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에게 경영권 안물려줄 것”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재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 경영이 3~4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오너 일가 간 경영권 다툼이 심심찮게 불거지는 국내 현실에 견줘, 기업 경영의 교본으로 불리는 삼성이 경영권의 자동승계는 없다고 선언한 것은 의미가 크다. 다른 기업들 역시 삼성처럼 오너경영 체제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국내외 사례를 종합했을 때 전문경영인 체제가 반드시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는 까닭에 관련 논의는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했다.
“아이들에게 경영권 안 물려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국민에 사과했다.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 부회장은 “국민의 사랑과 관심에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면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며,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이 부회장 승계 과정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이뤄졌다. 지난 2월 출범한 외부 경영감시 기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라서다. 당초 삼성은 사과 수위를 두고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보니, 표현의 적정선을 설정하는 데에 부담이 따랐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에 따라 포괄적인 사과가 이뤄졌는데, 주요사항들에서 구체적인 단언이 나와 여파가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귀를 확 끌어당긴 건 단연 4세 경영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한 부분이다. 이는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3대째 이어져 온 오너 경영에 변화를 예고한 점에서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현재 1남(대학생)1녀(고등학생)를 두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찍이 이 같이 다짐했었다고 한다. 그는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 왔다”며 “경영환경도 결코 녹록치 않은데다가,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제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재계 여파 관심…무리한 지배구조 개편 요구는 경계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인재들이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삼성의 이런 변화가 재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남은 관심사다. 현재 국내 5대 대기업을 포함한 대다수 큰 기업은 창업주 가문 2~3세가 경영권을 쥐고 있다. 삼성이 재계 문화를 선도하는 경향이 큰 만큼, 이 부회장의 이번 선언은 다른 기업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시각이 있다. 스스로 변화할 뜻이 없더라도 “삼성처럼 하라”는 식의 외부 압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의견이 많다. 개별 기업 및 업종 등에 따라 오너 경영이 합리적인 경우도 많은데, 이를 불문한 채 지배구조 개편 등이 요구되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전문경영인 체제는 장기적 목표를 둔 과감한 투자보다 단기 실적에 초점을 맞춰 사업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 월마트가 전통의 강자 K마트를 앞지른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할인소매업 업체인 월마트는 줄곧 소유경영 체제를 이어 온 곳이다. 이 기업은 창업자 사망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K마트를 1991년 앞질러 업계 1위로 올라섰다. K마트가 장기 시설투자와 연구개발 등에 미진한 탓에 이처럼 희비가 엇갈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국내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센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너의 사익 추구 등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가 여럿 마련됐음에도, 각종 일탈을 저질러 제 스스로 사회적 신뢰를 깎아먹는 사례가 있어서다. 현 시점에서만 봐도 조현범 한국타이어 대표이사는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법인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이해욱 대림그룹 회장은 계열사에서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재판이 예정된 상태다.

그럼에도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는 어떠한 유행을 따르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답이 없는 영역”이라며 “반칙에 대한 문제제기는 필요하지만 각 기업의 사정과 업황에 따라 알맞은 방식을 택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 준법위는 이 부회장의 최근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은 “위원회 권고에 따라 이 부회장의 답변 발표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준법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에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다만 시민사회 등의 실질적인 신뢰 회복 등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며 삼성측에 개선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