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인터뷰

‘자랑할 것 없는 나라-세계 제일은 가을하늘’(1964. 9. 27.주간한국 창간호 표지) 뿐이었던 한국은 56년이 흐른 지금 ‘세계 7위 수출 강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과 한일 수출 규제 등의 여파로 겹겹이 위기에 놓였다. 올해 상반기 수출은 2715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했다. 불확실한 대외여건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 앞으로 한국 경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주간한국>이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과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이 지난 18일 오후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주간한국>과 인터뷰를 가졌다.(사진=조은정 기자)
“규제개혁·수출 품목 다변화해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기업들이 이를 원치 않는다. 성장사다리를 올라탈수록 규제가 대폭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악’이란 전제 하에 각종 규제를 적용하고,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인식에 따른 각종 지원이 잇따른다. 그러나 이는 결코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세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이분법화하는 곳도 우리나라뿐이다.”

이동근 원장은 진영논리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 그에 따른 과도한 규제, 때문에 글로벌 흐름을 못 쫓아가는 악순환이 한국경제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좁은 내수시장에 대외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인데 이런 상황이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고 바라봤다. 우리나라 기업이 국내 투자를 줄이고 해외직접투자에 나서며, 해외기업들 역시 한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및 확장 재정정책을 투자유인 카드로 꺼내들었으나,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게 이동근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2013년에도 39위에 불과했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규제 관련 순위가 최근에는 63개국 중 50위를 차지까지 떨어지는 등 여건이 안 좋아졌다”며 “현재도 환경과 안전 및 노동 분야의 규제가 세지는 추세라 되레 민간의 투자 의욕이 감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동근 원장은 규제완화를 통한 수출품목 다변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오랜 기간 제조업과 유통 및 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산업을 지탱해온 미국이 최근 애플, 구글, 아마존 등으로 세계 지배력은 높여가는 오늘날, 한국의 수출 주요품목은 십 수 년 째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일반 제조업 등 전통산업은 이제 중국과 경합 분야가 됐다”며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여건이 나쁘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원격의료 분야의 경우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은 기술개발이 한창인데 한국은 개인정보침해와 의료민영화 등의 논란이 빚어지며 몇 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세계적 의료기술을 갖추고도 후발주자가 돼야만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동근 원장은 “이처럼 기득권층의 보수적 성향과 진영논리, 반(反)자본 정서 등이 얽혀 사회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며 “각계각층이 미래를 내다보고 양보할 줄도 아는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천기술 확보가 관건”

제조업에 국한돼 있는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가 ‘서비스’ 무역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수출구조에 대한 변화’를 가져올 시기라고 이 원장은 강조했다. 이동근 원장은 “지난해 중국에 27%정도 수출하면서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며 “아세안과 인도 등 수출시장 다변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수출구조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확보가 필수다. 이동근 원장은 일본 수출 규제를 예로 들면서 “그동안 한국 산업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서 생산·응용 기술에 강점이 있었는데 4차 산업혁명이 되면서 산업 구조가 창의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키워야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며 “이제 기초 기술 확보와 함께 소재·부품 장비도 원천 기술력을 확보하고 높여야한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과 교육 시스템도 변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필두로 보호무역주의 체제가 강해지면서 기술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소재 부품에 대한 경쟁력이 높은 일본과 독일의 경우는 100~150년 된 기업이 많다. 장인이 된 기술·부품 소재 산업은 점진적으로 혁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 산업에도 저력이 있다. 이동근 원장 주력 산업이 한계에 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력만 확보된다면 현재 한국의 상황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한국처럼 250개 국가와 무역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며 “현재 한국의 전 세계에서 수출 비중이 3.1% 정도 차지하고 있는데 기술력만 확보된다면 1% 수출이 늘어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경제 성장, 고용 문제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에 제2의 IMF가 올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이동근 원장은 우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라고 전망했다. 이동근 원장은 “IMF 때는 대기업들이 부채로 사업을 했지만, 지금은 대·중소기업의 부채비율이 높지 않고, 실제로 상장사들은 비율이 100% 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며 “그때보다는 이미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졌고 경제 펀더멘탈 역시 그때에 비해 좋다”며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부도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자동차, 조선 등 업종은 노동의 유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아프더라도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이동근 원장은 “한국 수출을 둘러싸고 부정적 요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적 측면에서 원천 기술 확보와 소재 확보가 아주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진단했다.

이종혜 기자 , 주현웅 기자 사진=조은정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