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시행에 곳곳 혼선…길어지면 노동생산성↓ “그래도 인프라 구축 필수”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몇몇 기업들이 실시한 재택근무가 이제는 새로운 생활표준, 이른바 ‘뉴 노멀’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를 그저 신기한 현상만으로 바라보기엔 걱정이 따른다. 예기치 않은 시행에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장기화할 경우 노동생산성 저하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의 재택근무 인프라 구축 및 정부의 관련 지원은 필수 과제로 꼽힌다. 경제에 직격탄을 안긴 코로나19가 역설적이게도 재택근무 산업 성장의 시험대 및 촉매제가 된 셈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본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사진은 BBQ 본사 방역 작업 모습.
재택근무 확산…일상화는 힘들 듯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도입은 IT기업들이 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달 25일 재택근무를 처음 시작한 SK그룹은 기존 계획보다 기간을 1~2주가량 늘려 이달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네이버도 당초보다 약 열흘 연장해 지난 13일까지 진행했다. 엔씨소프트도 오는 20일까지 부서별 인원의 50%가 순환 방식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우려가 커가면서 기업들의 재택근무 확대 혹은 신규 도입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1089개사를 대상으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재택근무 실시 의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5곳 중 2곳(40.5%)이 이미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거나 실시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곳곳서 혼란이 발생하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사무실 근무보다 편하고 효율적인 듯한 재택근무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유통대기업의 2년차 직원 하 모 씨는 “보안상의 이유로 집에선 사내망 접속이 안 돼 기초 양식 문서도 열 수가 없다”며 “업무지시도 전부 메시지로 이뤄지는 탓에 어떨 땐 카톡 지옥이 되살아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임원들도 낯설긴 마찬가지다. 직원들과 직접 마주할 수가 없다보니 업무의 진척사항을 제대로 파악치 못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지털 전도사’로 유명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지난달 27일 자신의 SNS에 "내일부터 회사는 50% 재택근무. 내가 집집마다 돌면서 제대로 근무하는지 확인할 거야"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이렇듯 재택근무의 일상화 가능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여러 면면을 살펴보면, 긍정보단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미흡한 시스템이 문제고, 길어지면 가뜩이나 낮은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더 떨어질 수도 있어서다. 물론 전 업종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재택근무가 대체로 저생산성을 띤다는 주요 사례와 전문가들의 분석이 많다.

해외에서도 코로나19발 재택근무가 확산 중인데 벌써부터 우려가 나온다. 미국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최근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을 빌려 “장기적 관점에서 재택근무는 집단 차원의 동기부여 및 창의성 향상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예상보다 길어지면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제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의 컴퓨터 기업 IBM이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1993년 원격근무를 도입해 재택근무의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 그런 IBM이 지난 2017년 24년의 전통을 깨고 전 직원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낮은 수준의 업무생산성이 이유였는데, 사무실 복귀가 싫다면 아예 회사를 떠나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야후 역시 2013년 재택근무를 폐지했다. 대형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보험회사 애트나도 그랬다. 이들은 전부 ‘사무실 밖 공간에서 일하는 직원은 업무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를 들었다. 평소 구글과 페이스북 등 세계의 IT 기업들이 ‘집보다 더 머무르고 싶은 사무실을 만들겠다’고 공언할 뿐 실제 ‘집에서 일하라’고는 말하지 않는 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재택근무제를 선제적으로 시행한 기관은 특허청이다. 2005년 공공기관 최초로 전체 직원의 약 8%정도를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를 시범운영, 이듬해부터 규모를 차츰 늘렸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시행 뒤 얼마 못가 이 기관의 재택근무자들이 제도를 악용해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등 국감 지적사항이 여럿 제기돼 대중의 불신을 초래했다.

재택근무 최소 인프라는 갖춰야

사실 재택근무 자체가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대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1970년대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재택근무제는 과한 도시화 현상, 그에 따른 에너지 소비와 교통량 증가 및 환경오염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 주된 목적을 뒀다. 물론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일정 생산성을 담보하는 곳도 있지만, 노동시장이 경직된 한국과는 맞지 않는 얘기다.

그럼에도 국내 역시 재택근무 인프라는 철저히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요즘과 유사한 일이 언제든 재현할 수 있고, 재택근무 산업 성장으로 파생될 경제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재택근무는 이미 확대 추세였다”며 “이를 기반에 둔 클라우드 등 여러 IT분야 성장세가 빠르게 전개 중”이라고 말했다.

당장 풀어야 할 과제는 디지털 기술력이 미흡한 중소기업에 있다. 대기업들은 가상사설망(VPN) 구축 및 랜섬웨어, 해킹 등에 저항할 보안시스템 등 충분한 ICT기술력을 갖출 수 있다지만 작은 기업에겐 먼 나라 얘기다. 재택근무 환경 구축과 관련한 정부 및 대기업의 지원·투자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굴지 대기업의 보안 협력업체에 재직 중인 원 모 부장은 “재택근무를 하려면 개별 PC를 써야 하는데, 보안 인증이 안 된 데다 원격근무에 요구되는 자원용량 및 네트워크 속도도 따라갈 수가 없다”며 “이번 기회에 관련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느끼긴 했지만 회사 입장에선 그에 지속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택근무 관련 개별기술은 각 기업이 스스로 갖추되 그러기 위한 여건 조성에 필요한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갑작스런 재택근무에 일부 영업활동이 원활치 못한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인건비 일부를 지원해주지만, 사태 적응에 드는 시간이 긴 만큼 사무실 경비 등 제반비용에 대한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