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외환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유럽과 미국 증시가 10% 안팎 무너지는 등 글로벌 증시의 ‘대폭락 장세’가 잇따르면서 장중 1700선이 붕괴됐다. 연합

지난주(3/6~3/12)에는 한 주 동안 주가가 250.9포인트, 12.0%가 하락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주가가 이렇게 하락한 건 코로나19에서 시작된 불안심리가 선진국 주가를 끌어내렸고 이게 다시 우리시장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미국 에너지 기업의 신용도에 문제가 생긴 것도 시장에 부담을 줬다. 12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했지만 특별한 내용이 없어 상승은커녕 전 세계 주가를 5% 이상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고 외국인이 주간으로 2조 5000억 가까운 순매도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감산 거부로 유가 급락

유가가 이틀에 걸쳐 25% 가까이 하락한 건 1992년 1차 걸프전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일이다. 유가가 이렇게 급락한 건 코로나19로 석유 수급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세계 원유 생산량의 69%는 운송업에, 나머지 25%는 산업용에 소비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중국의 생산이 둔화되면서 제조업이 필요로 하는 원유 수요가 줄어들었다. 운송 역시 자동차, 선박, 항공기 운항에 쓰이는 석유 수요가 줄 걸로 예상된다. 처음 시장은 수요 둔화를 걱정하지 않았었다. 생산자들이 감산 합의를 통해 유가를 안정시킬 걸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관련해 제네바에서 OPEC+ 회의가 열렸고 하루 150만배럴 추가 감산안이 제출됐지만 러시아가 거부했다. 상황이 돌변하자 사우디가 4월 석유 인도분에 대해 20% 낮게 가격을 제시해 계약을 싹쓸이해 버렸다. 원유를 둘러싼 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유가 인하에 러시아와 사우디의 미래 전략이 맞물려 있는 만큼 당분간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러시아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GDP의 32%에 이르는 57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고, 저유가에도 불구하고 재정 흑자를 기록하는 등 유가 하락 충격을 이겨낼 안전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GDP의 6%가 넘는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석유의존도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동안 러시아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계속 낮춰 2019년에 정부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0% 밑으로 떨어뜨린 반면 사우디는 러시아의 두 배인 67%를 기록하고 있다. 2012년 92.6%에 비해 비중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60%를 상회하고 있다. 전체 산업에서 석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44.3%로 러시아보다 높다.

유가 하락이 미국에너지 기업의 신용 악화를 초래해

문제는 러시아와 사우디의 유가 전쟁이 둘만의 분쟁으로 끝나지 않고 미국 에너지 기업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유가가 떨어짐에 따라 이들의 수익성이 나빠져 이미 발행해 놓은 채권이 상환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2014~2016년 OPEC+ 국가와의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수익성 개선보다 외형 확장을 이어간 영향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정책을 펼 수 있었던 건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 덕분이다. 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자 부담이 줄자 채권 발행을 더 늘린 것이다. 시중에 돈이 많아 기업신용도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그 결과 작년 셰일오일 회사들의 평균 이자율은 투자등급의 경우 1.2%, 투기등급도 1.6%로 낮아졌다. 유가가 65달러였던 2018년보다 낮은 수준이 된 것이다.

석유업계에서는 셰일 오일업체의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30~50달러 정도 될 걸로 보고 있다. 유가가 손익분기점 밑으로 내려가면 수익성이 악화돼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위험이 발생한다. 당연히 해당 기업의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최근 투기등급 에너지회사의 채권수익률이 11%까지 상승했다.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20%까지 올라갈 거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연준이 임시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bp 인하했다. 코로나19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해진 상태여서 셰일오일 회사의 신용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연쇄 도산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투기등급 회사채에서 15%의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기업에 대한 우려가 계속 확대될 것이다. 지난 11년간 겪어 보지 않았던 상황이 시작됐다. 미국 주식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니다.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이 오래 이어지면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두려움에다, 신용 경색이 현실화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다. 과거 질병을 포함해 외부 쇼크에 의한 주가 하락은 한 번 내려가는 걸로 끝났다. 2015년이 대표적이다. S&P의 국가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계기로 미국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했지만 이내 반등해 V자 형태를 만들었다. 이번은 과거와 달리 두 번째 하락이 크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럴 경우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하락이 더 문제가 된다. 1차 하락은 시장이 쇼크를 받아 급락하기 때문에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매수가 들어와 해소될 수 있지만 2차 하락은 그렇지 않다. 2011년 코스피는 2100 수준이었다. 지금은 1900 부근에 있다. 그 사이 미국시장은 두 배 이상이 됐다. 이런 상승 격차 때문에 당분간 우리 시장이 미국보다 덜 떨어질 걸로 보인다. 주가가 오른 게 없어 내려갈 곳도 없는 것이다. 우리시장의 상대적 강세도 미국시장의 급등락이 멈춘 다음의 일이다. 지금은 시장의 혼란을 피하는 게 급선무다.

● 이종우 전 리서치센터장 프로필

-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 한화증권, 교보증권, HMC증권, IM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 리서치센터장 역임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