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익 사업 정리.미래사업 과감 투자/SK매직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코로나19 여파에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최신원 매직’이 주목받고 있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하며 저수익 사업 대신 미래성장 산업에 주력한 SK네트웍스가 차츰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일부 사업부문은 이미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달성했지만, 보다 눈에 띄는 실적이 앞으로 더 있을 것이란 분석도 상당수다. 이런 가운데 한편에선 최신원 회장에게서 최종건 SK창업회장을 엿보는 시각도 따른다. 전화위복에 뛰어난 DNA 때문인데 실제 최신원 회장과 그의 아버지 최종건 창업회장의 여정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서 흥미롭다.
1962년 선경직물 증축 준공식을 마친 뒤 고 최종건 회장(오른쪽 세번째)과 고 최종현 회장(두번째)이 나란히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전쟁 직후 돌아온 최종건의 도전과 매직

경기도 수원시에서 “지역 발전에 가장 큰 도움을 준 회사가 어디인가”를 질문하면 대다수 시민들은 ‘삼성전자’를 꼽는다. 영통구에 소재한 삼성전자 본사가 지역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 질문하면 빠짐없이 나오는 기업이 또 있다. SK, 정확히는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어느 날, 성난 군중들이 몽둥이 하나씩을 들고 수원시 선경직물 앞에 몰렸다. 적산기업이 된 회사를 파괴하려던 것이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던 상황, 갑자기 21세 청년이 군중들 앞에 나섰다. 선경직물 생산부장 최종건(21세)이었다. 그는 “이 공장은 우리의 것이며 여러분들의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를 파괴하려는가. 해방된 조국에서 다 함께 잘 살아보자”고 외쳤다.

자칫 공장이 무너질 뻔했던 위 상황은 훗날 SK그룹 탄생에 의미 있는 사건이 됐다. 당시 공장을 부수러 왔던 이들은 최종건 연설에 감동을 받고는, 되레 그를 ‘선경직물 자치운영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렇게 선경직물은 재가동에 돌입했으며 금세 지역을 대표하는 공장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안도감은 잠시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다. 최종건 역시 이때 경남 마산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이대로 전부 끝인 듯했으나, 약 2년 뒤 최종건은 끝내 수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광경이 처참했다. 폭격을 맞은 선경직물 공장에 남은 것은 잿더미뿐이었다. 회사 경영진들도 재개를 포기한 상태로 도무지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실이었다.

이때 최종건은 재주를 발휘한다. 그는 국내 창업가 중 최초의 기계과(경성직업학교) 및 기계기사(3급) 출신 경영가다. 최종건은 헌 직기 20대 정도는 고쳐 쓰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공장을 재가동시켰다. 그 결과 선경직물은 불과 5년 만에 직기 1000대를 보유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최종건은 버려진 회사의 매수대금 130만환을 3년 만에 상환하며 새로운 선경직물을 세웠다. 원래 선경직물은 일제 선만주단의 ‘선(鮮)’과 경도직물의 ‘경(京)’을 합친 이름이었는데, 이를 ‘빛날 선(鮮)’, ‘클 경(京)’으로 바꿨다. 사명 자체를 바꾸지 않은 데 대해 최종건은 “이름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우리는 조선에서 크게 빛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17년 만에 돌아온 최신원의 도전과 매직

조선에서 크게 빛나려던 회사는 이제 세계를 노리는 기업이 됐다. 글로벌 기업답게 이름을 SK네트웍스로 바꾼지는 오래다. 다만 지금의 SK네트웍스는 조금 더 특별하다. 최종건 SK창업회장의 아들인 최신원 회장이 이끌고 있어서다. 2016년 SK네트웍스 회장으로 온 그가 SK에서 대표이사로 복귀한 것은 17년 만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전쟁에 나서며 상당수 대기업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 SK네트웍스는 눈에 띄는 실적을 나타냈다. 올해 1분기 매출 2조8746억 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41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1% 점프했다. 저수익 사업을 차츰 정리하고, 미래 신성장동력에 투자한 최신원 회장의 큰 그림이 비로소 성과를 내가는 모습이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미래 성장사업으로 육성 중인 렌터카와 홈 케어 사업 분야에서 전년 실적을 초과하는 안정적인 성과를 창출해 수익 향상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최신원 매직’이란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그가 추진한 사업재편은 줄곧 효과를 발휘 중이다. 최신원 회장 취임 한 해 전인 2016년 SK네트웍스의 매출 비중은 유통 부문(단말기 등)만 62%에 달했다. 렌터카 등 소비재 부문은 11%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최신원 회장은 미래의 직기와 다름 없는 홈케어(SK매직) 및 렌터카 사업을 확대했다.

SK네트웍스는 4년 만에 완전히 탈바꿈 했다. 작년 SK네트웍스의 홈케어 및 모빌리티 사업의 수익 비중은 전체 사업의 과반을 넘어섰다. SK매직의 경우 연결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3%, 57% 오른 8746억 원, 794억 원을 달성해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SK렌터카 역시 매출 1조7499억 원, 영업이익 1205억 원을 거둬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업계에선 이 같은 성과가 갈수록 선명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듯하다”며 “앞으로는 가전 및 차량 렌탈 사업에서의 성장성에만 집중할 수 있고, 내년이면 이익 가시성 확보라는 하나 남은 숙제를 완수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SK네트웍스에 지난 2016년 회장으로서 첫 출근한 최신원 회장이 아버지인 최종건 SK창업회장 동상에 큰 절을 올리고 있다.
“SK네트웍스를 반석 위에 올릴 것”

약 60년 전인 1961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세평을 듣고 최종건을 찾아갔다. 선경직물이 사세 확장 과정에서 운영자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박정희가 최종건에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최종건은 자금을 요청하는 대신 ‘섬유류 수출방안’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2013년 ‘고(故) 최종건 SK 창업회장 40주기 추모식’에서 “아버님은 새 사업을 만들어내는 데 능력을 갖고 계셨다”고 부각했다. 그리고 지난달 4일 SK네트웍스는 이사회를 열고 주유소 302곳을 현대오일뱅크에 넘겼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 물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강조해온 그다.

그런 만큼 남은 관심사 역시 ‘최신원 매직’의 지속가능성이다. SK네트웍스는 ‘디지털 기술 기반의 차별화된 기업’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최신원 회장은 2016년 SK네트웍스에 첫 출근 하며 로비에 있는 부친 최종건 회장의 동상에 큰절을 올렸다. 그러면서 “내가 오늘 왜 아버지께 먼저 절을 드렸겠나. 이 회사를 다시 반석 위에 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