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 삼성SDI 사업장에서 회동…전기차 배터리 관련 논의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전격 회동한 것을 두고 배경과 논의 사항에 관심이 집중된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에선 차세대 배터리 등에 대한 연구개발 사항을 공유한 한편, 정부가 내세운 신성장 모델에 대한 응답 성격이라는 말들이 많다. 어떻든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미래 혁신이 산업계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데다,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심각한 현실에서 국내 경제를 이끄는 두 기업의 수장이 만난 것은 그 자체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초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인사할 당시 모습.
경쟁 대신 맞손…미래차 기술 기대감

지난 13일 오전 10시 삼성그룹의 삼성SDI 천안사업장.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만났다. 두 총수가 단 둘이 회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의 만남은 정부가 주도하는 행사나 재계 인사가 한데 모이는 곳에서만 이뤄져 왔다. 이날 두 사람은 약 3시간가량 여러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현대 어느 쪽도 두 총수 만남의 배경 및 대화 내용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두 사람이 전기차용 배터리의 현황 및 잠재 기술력 등을 두루 공유했을 것으로 분석한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산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분야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만난 삼성SDI 천안사업장은 삼성 배터리사업의 거점이기도 하다.

실제 미래차 산업에서 배터리는 핵심으로 꼽힌다. 삼성SDI의 올해 1월 전기차 배터리 세계 점유율은 5.1%로 높지 않지만, 그룹 내에선 ‘포스트 반도체’로 불릴 만큼 주요한 미래 산업이다. 지난 3월 삼성종합기술원이 전고체전지 관련 원천기술을 공개했는데, 재계에선 현대차가 일찍이 그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고 전해진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삼성과 현대차가 적절한 시기에 거래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시각이 많다. 그간 현대차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에 LG화학 배터리를, 기아차는 SK이노베이션 제품을 사용해 왔다. 삼성SDI가 캔형(각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는 것과 달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하는데 후자가 현대차에 보다 적합했다고 한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선보인 전고체전지는 캔형과 파우치형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기술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쓰이는 배터리들의 전해질이 액체인 것과 달리, 전고체전지는 고체 전해질이란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쉽게 말해 얼거나 기화, 팽창하는 등 온도변화, 외부충격에 보다 강하다.

현대차가 삼성SDI 배터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BMW와 도요타 등 여러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향후 3~4년 내로 전고체전지를 탑재한 전기차 출시를 공언한 바 있어서다. 현대차 역시 2025년까지 40여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그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3종을 순수 전기차로 채운다고 밝힌 만큼 고급 배터리 기술은 필수다.

삼성 입장에서도 든든한 우군을 얻는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 등에 따르면 미래차 배터리 시장의 규모는 2025년쯤 1600억 달러(182조 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지난 2017년 규모가 330억 달러(약 37조 원)였던 점에 견줘보면, 연 평균 25%가량 성장이 예상되는 셈이다. 현재 세계 점유율은 일본 파나소닉(27.6%), 한국 LG화학(22.9%)이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현대, 협력 요소 많아

재계 관계자는 “한국 경제성장 모델을 기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DJ 정부 때부터 약 20년 간 제기돼 왔지만 현재까지 체감할 만한 성과는 많지 않았다”며 “4차 산업혁명이 본격 거론되면서 관련 구호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데, 국내 톱 2곳의 3세 경영인끼리 손을 잡음으로써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 회동의 의미가 비단 차세대 배터리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정부 경제 부흥책에 대한 적극 협조를 응답한 행보로 보는 의견도 많아서다. 이번 정부는 비메모리·미래차·바이오 3대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지정해 수출 강국의 미래를 맡겼다. 비메모리 반도체와 미래차 분야 선두 격인 삼성과 현대차의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7~10일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한국형 뉴딜’ 선언에서도 삼성과 현대차의 역할론이 엿보였다. 문 대통령은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5G,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비대면 산업을 여러 번 힘줘 말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형 뉴딜을 적극 활용해 미래차 시대를 앞당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과 현대는 각각 디지털 인프라와 미래차에 강하므로 상호 협력할 요소가 많다. 근래 현대차는 ICT와의 융복합을 가속화 중이고, 비대면 IT 개발 플랫폼 구축에도 나섰다. 삼성 역시 차량용 반도체에서 우월한 기술력을 보유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아우디에 2021년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위한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V9’를 공급하고 있다.

한편 삼성SDI는 내년에는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가 현행 전기차보다 20% 높은 전기차 배터리도 양산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물량 및 시장 지배력 확대보다는 기술개발에 무게를 싣는 듯한 모습”이라며 “향후 현대차가 삼성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부품을 공급받게 된다면 국내 산업의 전체 규모도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