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 바탕으로 파격적 조건…예상 뒤엎고 대림산업 이겨 “다음 노릴 것”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앙팡테리블(enfants terribles). 프랑스 문학가인 장 콕토의 소설 제목에서 비롯된 말로 ‘무서운 아이’란 뜻이다. 통상 스포츠나 연예계에서 거침없이 치고 올라오는 스타를 일컬어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국내 재계에서도 이에 꼭 어울리는 기업이 있다. 호반건설이다. 상경(上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회사의 저돌적 행보는 이제 대형 건설사를 위협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최근 벌어진 서울 신반포15차 수주전에서도 호반건설은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비록 깃발은 못 꽂았으나 존재감은 분명히 각인시켰다는 분석의 배경이다.
당초 호반건설이 목표했던 신반포 호반써밋 투시도.
강남서 존재감 과시…대림산업 꺾었다

강남권 재정비사업 첫 진입을 노린 호반건설이 고배를 마셨다. 지난 23일 서울 신반포역 인근 신반포15차 재건축 수주전에서 시공권을 삼성물산에 내어줬다. 해당 사업권을 둔 경쟁은 삼성물산·대림산업·호반건설 3파전으로 치러졌는데, 당초 시장에선 삼성물산과 대림산업 양강구도로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러나 이번에 호반건설은 181표 중 22표를 얻어 대림산업을 앞섰다. 대림산업은 18표에 불과했다. 호반건설이 최종 승리하지 못한 것은 브랜드가치가 다소 열세에 있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내 대표 부촌인 강남에서 사업권을 쥐려면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다. 초반까지 삼성물산과 대림산업의 우세가 점쳐진 배경이기도 하다.

1등을 놓친 호반건설이지만 충분히 남는 장사를 했다는 게 업계 평가다. 무엇보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경쟁사를 당혹스럽게 해 홍보효과를 제대로 봤다. 수주전에서 호반건설은 390억 원의 무상품목을 포함한 2513억 원을 공사비로 제시했다. 이 단지 시공이익(추산)이 250억 원 수준이다. 140억 원가량의 역마진을 떠안더라도 강남 진출의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공사비뿐 아니라 사업비 대출이자도 호반건설은 연 0.5%를 약속했다. 이는 삼성물산 1.9%와 대림산업 1.5%(양도성예금증서·CD)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금리다. 또 ‘분양 시기 선택제’를 통해 조합원들이 공사비나 사업조건 변경을 안 하고도 선분양, 후분양 중 유리한 시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행보는 업계에 실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호반건설 재무여력 등에 견줘 보면 이번 역마진 등의 선언이 단순 구호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 많다. 당장은 브랜드가치가 약점으로 평가받았으나 이 역시 성장세다. 기업평판연구소에 따르면 ‘호반 베르디움’은 아파트 브랜드가치에서 올해 1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15위였다.

호반건설 서울 서초동 사옥.
호남의 맹주, 어떻게 시장 ‘다크호스’ 됐나

2018년부터 본격화한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 꾸준히 성장한 건설사는 의외로 몇 없다. 최근 나온 감사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기준 10대 대형 건설사 가운데 절반은 작년도 매출액(별도기준)이 전년 대비 감소를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와중에도 호반건설은 덩치를 키웠다. 지난해 매출 1조9777억 원을 달성했다. 한 해 전보다 8000억 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주택 사업에 본격 뛰어든 지 30년이 채 안 된 건설사가 매출 2조원 돌파를 눈앞에 둔 셈이다. 실적 외에도 성과가 많았다. 처음으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곳에 이름을 올린 게 대표적이다. 전년보다 3단계 뛴 10위를 기록했다.

특정 산업계에서 급성장을 이룬 회사가 종종 있긴 하나, 호반건설이 눈에 띄는 것은 이 기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치밀한 재무관리가 이를 뒷받침한다. 호반건설 특유의 경영철학이 ‘무차입 경영’과 ‘90% 분양룰’이다. 말 그대로 빚을 최소화하고,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으면 더는 신규 분양을 안 한다는 뜻이다.

돈 관리에 관한 한 다소 보수적인 모습인데 실적은 지표로 드러난다. 지난해 말 기준 호반건설의 자본 총계는 3조4000억여 원, 부채 총계는 약 5300억 원이다. 부채비율이 15.6%가량에 그친다. 대개의 건설사들 부채비율이 200% 안팎이다. 이에 더해 호반건설은 현금성 자산이 2742억 원,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금융상품도 1조1794억 원 규모다.

업계에선 “회사의 뿌리가 금융업에 있기 때문”으로 바라본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1996년 ‘현대파이낸스’로 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이 금융사가 2006년 ‘호반건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건설사들이 헐값에 내놓은 땅을 사들여 주택사업을 펼쳐 회사를 키웠다고 알려졌으나, 김 회장의 금융 전문성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시각이 많다.

자금력 외에도 주목되는 지점이 있다. 후발주자로 꼽히지만 품질 면에서도 내실을 갖춘 모습이다. 작년 호반건설의 분양매출은 약 1조2587억 원으로, 전년도(8558억 원)보다 크게 늘었다. 이런 가운데 하자보수비는 전년 대비 약 14억 원 줄였고, 분양해지 손실도 6억4000만 원에서 약 6900만 원으로 대폭 낮췄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호반건설 하자인정 건수는 6건에 그친다. 이는 10대 건설사 중 삼성물산(1위)의 뒤를 잇는 최저 수치다. 4위 대림산업에 대한 하자가 182건 접수돼 129건 인정받은 등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제품 경쟁력에서도 대형건설사 반열에 오른 셈이다.

호반건설의 남은 과제는 상장이다. 올해로 목표했던 기업공개(IPO)는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 여파로 연기됐다. 재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은 기업가치가 3조~4조원으로 추정돼 IPO시장 ‘대어’로 꼽혔다”며 “코로나 국면이 완화한 뒤 건설업 흐름을 살핀 뒤 내년쯤엔 상장이 추진되지 않겠냐”고 전했다.

향후 강남권 재정비 사업수주 역시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첫 강남권 진입을 위해 관련 부서는 물론 다수 직원들이 정말 고생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그간 주택 분야에서 충분히 노하우를 쌓아온 데다, 재무건전성 또한 우수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