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의 힘으로 주가 급등

외환위기 때 주식시장이 어떻게 움직였을까? 워낙 심각한 상황이어서 줄곧 하락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1997년 7월 800 부근에 있었던 주가는 외환위기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500대로 떨어졌다. 위기 발생에 따른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 위기가 발생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주가가 350대까지 또 한번 떨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 일어났다. 1998년 주식시장이 시작하면서 곧바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해 한 달 사이에 68%나 상승했다. 뉴욕에서 외채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 위기가 확대될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때마침 외국인도 매수에 나서 주가를 끌어올리는데 힘을 보탰다. 외국인이 석 달간 3조 가까이 주식을 매수했는데 당시 우리나라 시가총액이 100조 안팎이었던 걸 감안하면 외국인 매수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시점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몇몇 우량 기업의 주가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리고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외국인 매수가 뜸해진 3월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해 석 달 만에 277까지 52% 떨어졌다. 외환위기 발생 직후 기록했던 저점보다 더 내려간 건데 이때 투자자들이 가장 많은 손해를 봤다. 이런 움직임을 통해 큰 사건이 발생할 때 시장은 ‘위기 발생에 따른 공포-상황이 정리되면서 오는 안도-실제 지표 확인에 따른 불안’순으로 반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공포와 상황이 수습된 데 따른 안도감 모두 주가가 반영됐다. 경제가 V자 형태로 반등할 거란 기대도 더 이상 새삼스러운 전망이 아니다. 주가는 1~2년후 경제 상황보다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는데 유동성의 역할이 컸다. 금융위기 이후 세 번의 양적 완화 때에 주가가 올랐던 경험이 지금 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주가를 끌어내릴 동력은 반등 이후 경기가 좋지 못할 거란 막연한 두려움 정도다. 아직은 이 힘이 유동성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유동성장세가 본격화되면 주가가 빠르게 움직인다. 마지막 국면에 돈을 최대로 동원해 주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수차례 급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신 주가가 정점을 치고 내려올 때에도 천천히 하락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상승 이상으로 빠르게 하락하면서 끝난다. 지금은 주가가 급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성장주가 약해진 사이에 업종 대표주 상승

삼성전자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지난 석 달간 지지부진했던 흐름을 한풀이라도 하듯 주가가 빠르게 올랐다. 3월 24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가 하락이 마무리될 때 삼성전자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실력 있는 회사를 찾았던 것이다. 그 힘으로 처음 10여일간은 다른 종목과 비슷한 상승을 기록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4월초를 넘으면서 상승이 현저히 둔화돼 4~5월 두 달간 휴식에 들어갔다. 그 기간에 종합주가지수가 1850에서 2100까지 35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으니 삼성전자를 가지고 있는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삼성전자 주가 상승은 세 가지 동력이 역할을 했다. 첫째는 기업실적이다. 1분기에 삼성전자는 시장의 기대보다 많은 6조4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시장 전체로 이익이 17% 감소했고, 수없이 많은 기업들이 예상치를 밑도는 성적을 거두었던 걸 감안하면 양호한 이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하락했다. 이익을 발표할 당시 코로나19로 시장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어서 개별 종목 이익을 감안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온 반응인데, 그때 발생한 이익이 지금 주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주가가 대세하락을 하는 와중에 발생한 이익은 가격에 잘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이 개별 이익보다 시장 전체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인데 상승이 본격화되면 과거에 발생했던 이익이 반영돼 엉뚱한 시점에 주가를 움직이기도 한다. 지금 삼성전자가 그 상태다.

두 번째는 주가 차별화다. 지난 두 달간 성장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움직여 성장주와 업종 대표주 사이에 주가 차이가 심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성장주 상승이 한계에 부딪치자 매수가 삼성전자를 포함한 업종 대표주로 옮아온 것이다.

마지막은 1850에서 매도했거나 조정이 있을 걸로 보고 매수하지 않았던 투자자들이 뒤늦게 삼성전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식을 사려는 시점에 성장주는 주가가 너무 높아 선뜻 매수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가가 낮은 업종 대표주로 몰리게 됐는데 이 부분이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업종 대표주 상승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가지고 있다. 시장이 새로운 주도주를 찾았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기존 주도주인 언택트와 바이오는 주가가 크게 상승해 추가 모멘텀을 찾기 힘든 상태였는데, 새로운 주자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다른 상승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이 생겼다. 업종 대표주 상승의 근원인 키 맞추기가 주가 상승 마지막 국면에 벌어진다는 점은 부정적이다. 조만간 코스피 상승이 끝날 수 있기 때문인데, 최근에 주가가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까지 올라와 주가 반전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 이종우 전 리서치센터장 프로필

이종우 전 리서치센터장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한화증권, 교보증권, HMC증권, IM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 리서치센터장 등을 역임한 한국의 대표적 증권시장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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