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 도입에 경기도는 무차별 지급…정부 도입은 힘들 듯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재난이 발생하자 급진적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코로나19 창궐에 전 세계가 유례 드문 경기 부양책을 속속 내놓은 가운데, 국내에서는 기본소득 논쟁이 가열됐다. 정확히는 ‘재난기본소득’인데 일부 지자체가 벌써 시행에 돌입해 관심이 모인다. 그간 ‘합리적 복지’와 ‘선심성 포퓰리즘’ 굴레 안에서 이리저리 치였던 기본소득의 효용성을 코로나19가 시험하게끔 한 모습이 됐다. 다만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를 지배할 소모적 논쟁이 또 불붙을 수 있어 우려를 낳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시행된 기본소득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남은 과제라고 말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전국서 기본소득 도입 행렬

코로나19에 따른 기본소득 도입 논란은 이재웅 쏘카 대표가 쏘아 올렸다. 지난달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난기본소득'을 한 달간 50만원이라도 지급해 달라"는 글을 쓰면서다. 민간 정책연구기관인 LAB2050의 윤형중 정책팀장도 큰 몫을 했다. 그는 '재난기본소득 검토해보자'는 내용의 칼럼을 모 언론에 기고했다.

여파는 컸다. 몇몇 지자체가 실제 도입에 나섰다. 전북 전주시가 가장 빨랐다. 지난 13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5만여 명에게 각각 긴급생활비 52만7158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바통이 이어졌다. 닷새 뒤 서울시가 중위소득 100%(4인 가구 기준 월 474만9174원)이하 117만7000가구에 30만~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강원도와 대구·경북 등지도 비슷하게 참여했다.

경기도는 더 세게 나갔다. 지급대상 선별 없이 전 도민에게 10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이곳 인구는 주민등록인구 통계 기준 1326만5377명이다. 경기도는 1조3642억 원을 투입했다. 다만 3개월이 지나면 소멸하는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단기간에 전액 소비할 것을 유도함으로써 가계지원 및 자영업자의 매출 증대를 도우려는 목적에서다.

정부 도입은 어려울 전망

이런 흐름이 기본소득 확대 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최근 여론을 보면 약 절반가량의 국민들은 정부의 기본소득 지급을 바라고 있다. 지난 16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난기본소득 도입’의 찬성 비율은 48.6%, 반대 비율은 34.3%로 나타났다. 여기서 ‘재난기본소득’은 재난 발생 시에 한정해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를 뜻한다.

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회는 물론 전국 지역의회 등 여러 곳에서 상당규모의 추경이 이뤄진 데다, 재원확보 방안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집행규모와 행정비용 사이의 모순까지 고려해보면 현 시점에서 정부 차원의 기본소득 지급은 되레 위기를 낳을 여지가 크다.

2018년 시행한 아동수당이 대표 사례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당시 ‘만 6세 이하의 아동이 있는 소득 상위 10%’를 분류하는 데에 행정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고 한다. 조사처는 “재난기본소득 대상선정에 있어서도 소득·재산 수준, 직업군 등을 일일이 구분해야 한다”며 “그 외 복지혜택과의 중복성 여부를 따질 때의 행정비용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국민 여론에도 기본소득 제공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게 이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각종 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대책과 금융정책을 내놓았는데, 기본소득까지 집행한다면 재정체력을 넘길 공산이 크다. 국민을 5000만 명으로만 단순 가정해도 현금 100만 원씩을 지급할 시 필요 예산이 50조 원에 이른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기본소득의 실효성이 검증된 바 없다는 점이다. 결국 불확실성이 문제인 셈인데, 이는 외국 사례를 살펴봐도 파악하기가 어려워 위험을 안긴다. 해외에서는 주로 한국보다 인구나 대외 경제의 규모가 작은 나라를 중심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운용 방식도 천차만별일뿐더러 그마저도 여전히 효과를 관찰 중인 곳이 많다.

실험은 필요…분석 치밀해야

다만 이번 기회에 한국도 기본소득에 관한 분석 및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와 코로나19 등 감염병 위기가 4~6년 주기로 되풀이 중이므로, 기본소득 도입은 언제든 요구될 수 있는 정책이어서다. 다소 멀게 느껴지지만 인공지능 등의 노동 대체를 대비한 기본소득 실험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국제 여론도 만만찮은 게 사실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재난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며 이 지점을 짚었다. 그는 “위기에 처한 경기도민과 도내 자영업자,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했지만 부족한 재원 때문에 갈등이 많았다”면서도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이 국가 차원의 기본소득 논의의 단초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코로나19는 향후 국내 기본소득 논의의 주요한 사례가 될 전망이다. 전주와 서울 등은 선별적, 경기도는 보편적 지급에 나서면서 효용성 측정 대조군도 형성이 됐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부 지역서 도입된 기본소득 제도는 경제·복지 차원에서 유의미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훈 교수는 “그동안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포퓰리즘 정책 등으로 치부돼 원만한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었다”면서 “이번 제도 도입으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수령한 시민들은 이전과 또 다른 생각을 갖게 돼 사회 전반의 의식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 측정은 곡해 없이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형 기본소득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아닌 과학적 산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모 지자체 관계자는 “서울시 등 일부 대도시들이 청년수당 형태로 사실상 기본소득을 시행 중인데, 정치 견해에 따라 성과가 달리 해석되곤 한다”며 “비교군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채 수령자들의 면면만 놓고 비판하는 식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같은 일이 없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