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주총 한 달여 앞…조원태 회장 ‘주주 표심 잡기’ 행보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한진칼의 앞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행동주의 펀드 KCGI 등과 연합군을 결성, 조원태 회장에 반격을 가한 상황에서 관건으로 작용할 요소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행보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의 선택도 결과를 판가름 낼 주요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소액주주가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총수 일가와 KCGI 등은 총성 없는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제75차 연차총회에 참석한 조원태 회장 모습.
장남 편에 선 모친과 막내

한진칼 주총이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곳곳이 정신없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을 상대로 “부친 유훈과 다르게 운영하고 있다”며 공격을 개시한 이래 경영권 사수 및 확보를 위한 양측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설마 했던 ‘조현아-KCGI’ 동맹은 현실화했고, 반(反) 조원태 쪽에 속하는 반도건설(계열사 대호개발)은 한진칼의 지분을 추가 취득해 5%를 넘겼다.

관심을 모았던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막내딸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조원태 회장쪽에 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현재 한진그룹의 전문 경영인 체제를 지지한다”면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외부 세력과 연대했다는 발표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한 우호·반대 집단 간 세력이 팽팽한 가운데 조원태 회장이 1.39%포인트 차로 조금 앞선다. 조원태 회장(6.52%) 측 지분율은 이명희 고문(5.31%), 조현민 전무(6.47%), 임원·재단 등 특수관계인(4.15%), 델타항공(10%), 카카오(1%) 등 33.45%로 추정된다. 조현아 전 부사장(6.49%) 측은 KCGI(17.29%), 반도건설(8.28%) 등 32.06%다.

소액주주 역할론

‘한진가(家) 대 조현아’ 구도가 형성된 셈인데, 양측은 소액주주가 승패의 향배를 가르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두 쪽 모두 소액주주를 많이 끌어들일수록 자신들에 유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주총 시 전자투표제 도입 여부를 두고 의견이 모아진 부분이 그렇다.

최근 KCGI는 한진칼 측에 오는 주총과 그 후 주총에서도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것을 요청했다. 주총 전자투표제는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원활히 한다는 장점이 있다. 한진칼이 올해는 이 요구를 수용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해당 제도의 취지가 건전·투명성에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도 좋을 수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지난해 6월말 기준 3.45%로 파악된다.

소액주주의 역할론이 부각되는 배경이다. 작년 주총 때 소액주주들의 참석률이 77.18%였다. 오는 3월 주총에도 비슷한 수준의 참석률을 보인다면, 이들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20%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올해는 관심도가 더욱 높아졌고, 전자투표제 도입도 논의되는 만큼 참석률이 오를 가능성이 있어 이들 표심이 무척 중요해졌다.

현재까지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또렷이 부각되는 여론은 없다. 표면상으론 “일단 지켜보자”는 식이 다수다. 다만 이들끼리 조성한 일부 공동체 분위기를 살펴보면 ‘전문 경영인 체제 도입’의 효용성을 재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한진칼 실적이 다소 부진하긴 했지만, 이를 총수 일가가 경영한 탓이라고 볼만한 여지가 선명하지도 않은 까닭에 고민이 깊어 보인다.

당장 조원태 회장은 민심 잡기에 나섰다. 최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체류 중인 한국 교민을 위해 전세기를 파견했다. 조원태 회장은 기장과 승무원 등 대한항공 직원 15명과 함께 직접 비행기에 탑승했다. 업계에선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그가 사내 임직원들과 일반주주들을 염두에 두고 여론 형성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크다.

유휴자산 매각으로 재무개선 나선 조원태

소액주주 역할도 그렇지만 ‘결정적 한 방’은 국민연금에서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조원태 회장 쪽과 조현아 전 부사장·KCGI 쪽의 현재 지분율 차이는 1.39%포인트. 이런 가운데 적어도 3% 이상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양측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 이력이 있다. 작년 3월 한진칼 주총을 앞두고 주식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그러면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이사직을 즉시 상실한다'는 내용의 정관변경을 요구했다. 관련 사안으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경영에 제동을 걸려 한 셈이다. 실제 관철되진 않았다.

국민연금의 당시 행보는 일각에서 ‘경영간섭’이란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올해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흥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도 최근 제1차 국민연금 기금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별기업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원태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대한 찬성, 반대, 중립 등의 단순 의결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조 부위원장은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나 사회투자에 대한 책임도 있다”면서 “국민이 바라보는 관점을 더욱 받아들여 좋은 방향으로 발전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눈에 띄는 손실은 없는 한진칼이지만, 여론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한 묘한 말이다.

현재로서는 조원태 회장의 승리를 조심스레 내다보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조원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할 만한 뚜렷한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우 2심에 걸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등 실형을 선고 받은 상황인데, 그들이 KCGI 편에 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한편 조원태 회장은 경영쇄신 일환으로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 투명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유휴자산인 송현동 부지와 비주력사업인 왕산마리나 매각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키로 했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