 리스크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 이슈 장기화로 단기 충격은 발생할 수 있으나, 2020년부터 글로벌 5G 시장 개화 등 반도체 수요는 개선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전망했다.

정유·화학·철강업계는 ‘급격한 변화’만 아니라면 원화 약세나 강세, 어느 쪽이든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북미 신증설 설비 가동과 수출 비중이 높지만 원자재 상당 부분을 수입해 쓰는 사업 구조상, 환 변동에 어느 정도 대비 태세를 갖췄기 때문이다. 통상 정유사는 외화부채를 30억 달러 이상씩 갖고 있다. 원유를 중동 등에서 수입해올 때 거래를 달러로 하기 때문에 달러를 단기차입 등의 방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중 무역 분쟁으로 환율이 급등해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외화상환 부담도 커진다. 거래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철강, 조선 업계는 근심이 앞선다. 글로벌 수요 정체에 따른 단가 하락, 미국 등 수입규제 강화에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수출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항공 업계도 최근 환율 급등(원화가치 약세)이 부담이다. 고가의 항공기와 연료를 달러로 사오거나 빌려야 해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원화로 환산된 빚이 늘어서다. 대한항공의 순외화 부채가 약 90억 달러인데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9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환율 상승은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를 줄여 매출 감소로도 이어진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미중 무역 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세계 경제 회복 시기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대외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출시장과 품목 다변화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역시 “외환보유액, 단기 외채 등 대외건전성 지표에 대한 체계관리 관리를 통해 국내 금융시장의 안전성을 제고하고, 기업은 미중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탈피해 인도, 베트남,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 대한 공략을 강화해야 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종혜 기자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