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지구촌’에서 만난 김문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인터뷰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을 한국처럼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한국이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셈인데, 정작 현실은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는 게 아이러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주간한국>은 환경재단이 주최한 그린보트에서 김문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와 만나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제도적, 교육적 문제점들을 여럿 지적하면서도 한국의 산업혁신 당위성을 강조했다.
환경재단이 주최한 '그린보트' 행사에 참여한 김문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4차 산업혁명 대응와 과제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 ⓒ 2019. 환경재단. All rights reserved
“규제의 철폐가 아닌 최신화”

24살에 교육그룹 ‘이투스’를 설립해 유명세를 탄 김문수 교수. “움직이는 지구촌 겸 학교, 그린보트에 타게 돼 행복했다”는 그는 요즘 ‘4차 산업혁명’에 푹 빠져있단다. 이투스를 벗어나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김 교수는 “태산은 티끌에서 시작된다”며 혁신에 한창인 티끌기업들을 분석하는 데에 한창이다.

인터뷰 시작과 함께 김문수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비비크림으로 2조원 신화를 이뤄낸 ‘닥터자르트’, 96억원의 한옥고택을 현찰로 매입해 눈길을 끈 김소희 전 대표의 ‘스타일난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물음이지만 정답이 거창하진 않았다. ‘카페24’(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카페24는 이른바 ‘테슬라 요건 상장’, 즉 적자기업 상장특례를 적용받아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1호 기업이다. 수년 적자를 기록했지만 잠재 가능성이 커 특별히 상장됐다는 뜻이다.

김문수 교수는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신흥부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탄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런 점을 눈치 채는 속도가 한국이 늦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2013년 연매출 300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닥터자르트는 최근 11억 달러(약 1조3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미국의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에 인수됐다. 온라인 쇼핑몰 스타일난다는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에 6000억원에 인수됐다. 미국과 프랑스의 해당 기업들 모두 인수한 회사에 대한 투자를 일찍이 해왔던 곳이다.

사회적 가치관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게 김문수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한국기업은 치열한 경쟁 속 적자생존 식의 문화에 익숙하지만, 해외는 위 사례처럼 성장을 지원한 후 인수하는 문화가 활발하다”고 바라봤다.

문제의 원인은 국내의 낡은 제도가 한 몫 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 적용된 포지티브 규제(허용사항 외 전면금지)가 기업의 행동과 의식반경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 대부분의 신생기업들은 ‘글로벌화’보다는 ‘생존’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김문수 교수는 “글로벌 톱(Top)100 스타트업(투자액 기준)의 70%는 한국에서 규제 저촉으로 인해 정상적 영업활동이 불가능할 소지가 있다”며 “그렇다 보니 신생기업들이 스케일 확장을 핵심으로 하는 사고의 전환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김 교수가 ‘규제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특정 분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육성에 관한 법률’ 등을 보면 십 수 년 전에 제정된 경우가 많다”면서 “규제를 ‘철폐’하기보다는 ‘최신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토스나 배달의민족 등이 육성전략으로 만들어진 기업은 아니지 않냐”면서 “진흥과 육성은 기업들이 알아서 하게끔 만들고, 규제라 함은 신산업 성장으로 우려되는 기존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이 4차 산업 선도해 상징성 남겨야”

한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과정이 매우 미흡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김문수 교수에 따르면 국내의 ‘4차 산업혁명 위원회’처럼 미래경제 대응 기구를 관이 주도해 설립한 사례는 세계에서 드물다. 때문에 한국의 4차 산업 준비가 종종 중국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김문수 교수는 승산이 있는 데다 그래야만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중국의 4차 산업혁명 로드맵 격인 ‘중국제조 2025’가 위협처럼 느껴질 수는 있지만, 이는 결국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사회주의 특유의 일사분란함은 덜해도 좌충우돌과 자유를 담보하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4차 산업은 꽃을 피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문수 교수는 또 “무엇보다도 한국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며 “한국 특유의 역동성을 발판으로 훗날 4차 산업혁명의 팔로워가 아닌 선구자로 발돋움한다면 커다란 상징성을 남길 수 있기에 오히려 지금은 기회의 시기”라고 부연했다.

지식인과 기업, 일반 시민들의 역할은 없을까. 김문수 교수는 “모두에게 일면 반성할 대목들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계의 경우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가 혁신 잠재력을 축소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고 했다. 그는 “실무 등에서 굉장히 뛰어난 역량을 갖춘 전문가들이 많지만, 박사출신이 아닌 이상은 강단에 설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이는 미래자본인 청년들의 지식확장을 가로막는 주된 요소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혁신’의 정의를 좁게 해석하는 세간의 인식도 개선을 피력했다. 혁신은 기술 자체를 새롭게 하는 것 외에도 디지털과 기존산업의 융합 등 여러 방법이 있는데, 한국은 ‘기술혁신’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이는 타다 등이 최근 혁신기업인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진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김문수 교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혁신은 상생을 담는 것이다. 그는 “온오프라인의 융합이 4차 산업의 핵심 중 하나이듯, 신산업으로 인해 기존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라며 “아직은 미개척 분야처럼 비치지만 시간이 흘러 사례가 누적된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고 말을 맺었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