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조원태 회장이 유훈과 다르게 운영하고 있다”

한진그룹이 또 시끄러워졌다. 이번엔 경영권 갈등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그의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간 싸움이지만, 회사 전체가 한동안 혼란의 소용돌이에 놓일 전망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와의 연대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발생 배경과 향후 쟁점 및 결과에 세간의 시선이 쏠렸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오른쪽)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그룹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호텔 때문? 조현아의 ‘선전포고’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난 12월23일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조원태 회장이 고 조양호 전 회장의 가족 공동 경영 유훈과 다르게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다”며 “지금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법무법인에 따르면 고 조양호 전 회장은 임종 직전 “3명(조현아·조원태·조현민)의 형제가 함께 잘 경영해 나가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현재 총수 일가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을 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6.52%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6.49%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7%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5.31%로 비슷하다. 공동경영이 불가피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진은 사실상 조원태 회장 원톱 체제와 다름없다는 게 조현아 전 부사장의 시각이다. 그의 법무법인은 “조원태 회장은 상속인들 간의 실질적인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며 “그밖에 경영상 중대한 사항들도 조원태 회장의 뜻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조양호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8개월여. 돌연 벌어진 남매 간 갈등의 배경이 관심사다. 일각에선 조원태 회장의 최근 미국 방문이 불씨가 됐다고 본다. 이때의 주요 키워드는 ‘호텔사업’과 ‘이메일’이다. 또 같은 달 있었던 한진그룹 정기 임원인사가 트리거로 작용했다는 게 주된 분석이다.

앞서 조원태 회장은 지난 11월 선친의 ‘밴 플리트 상’ 대리수상을 위해 뉴욕을 방문, 현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조원태 회장은 “이익이 안 나는 사업은 버려야 한다”, “(아버지가) 작년 12월 제게 이메일을 보내 대한항공은 제가, 그 외 계열사는 대표이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이익 안 나는 사업’이 호텔부문을 뜻한다는 분석이 많다. 한진그룹의 ‘칼호텔네트워크’는 2014년 이후 5년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항공의 종속회사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HIC)’이 운영하는 미국 LA 월셔그랜드센터호텔도 2017년 개관 이후 누적 영업손실이 2000억원에 달한다.

최근까지 조현아 전 부사장은 호텔사업을 통해 경영복귀를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호텔사업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전공(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 학사)인 동시에 그가 자신했던 영역이라고 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그룹 내 첫 대표이사 이력도 2009년 ‘칼호텔네트워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는 지난 11월 29일 단행된 한진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배제됐다.

업계에 따르면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소위 ‘조현아 라인’으로 분류돼 온 임원들도 대거 퇴직하거나 계열사로 밀려났다. 항간에는 조원태 회장이 지난해 아버지로부터 받았다는 이메일 자체를 조현아 전 부사장이 부정한다는 말도 떠돈다. “작년 겨울이면 선친이 투병하던 때인데 어떻게 이메일을 보냈냐”는 것이다.

오는 3월 한진칼 주총에 촉각

법무법인 원에 따르면 조현아 전 부사장은 “한진 그룹의 주주 및 선대 회장의 상속인으로서 선대 회장의 유훈에 따라 그룹의 발전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며 “향후 다양한 주주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말뜻을 두고 조현아 전 부사장이 자신의 세력을 결집해 경영권 확보에 나설 것이란 해석이 적지 않다.

조원태 회장의 임기 만료일은 2020년 3월23일이다. 연임 여부는 그 시기 주총에서 결정된다. 현재 한진칼 지분구조를 보면 고 조양호 전 회장 유족들과 특수관계인이 총 28.94%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한진칼 총수 일가에 적대적인 KCGI 지분이 17.29%에 달한다. 이밖에 미국 델타항공 10%, 반도건설 6.28%, 국민연금 4.1% 등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조현아 전 부사장이 결심만 한다면 오는 주총 때 표 대결을 벌일 수 있는 구조다. 그와 KCGI가 연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의 배경이다. 한진칼의 ‘단일 최대주주’인 KCGI는 작년부터 한진그룹 경영에 참여할 뜻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만큼, 명분만 있다면 조현아 전 부사장과의 결합 시나리오가 아주 불가하지도 않다. 법무법인 원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땅콩회항 사건 등으로 이미 이미지가 나빠진 조현아 부사장이 경영권까지 노리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대한항공 노조 등도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에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당장은 조현민 전무와 이명희 전 이사장에 눈이 쏠린다. 총수 일가가 각각 보유한 지분이 1% 미만의 차이를 보이는 까닭에 어느 한쪽이라도 조현아 전 부사장과 뜻을 같이 하면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어서다. 조현민 전무의 경우 지난 6월 경영에 복귀한 점에 미뤄 현 체제에 우호적일 수 있지만, 이명희 전 이사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어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말로 최대주주를 교체하는 등의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조현아 전 부사장이 동생에 일종의 경고를 던진 셈인데, 호텔부문의 사업분할 및 조 전 부사장 경영권 확대 등이 이뤄지면 갈등도 매듭지어지지 않겠나”라고 추측했다.

한진그룹은 표면상으론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한진 측은 “이번 논란으로 회사 경영의 안정을 해치고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며 “그룹은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회사 경영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 국민과 주주 및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