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반발 속 당정 합의…상위 30%에게는 자발적 기부 권고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인 염태영 수원시장 등 기초자치단체장들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중재안을 내놓으면서 빠른 시일 내 전 국민에게 지급되도록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여야간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헌법상 권한인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도 검토중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확대 방안’ 두고 당-기재부 이견

23일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하위 70% 가구에 4인 기준 100만원씩 지급하는 당초안을 전국민으로 확대하는 안을 놓고 기재부 등이 이견을 보이자 중재안을 내놨다.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확대안이 총선 공약이라는 더불어민주당과 재정건전성을 위해 이를 반대하는 기획재정부의 이견이 있자 ‘고소득자 자발적 기부’라는 중재안을 고안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22일 청와대 참모들을 만나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한 사항을 어쨌든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한 것. 이는 그간 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대책에 빠른 속도를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기획재정부에 빠른 추진을 요청했다. 국무총리실은 23일 이메일 브리핑을 통해 기재부 관료들이 더 이상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이메일 브리핑에서 정 총리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기재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정부의 입장이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제부총리는 저의 이같은 뜻을 기재부에 정확하게 전달해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기재부 실무자들은 당정간 100% 지급에 관한 합의가 전해진 직후 “기재부가 동의한 것으로 아니다”라는 취지의 언론 터뷰를 통해 강하게 반발했다.

기재부의 반발은 정 총리의 경고 이후 적어도 겉으로는 수그러 든 양상이다. 기재부는 전국민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추가 재원을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할 계획임을 밝혔다. 기재부는 23일 긴급재난지원금 보완 보도자료를 통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하되 상위 30%를 포함한 국민들이 자발적 의사에 따라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한 이후에도 기부할 수 있는 대안이 논의됐다고 발표했다. 자발적 의사에 따라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한 이후에 기부한 이들에게는 소득세법에 따라 기부금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기부재원은 고용유지와 실직자 지원 등에 활용할 전망이다.

기재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의 특성상 하루라도 빨리 확정o지급해야 할 사안의 시급성, 정치권에서의 100% 지급 문제제기, 상위 30% 등 국민들의 기부재원이 더 귀한 곳에 활용될 수 있는 대안의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에 따른 추가 재원은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하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한 법률 제o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여야간 공방은 지속…대통령 긴급재정명령권 행사 가능성 관측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당정이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방침을 밝혔지만 국회서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미래통합당에 국정 발목잡기를 그만하라며 압박과 동시에 물밑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미래통합당은 정부에 추경 수정안 제출을 요구하며 먼저 수정예산안을 가져오라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이에 문희상 국회의장이 나서 조속한 여야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도 29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을 처리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통합당의 반대가 강경하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당정 합의안을 가져오면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며 “통합당은 예산 심사 절차에 착수해 달라”고 말했다. 또 최근 30년간 역대 추경 심사에서 수정안 제출 사례가 없다며 야당의 수정안 제출을 무리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예산을 위해 현재 7조6000억원 규모인 추경 예산안을 3조~4조원 가량 증액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원 통합당 정책위의장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예산안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심사할 수 있다”며 “(수정안을 제출한) 전례가 있다. 수정안이 올라온다면 추경안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국정 발목잡기라는 비판에 반박했다. 앞서 김 정책위의장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예산총액 규모 등 22개의 공개 질의사항을 제시하며, 예산안과 함께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추경 처리가 지연돼 4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5월 15일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인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헌법상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은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등에 한해 발동할 수 있다. 이에 임시국회가 종료돼 추경안의 국회 처리가 가능하지 않게 되면 긴급재난지원금의 집행을 위해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