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위기 한국경제, 돌파구는 없나?

불황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어려운 때라지만 대외여건이 한국에 특히 불리한 상황인 탓이다. 최근 주요 경제지표에서 일부 회복세가 그려졌음에도 웃을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동맹국 미국 간 갈등이 빚어진 가운데 국내에선 소비자물가도 하락해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과도한 해석이라며 선을 긋고 있으나, 시장의 전망은 그저 어둡기만 하다.

명절 선물세트가 만든 지표

한국 경제의 위기가 만성화된 듯한 모습이다. 추석의 영향으로 지난 8월 서비스업의 생산이 일시적으로 우상향한 사이 제조업 생산능력과 건설수주는 나란히 내리막을 걸었다. 전체 지표상으론 생산·투자·소비가 '트리플 상승'했으나, 주요 분야의 부진과 불투명한 전망에 경기 반등은 어림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올해 마지막 분기에 접어들며 한국 사회는 시름만 더하게 됐다. 지난달 명절 대목은 서비스업만의 몫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3.0%)와 의복 등 준내구재(1.0%)생산은 전월 대비 늘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각각 6.3%, 2.9%씩 증가했다.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9월 이른 추석에 추석 명절 선물세트 등의 수요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서비스업이 잠깐 안도의 숨을 내쉬는 사이 제조업과 건설업은 여전히 발만 동동 구르고 말았다. 지속 하향세인 제조업 생산이 이달에도 전월 대비 1.5% 감소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 줄었다. 특히 전자부품이 작년에 비해 18.1%, 자동차가 6.3%씩 감소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생산성이 이렇다 보니 수출도 직격탄을 맞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1.7% 줄어든 447억1000만달러에 그쳤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미중 무역 분쟁 등과 단가하락 등의 여파가 지속되며, 작년 9월에 비해 31.5%나하락했다. 물론 지난해 반도체 실적이 유난히 좋긴 했어도 이 같은 수준의 낙폭은 심각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계 경기를 이끌고 있는 미국, 중국, 독일의 경기 침체가 지속적으로 확산 중인 까닭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 수출도 감소하는 추세”라면서도 “이런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상당기간 한국의 수출 여건 회복도 불투명한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제조업만 문제가 아니다. 건설업도 충격이 심하다. 지난 8월 철도·궤도 등 토목 공사실적이 전월 대비 0.3% 증가하긴 했지만 그뿐이다. 작년과 비교하면 건설수주(경상)는 주택, 공장·창고 등 건축에서 19.1% 하락, 철도·궤도 등 토목 실적도 28.9% 감소했다. 이로써 전체 낙폭은 22.2%를 기록했다.

건설업의 속내는 특히 복잡하다. 추경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증가해 긍정적 전망도 있지만, 반대로는 분양가상한제 등에 따른 주택업 위축이 걱정이다. 둘 모두 정부가 추진 중인 사안이란 점을 보면 ‘병 얻고 약 먹은’ 셈이다. 실제로 지난달 건설기업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 대비 13.4포인트 오른 79.3을 기록했는데, 장기 평균치인 80엔 못 미쳤다.

이 역시 반짝 상승으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크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10월에는 전망치가 또다시 낮아질 것”이라며 “통상 10월에는 계절적 요인에 의해 CBSI가 2~3포인트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해는 9월의 물량 회복이 10월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日 보복 피해 적어

이런 상황을 두고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도 없지는 않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인한 피해가 아직은 또렷하지 않아서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이후 3개월 간 실제 생산 차질로 연결된 사례가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 이 기간 수출과 수입이 일제히 감소하긴 했는데, 이는 올해 월평균 유사한 수준이다.

오히려 8월 기준으로 보면 한국보단 일본의 피해가 더 큰 것으로도 파악된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감소폭이 전월 대비 9.4% 감소했다. 한국의 대일본 수출 감소 규모는 6.6%로 조사됐다. 7~8월 누계 통계를 보더라도 대일본 수출은 3.5% 감소, 대한국 수출은 8.1%로 나타나 같은 결과를 보였다.

오히려 미중 간 무역분쟁 피해가 컸다. 그로 인해 중국에 대한 수출이 1년새 21.8% 줄었다. 대미 수출도 2.2% 줄었다. 다행히 신북방 정책의 노력으로 구소련 독립국(CIS) 지역 수출이 41.3%, 그 외 유럽연합(EU) 수출이 10.6% 중남미 수출이 10.8% 증가했다. 다만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점에 견줘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

실제로 지난 8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상승했으나, 미래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여전한 하락세를 보였다. 김보경 통계청 과장은 “경기가 좋아지려면 수출이나 대외환경이 개선돼야 하는데, 아직까진 뚜렷한 개선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경기가 상승국면으로 전환했다는 징후는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 첫 ‘-’ 기록

더 큰 문제는 내수마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피부로 느끼는 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집계됐다. 통상적으로 디플레이션은 총체적 수요 급감에 따른 것으로서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인다. 다만 정부는 물가 하락으로 경기 침체가 일어나는 ‘디플레이션’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1일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2015년을 100으로 봤을 때)로 1년 전보다 0.4% 하락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대에 이어 올해 들어선 1월부터 0.8%로 0%대를 기록하며 7월까지 줄곧 0%대에 머물렀다. 급기야 8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0.038%로 ‘첫’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공식 상승률은 소수점 한 자릿수까지만 따져서 공식 상승률은 0.0% 보합에 그쳤다. 하지만 9월엔 ­0.4%로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지난달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하지만 물가상승률은 비교 가능성, 오차를 고려해 소수점 첫째자리까지 보는 것이 매뉴얼”이라며 “(이번이) 최초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라고 설명했다.

물가상승률이 이처럼 장기간 1%를 밑돈 것은 2015년 2∼11월(10개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올해 2분기 GDP디플레이터’의 등락률은 -0.7%였다. 작년 4분기 -0.1%, 올해 1분기 -0.5%에서 2분기 감소율이 더 커졌다. GDP디플레이터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인 건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국가 경제의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는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3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GDP디플레이터는 국내총생산을 구성하는 소비, 투자, 수출입과 관련된 모든 물가지표를 포함해 산출한 물가지수다.

그래도 정부는 낙관적 분석만 한다. 통계청은 이번 마이너스 물가가 일시적인 저물가 현상이라며 디플레이션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고교 무상교육 정책과 농산물 가격 기저효과 등 정책적·일시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며 “소비자심리지수가 전월보다 4.4포인트 상승하는 등 소비부진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해 민간 연구기관들은 단기 공급측 요인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소비와 투자 등 ‘수요 위축’이 물가를 끌어내리는 주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한은은 내년 물가상승률을 1.3%, KDI는 1%대 초반, 현대경제연구원 1.0%, LG경제연구원 0.8%, S&P 1.2%, 암로(AMR0) 1.1% 등으로 전망했다.

김성태 KDI 경제전망실장은 “물가상승률이 지난 7월 0.6%에서 최근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만 놓고 보면 공급 측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인 2%를 밑돌며 저물가가 지속하는 원인은 수요 위축에 있다”고 말했다.

엇갈리는 디플레 전망

한국은행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연말쯤 반등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한은은 ‘주요국 물가하락기의 특징’ 보고서에서 “1990년대 이후 소비자물가지수 하락은 많은 국가에서 적지 않은 빈도로 나타났고 대부분 단기간 내에 상승으로 전환했다”며 “디플레이션 현상은 일본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1분기부터 올 2분기중 주요국의 소비자물가 하락은 356차례 발생했다. 전체 분석대상 분기의 7.4% 수준이다. 주요국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과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등 물가 하락을 경험한 일부 아시아 국가 등 모두 41개국이 포함됐다. 하락 지속 기간은 평균 2분기로 대체로 빠른 시일 내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락폭도 -0.5%로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달리 국내외 주요 기관은 저물가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국내외 36개 기관의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 평균은 7월 기준 0.9%에서 8월 기준 0.8%로 0.1%포인트 낮아졌다. IHS마킷(0.4%)ㆍ데카방크(0.4%)ㆍING그룹(0.5%)ㆍ바클레이즈(0.5%)ㆍDBS그룹(0.5%)ㆍ캐피털 이코노믹스(0.5%),ㆍ피치(0.5%) 등 0%대 초중반을 점쳤다. 국제금융센터가 해외 투자은행(IB) 9곳을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씨티와 JP모건이 0.5%로 하향 조정해 바클레이스까지 총 3곳이 0.5%를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공급 측 수입 물가 하락과 수요 측 내수 불황 등의 물가 상승 압력 약화로 디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 이라며 “2020년도 한국 경제성장률은 올해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 되겠지만 경기는 둔화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원 실장은 ”한국 경제의 회복세 확대를 위해 단기적으로 투자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확장적, 효율적 재정집행, SOC 조기 착공 및 규제 개혁 노력의 현실적인 결실 등이 필요하고, 민간 소비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양질의 일자리 확대에 주력해야하고 경제 심리 개선에 주력하기 위해 기업 투자 인센티브 강화, 경기에 민감한 산업 지원 등을 통해 경제 심리 악화를 차단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종혜 기자 주현웅 기자 그래픽=안해지



이종혜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