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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자 눈치보고 정쟁까지…뒤처지는 韓 산업 혁신

20대 국회 경제 입법 ‘낙제점’
국회가 패스트트랙 등에 따른 갈등으로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원격의료 허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과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산업혁신에 필요한 우선입법 과제들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서다. 이에 국내 300곳의 대·중소기업 중 상당수는 20대 국회의 경제입법 성적에 ‘낙제점’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남은 기간에라도 관련 법안들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위원들이 데이터 3법 처리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대 국회 ‘성적 미달’

수출이 11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하고, 7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본 데 이어 내수마저 최악인 게 한국의 현실이지만 정작 국회는 경제입법을 도외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기업 300개사(대기업 100개, 중소기업 200개)를 대상으로 ‘20대 국회에 대한 기업인식과 향후과제’를 조사한 결과는 암담했다.

기업들은 이번 국회에 ‘경제 낙제점’을 줬다. 국회가 이해관계자들을 의식(경제입법 부진 원인·40.3%)해 법안통과를 미루고, 과도한 정쟁(32.7%)을 벌이는 까닭에 서둘러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이들은 임기만료로 폐기된 후 차기 국회에서 재차 발의되는 ‘입법미루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기업들은 20대 국회에 ▲경제 분야 입법은 4점(A학점) 만점에 평균 1.66점(C학점과 D학점 사이) ▲대정부 감시·견제 분야 평균 1.95점 ▲사회통합 및 갈등해소 1.56점 등 모든 분야에서 C학점 이하의 성적을 부여했다. 이해관계자를 의식하고 정쟁에 빠진 것 외에도 ‘입법마인드 부족’(20.3%), ‘반기업 정서’(6.0%) 등 여러 이유가 따랐다.

기업들이 우선처리를 바라는 법안들은 서비스산업 제도개선과 세제지원 등을 담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빅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들은 19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됐으나 여전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20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법안 중에서도 주52시간제 보완(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최저임금법), 클라우드컴퓨팅법, 보험업 자본금요건 축소 등 주요 사항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실정이다. 다음 총선이 반년도 채 안 남은 상황이다 보니, 기업들은 입법지연이 장기화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당장은 내년도 사업 계획 세우기가 걱정이다. 김현수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법안처리가 지연될수록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o추진하는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면서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주요 경제입법 현안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달리는 선진국, 싸우는 한국

기업들이 이처럼 국회에 쓴 소리를 낸 것은 그만큼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해외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정책 마련과 시행이 한창인데, 한국은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고도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가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 대신 표심에 기반한 입법 활동이 낳은 폐해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격의료다. 이 분야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전부 원격의료 도입에 노력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원격의료 실정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강원도 등 규제자유특구 지역에서 실증사업이 이뤄진다지만, 이를 보편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에 묶여 있다.

의료단체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 절대불가’라는 원칙 아래 ‘전국의사 총파업’ 등 강력한 투쟁을 전개 중이다. 이들은 진료의 기본 원칙이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직접 청진하고 만져보고 두드려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대형병원과 소규모 병원 간의 격차 확대 및 환자들의 진료 개인정보 유출 등을 문제 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한국이 갈등을 벌이는 동안 해외 선진국들은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적절한 원격의료 실시를 위한 가이드라인 및 의료개혁 정책을 속속 마련했다. 물론 이들 국가 역시 원격의료 시 의료과실 책임문제, 개인정보 문제 등의 해결과제가 존재하지만 저마다의 대책을 만든 후 ‘선(先)시행, 후(後)보완’ 식으로 원격의료를 확대 중이다.

작년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 관점의 주요국 원격의료 정책비교’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의학협회가 원격의료에 합의하면서 원격의료의 윤리적 진료 규정을 개정했다. 해당 규정에는 환자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 제공 및 신의성실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명시했다. 개인정보 문제에 있어서는 환자정보에 비인가 접근차단 및 오류발생 예방을 위한 프로토콜 구축을 전제했다.

독일은 의사총회가 2018년 5월 직업규정을 개정해 원격진료 금지를 완화했다. 이로써 원격의료는 물론 화상채팅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진단서와 투약처방전 발급이 가능해졌다. 중국의 경우 진료 진행과정 및 관리감독 관련 기준을 마련, 개인정보 유출 행위 엄벌 등을 규정한 다음 정부가 원격의료를 전략적으로 확대해 가고 있다.

보고서는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원격의료를 미래 성장 동력의 하나로 보고 관련 규제개선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해당사자 간 논쟁이 심해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며 “원격의료가 활성화 돼 있는 주요국의 정책 등을 검토해 의료 소비자 관점에서 정책 마련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대한상의 조사에서 기업들은 원격의료와 함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4차 산업시대에는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현재 국내 상황만 보더라도 서비스산업은 여러 분야 중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편이고, 일자리 창출효과는 제조업의 두 배에 이른다.

하지만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국내 서비스업 부가가치 비중은 주요국에 비해 10%포인트 가량 낮은 59.1%로 집계됐다. 미국은 79.5%, 일본은 69.5%, 독일은 68.1%, 영국은 79.2% 수준이다. 서비스업 고용비중도 한국은 70.3%에 수준이다. 미국은 79.9%, 일본은 72.6%, 독일은 74.5%, 영국은 82.4%다.

서비스업발전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되지만, 관련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법안의 뼈대는 서비스업에 대한 세제·재정·금융 지원 규모를 제조업 수준에 맞추자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 법안 역시 의료 분야를 둔 정치권 갈등에 치여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원 대상에 의료업을 빼자는 더불어민주당과 포함시키자는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첨예하다.

의료 분야가 해당 법안의 쟁점이 된 것은 의료민영화 가능성 때문이다. 민주당은 의료 분야를 일반 서비스업과 묶어 산업육성 대상에 포함할 시 향후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으로 의심한다. 2011년 이명박정부 당시부터 이 법 통과를 세 차례에 걸쳐 막은 배경이기도 하다. 현재는 의료 분야를 제외한 채 같은 법 통과를 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대한상의 관계자는 “저성장·저고용 시대를 극복하려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의료 분야의 경우 국민보건이나 공공의료서비스 저하 등의 우려가 있으나, 그에 대해서는 별도의 점검 장치나 보완조치를 별도 전제한 후 포함시키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데이터 3법 간신히 상임위 통과…연내처리 미지수

그나마 ‘데이터 3법’으로 대표되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최근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지난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다. 그동안 3개 법 중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만 상임위 통과가 안 됐었다.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기존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된 개인정보 보호 사항을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관하는 것이 골자다. 향후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설립돼 개인정보에 대한 감독권을 갖게 될 전망이다. 금융·IT 업계는 고객의 동의하에 개인정보를 산업 활성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개인정보는 암호화기술 등을 통해 가명으로 변환된다. 해당 가명정보는 자신과 관계가 없는 보험·금융·마케팅 회사 등에서도 활용될 수가 있다. 쉽게 말해 ‘개인정보를 더 많이 활용하되, 유출 가능성은 더 강하게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으며, 그동안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역할 범위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치열했다.

가까스로 상임위를 통과한 데이터 3법은 그러나 연내 처리가 미지수다.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혁안 갈등으로 인해 국회가 운영될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면 이 법은 자동 폐기된다. 또한 참여연대 등 일부 진보 시민단체가 법통과를 강하게 규탄하고 나서, 본회의에 가도 총선 표심을 의식한 반대표들이 돌연 나올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은 데이터 3법이라도 통과시킬 필요성을 말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올해 초 우버가 한 콘퍼런스에서 자신들이 수집한 데이터들을 인공지능 분석해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굉장히 큰 주목을 받았었다”며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지만 개인정보보호가 굉장히 엄격한 한국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시민사회 등 일부 우려가 있긴 하나,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있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라며 “우선 데이터 3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되 개인정보 유출 등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보완책들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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