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1.25%로 또 인하…2년 만에 역대 최저수준

시장 예상대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2년 만에 다시 쓴 역대 최저치 기록으로, 경기 둔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머지않아 기준금리가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럴 경우 늘어난 시중의 자금 유동성이 부동산 투기를 자극할 수 있어서 우려를 낳는다. 한국경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기준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하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역대 최저치 ‘1.25%’ 추가 인하 가능성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6일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기존 1.50%에서 0.25%포인트 인하했다. 1.25%로 결정된 이번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2016년 6월 1.25%로 내려간 이후 2017년 11월과 작년 11월 각각 0.25%포인트씩 오르면서 회복세를 그린 기준금리는 이렇게 또 주저앉고 말았다.

저금리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한은의 이번 결정 배경이 한국의 심각한 경제상황을 반영한 조치라서 문제다. 현재 세계경제는 교역이 위축된 상황에서 향후 개선 가능성도 또렷하지가 않다. 국내경제도 건설투자 조정과 수출 및 설비투자 부진이 지속 중인 데다가, 소비사정까지 악화돼 디플레 우려마저 나오는 현실이다.

작년에 한은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잡았다. 그러나 지난 1월 2.6%, 4월 2.5%, 7월 2.2%로 전망치를 낮춰가면서 위기감을 드러냈다. 연말에 다가선 지금은 2.2%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때문에 한은은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당분간 유지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한은은 “세계경제의 보호무역주의 확산 정도,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경제 변동성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의 경우 고용상황이 일부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수출과 투자의 지속적인 부진 및 소비 증가세 약화 등으로 인해 지난 7월의 성장 전망경로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기준금리 인하가 이번 한 차례에 그칠지 여부다. 한은은 ‘통화정책방향’ 보고서에서 “향후 거시경제와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를 지켜보면서 완화정도의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라며 “미·중 무역분쟁, 주요국의 경기와 통화정책 변화, 가계부채 증가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도 주의 깊게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위 내용 중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를 지켜보면서 완화정도의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란 대목이 추가 금리인하가 없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고 바라본다. 이에 대해 한은은 아무런 고려사항 없이 사용한 표현이라고 설명했으나, 전문가들은 추가 인하에 대한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경기는 사이클상 저점에 다가서고 있는 까닭에 반등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며, 최악의 국면을 벗어날 글로벌 경기 부양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대외여건이 워낙 불확실한 탓에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민영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도 “한은 이번 결정의 효과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악화한 경제상황에 따라 물가 상승률도 워낙에 부진한 상황”이라며 “내년 1분기쯤 추가로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만약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이뤄진다면 낙폭은 올해와 같은 0.25%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효성 의문

역대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인 것도 모자라 추가 인하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시장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기준금리 인하의 실효성과 당위성이 동시에 의심받고 있다. 이미 확장적 재정정책이 추진 중인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또한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는 현 정부 정책과 충돌 문제는 없는지 등이다.

실제로 추가 인하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 만큼이나 그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0.25%포인트의 소폭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화폐유통속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금리를 내려 돈을 풀어도 소비·투자확대로 이어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풀린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만 쏠려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다. 이 때문에 이날 금통위에서 이일형·임지원 금통위원은 기준금리를 동결하자는 소수의견을 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5일 ‘기준금리 인하의 거시적 실효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기준금리 추가적 인하가 경기활성화와 물가안정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분석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유동성이 넘쳐 금리 파급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또 금리인하에 따른 자산효과도 2년 이상 높은 강도로 지속돼 온 부동산시장 안정화 정책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금리인하 효과가 소비·투자 진작으로 파급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금리인하의 효과가 실물경제로 파급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극심한 경기부진 속에 미·중 무역 분쟁과 한·일 무역 갈등으로 인해 최고조에 이른 불확실성이 현재 통화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불확실성이 전혀 해소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정책금리 인하는 자금의 단기부동화 및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일부 투기적 부동산에 자금이 몰리는 부작용을 낳게 될 우려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또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에 접근하면서 통화 정책의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통위는 최근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통화정책을 큰 폭으로 완화해 추가적 완화 기대가 사라질 경우엔 금리인하 효과가 저하될 수 있다”며 “금융기관 수익성 저하에 따른 금융 중개 기능 위축, 대규모 자본유출로 인한 금융·외환시장 불안도 우려되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자금이 부동산에 쏠려 집값을 자극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이동현 KEB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은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는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지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지속되는 한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거래량 증가 및 가격상승까지 이어지는 어려울 전망”이라면서도 “다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시중에 풀려있는 부동자금이 1200조를 넘어서면 이번 금리인상으로 주식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부동산으로 자금쏠림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과도한 우려라는 주장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가 워낙 막강하다 보니 기준 금리가 인하됐어도 집값 변동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기준 금리가 인하되면 시중에 풀리는 돈이 늘면서 부동산 주가가 올라간다”며 “하지만 이미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등 강력한 대출 규제가 시행되고 있고 최근에는 주택임대업·주택매매업 법인까지 대출을 틀어막는 등 촘촘한 규제 탓에 부동산 상승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극적인 통화정책보다는 오히려 ‘재정 정책’ 필요성을 당부한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현재 2% 미만의 저금리 수준에서 소폭에 그칠 수밖에 없는 금리인하를 통한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통화정책보다는 가계 및 기업에 대한 직접적이고 선별적인 자금지원을 통한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키는 방안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통화정책 운용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경기활성화 및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서는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재정정책과의 공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종혜 기자

주현웅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