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코로나 6개월 지속 시 감원 불가피…‘좀비기업’ 구조조정 기회 분석도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이제부터가 진짜 위기의 시작”이라는 말이 수개월 째다. “이보다 최악은 없을 것”이란 진단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경제 충격이 가실 기미가 안 보인다. 이제 구조조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란 분석이 나온다. 물론 국내외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인력 감축이 단행되긴 했다. 그러나 영세한 업체 및 비정규직 등 경제적 취약계층에 여파가 집중됐던 게 사실이다. 머지않을 시기에 불어 닥칠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IMF 때보다 최악”이란 말이 더는 비유에 그치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다. 현재 빚을 내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거대 기업들이 곧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인력감축, 이제 대기업 차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취업자 수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코로나發 구조조정 직격탄…그간 피해는?

기존에 코로나19가 낳은 일자리 위기는 주로 경제적 취약 계층에 쏠렸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3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코로나19로 인해 전체 사업체 종사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22만5000명 감소했다. 고용 취약계층인 임시·일용직 타격이 특히 컸다. 감소 규모가 164만8000명에 이른다. 상용직 종사자는 8000명 감소했다.

이들 가운데서도 남성보다 여성, 중장년보다는 청년층의 피해가 컸다. 한국고용정보원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실업급여 신청자 수가 전년 동월에 비해 24.8%(3만1000명) 증가, 3월 기준 11년 만에 최대치인 15만6000명을 기록했다. 2030세대 신청 건수는 5만9708명에 달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9만3800명, 남성은 6만2102명으로 집계됐다.

기업 피해도 심각하다. 소규모 사업장은 더욱 그렇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소기업의 파산신청이 총 101건에 달했다. 2019년 3월에는 66건에 불과했다. 올해 53% 증가한 것이다. 원인이 코로나에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 위기가 심각했던 대구의 파산신청 건수가 전년의 2.5배인 7건으로 전국 최다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파가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중소기업 도산은 본격 가시화되지 않았다”며 “코로나가 진정된 후에도 도산 위험에 직면할 곳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중소기업이 파산으로 몰리기 전에 조기에 중소기업 회생 전문가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대기업은 괜찮았나?

어떤 위기든 피해는 취약계층부터 시작된다지만, 이번 코로나19의 경우는 결이 다소 다르다. 자본력을 갖춘 거대 기업들 역시 구조조정 칼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는 올해 2~3월 국내 500대 기업의 종사자 중 1만명 가량이 회사를 떠났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164만4868명이다. 코로나19 발병 전인 1월 말보다 1만844명이 줄어든 수치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회사와 소비자가 거래(B2C)하는 기업들이 인력을 감축한 영향이다. 해당 사이트가 집계한 이들 기업의 감원 규모를 보면, 대면 접촉이 많은 서비스업과 유통업에서만 6000명 이상이 줄었다.

기업별로는 CJ CGV의 감소 규모가 가장 컸다. 두 달 간 총 2331명이 회사를 나갔다. CJ푸드빌도 1629명 줄었다. 이어 스타벅스커피코리아(-859명), 롯데쇼핑(-827명), 두산중공업(-678명), 아성다이소(-620명), 한국도로공사(-573명), GS리테일(-527명), 대한항공(-470명), 코닝정밀소재(-339명) 등의 순으로 직원 수가 감소했다.

항공업 종사자들이 생사 갈림길에 선 지는 오래다.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만 봐도 지난해 말 1만963명이었던 직원 수가 올해 3월 말 1만8741명으로 322명 감소했다. 아시아나항공도 동기간 36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제주항공과 부산항공 및 진에어와 이스타항공 등 저비용항공사들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6개 항공사의 전체 실직자 수는 413명으로 집계됐다.

에어서울 등 분기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곳까지 고려하면 실제 감원 규모는 더 클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끝이 아니다. 이스타항공은 이달 중 전체 직원의 약 22%인 350여 명을 정리해고 할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원래 재무여력이 안 좋긴 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HDC현대산업개발과 합병 이전에 보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해외 상황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업 사태는 세계적이다. 국내처럼 해외도 항공 산업의 위기의식이 특히 강하다. 블룸버그 등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영국 브리티시항공은 1만2000여명을 정리해고할 예정이다. 에미레이트항공도 3만여 개의 일자리 축소를 검토 중이다. 호주 2위 항공사 버진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지난달 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공유경제 업체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줄줄이 직원 해고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세계 최대 차량호출업체 ‘우버’는 약 6700명에 대한 해고를 최근 결정했다. 이곳은 지난 6일(현지시간) 3700명 해고를 결정한 바 있다. 그로부터 보름 뒤 3000명에 대한 2차 추가 해고 계획을 알린 것이다.

세계 2위 차량 공유업체인 리프트도 상황이 같다. 전 직원의 17%가량인 982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이밖에 에어비앤비 역시 전체 직원의 약 4분의 1인 1900명을 해고할 방침이며, 액상형 전자담배 브랜드 ‘쥴 랩스’도 전체 인력의 3분의 1에 달하는 9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포드도 올해 안에 유럽 내 직원의 20% 수준인 1만2000명 감원에 나선다.

이제 국내 대기업 차례

국내에서도 “진짜 위기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말이 많다. 현재 무·유급 휴직 및 임직원 급여 삭감 등을 수반한 비상경영에 돌입한 대기업들 중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곳이 적지 않다. 당장 이들 기업은 유동성 확보와 비용절감 등으로 버티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세가 6개월 정도 지속되면 감원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토로한다.

모 굴지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어디 재간이 있겠냐”고 토로했다. 그는 “단 한 번도 강제로 인원을 쫓아낸 적 없는 우리 회사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며 “과거 다른 회사가 구조조정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런 용기가 어떻게 나오냐’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러다 우리도…’라는 우려가 커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고 전했다.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대기업 10곳 중 3곳은 코로나19 사태가 6개월가량 지속되면 인원 감축에 나설 수 있다고 응답했다. 고용유지 한계기간까지 4개월이 채 안 남았다는 곳도 10곳 중 2곳이었다.

구체적으로 대기업들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위기 대응방안으로 현재 ‘유동성 확보 및 비용절감’(59.4%)을 가장 많이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력감축’(8.8%)은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별도의 대응방안 없음’이라고 응답한 기업들도 17.5%에 달한 만큼, 이들의 인력감축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인력 구조조정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인데, 마지노선은 올해 말까지다. 대기업의 32.5%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가 6개월가량 지속될 경우 인력 구조조정 없이는 버티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현재 인력 감축을 진행 혹은 계획 중인 대기업 비중(8.8%)의 3.7배 수준이다. 고용유지 한계기간을 2~4개월로 본 곳은 16.7%, 0~2개월이란 회사도 6.7%에 달했다.

현 시점에선 정부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다수 기업들이 휴업·휴직을 시행하고 있으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못한 비중이 80.6%인 것으로 조사돼서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 등 고용조정이 불가피한 사유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으나, 업계에선 한시적 요건 완화를 통해 급한 불은 꺼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대기업들은 심각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인력 감축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영위기에도 휴업·휴직을 실시하여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고용유지지원금이 원활히 지급될 수 있도록 지원요건을 완화함으로써, 민간의 고용유지 노력에 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억지 회생 중인 기업들을 구조조정 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따른다. 정부 또는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덩치를 유지 중인 기업들을 이참에 정리하고, 디지털 전환 등 산업 구조의 체질변화를 본격화할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할 대규모 실업 리스크에 대해선 정부 지원이 요구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반만 하더라도 코로나19 여파는 내수 등이 멈춘데 따른 유동성 위기로 비치면서,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회복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이제는 단순 유동성 지원보다는 구조조정 필요성이 대두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교수는 이어 “이번 사태가 지속할 시에는 경제구조의 변화는 물론 세계화 흐름도 바뀔 수 있다”면서 “그에 따라 구조적으로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기업 내지 좀비기업들을 계속 살려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실업자들에 대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취업 교육을 시켜 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과거 경제위기와 달라…신성장 산업은 지켜야

코로나19는 여러 면에서 1998년 IMF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다르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일로서, 정부가 기민한 대응으로 극복 방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국지적인 사태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자연재해 성격을 띠면서 사실상 전 인류를 덮쳐 골치다. 실물경제를 강타한 만큼 대규모 구조조정을 수반해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코로나19 장기화 여부가 관건이지만 정작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이에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한 대책마련의 필요성이 거론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시경제 경로 전망’에서 2021년까지 경제위기가 지속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신성장 산업 발달의 걸림돌만큼은 제거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KDI측은 “대규모 기업 파산과 실업이 발생하면 생산능력이 저하되고 감염병 종식 후에도 경기 회복을 지체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정책으로 경제시스템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한 광범위한 지원 정책이 향후 기업의 건전한 진입과 퇴출을 지속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신성장 산업 발달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