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CEO 역임…평사원으로 입사 한샘을 업계 선두로 키워

국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매출 2조원으로 가구업계 넘버원인 한샘을 25년 간 이끌어온 최양하(70) 회장이 퇴임한다. 강승수 부회장(54)은 회장으로 승진해 새 사령탑을 맡는다.

샐러리맨의 신화를 쓴 최 회장은 1979년 한샘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1994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인재를 크게 쓰겠다던 조창걸 한샘 창업주로부터 대표이사로 발탁되면서 대표이사만 25년을 역임했다. 무려 40년 간 한샘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지난달 31일 한샘에 따르면 최 회장은 1994년 대표이사 전무에 오른 지 25년 만에 회장직을 내려놓고 용퇴를 결정했다. 최 회장은 퇴임 이후 한샘 고문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한샘은 사실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은 회사”라며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한 번쯤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내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밝혀왔다. 그동안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과 사업 기회 마련의 뜻을 가졌던 만큼 퇴임 이후 이와 관련한 청사진을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국내 500대 기업 중 보기 드문 최장수 CEO다. 25년간 한샘을 진두지휘하며 매출 2조원 규모의 국내 인테리어 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오랜 근무 기간만큼 최 회장은 부엌과 주거 문화, 기업경영에 탁월한 족적을 남겼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중공업에서 3년간 일한 그는 1979년 평사원으로 한샘에 입사했다. 설립 9년밖에 안 된 소규모 가구 기업으로 이직한 이유에 대해 최 회장은 “어려울수록 기회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이 한샘에 입사한 해는 현대식 부엌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다. 최 회장은 규격화된 부엌 설계를 토대로 한 주방가구의 대중화를 선도하며, 부엌을 가사 노동이 아닌 가족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했다.

세트 판매에 대한 개념이 없어 가구를 개별적으로 팔았던 1994년 CEO 자리에 오른 최 회장은 가구가 아닌 공간을 팔기 시작했다. 소파와 장, 테이블을 모두 합친 거실 상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매장을 침실과 거실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꾸며 공간 전체를 세트로 판매하기도 했다.

선구적인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 공정도 혁신했다. 1999년 ERP 시스템(전사적 자원관리)과 시공 좌석제 도입(전국 단위 항시 시공망 구축), 공급망 관리(SCM·생산 관리) 등을 통해 원가 절감과 품질·물류·디자인 혁신, 서비스 향상을 달성했다.

2000년대 본격적으로 주택 리모델링 시장에 뛰어들며, 자동차 공정의 일괄 생산 시스템을 적용했다. 주거 공간 창출의 개념을 구체화해 상담에서 설계, 시공, 애프터 서비스까지의 전 과정을 일원화하고 규격화된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리하우스 사업 모델은 “침대가 아닌 침실을, 책상이 아닌 자녀 방을 판매한다”는 최 회장의 전무후무한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공간을 판매한다’는 사업전략을 구상해 한샘만의 독자적인 사업모델인 리하우스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주거 공간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한샘의 신성장동력인 리하우스 패키지가 탄생했다.

최 회장은 “가장 힘들 때가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IMF·글로벌 금융 위기·이케아 국내 진출 등 세 번의 전사적인 위기를 모두 기회로 극복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자를 중단하거나 사업을 축소하지 않고 오히려 신규 사업을 확대하고 신규 채용을 늘렸다.

실제로 한샘은 IMF를 기점으로 주방가구 회사에서 거실·욕실 가구 등으로 확대해 인테리어 사업에 진출했고 5년 만에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해 업계 1위로 올라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부엌유통본부 ik를 출범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6%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이때도 최 회장은 이케아와 차별화된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가구업계가 온라인 판매와 원가·비용 절감에 매진할 때 최 회장은 반대로 영업과 시공 사원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린 것이다. 이는 최 회장이 평소 강조해온 “한샘은 가구를 파는 기업이 아니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사람이 하는 서비스업”이라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 품질을 높인 최 회장의 전략은 적중했다. 한샘은 최 회장의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비즈니스를 통해 이케아의 공세에도 2017년 매출 2조원 시대를 열었다.

이후 한샘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올해 2분기까지 73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부엌 1위에서 가구업계 1위, 인테리어 리모델링 1위로, 시장의 포화가 오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마다 최 회장은 한샘의 새로운 미래 비전과 신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창출해내며 매출 2조원 시대를 열었다.

한샘은 최 회장의 전격 퇴임에 따라 수장 역할을 이어받아 전사를 지휘할 전문경영인으로 강승수 부회장(1965년생·54세)을 이사회를 통해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한샘은 두 번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재무를 책임졌던 이영식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해 전략기획실을 총괄적으로 지휘해나갈 예정이다.

이종혜 기자



이종혜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