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확대 절실…미·중 기업은 매출 대비 3%대 다수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한국 반도체 산업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가 직면한 현실 및 사업의 중요성에 비해 정부 지원이 다소 빈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정부가 비메모리 반도체를 국내 신성장 동력으로 선언했다지만, 경쟁국들의 경우 보다 일찍 더 큰 규모로 국가적 뒷받침에 나서왔다는 게 이런 시각의 바탕이다. 실제 업계에서도 어떤 식의 도움이든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바라는 눈치다.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정부가 시장의 지형변화를 더욱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표=전국경제인연합회)
반도체 수출 전년比↑… 정상화와는 거리감

지난달 한국의 반도체 수출 규모는 약 81억5000만 달러(9조9000억 원)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6.5% 증가한 수준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산업계 전반이 침체기를 겪던 와중에 반도체는 이 같은 상승세가 비교적 두드러졌다.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올해 반도체 수출규모는 4월만 제외하고 일제히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이 같은 흐름은 언뜻 보면 국내 반도체 업계의 ‘정상화’로 읽힌다. 시장에서도 올해 하반기에 다가갈수록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 다수인 게 사실이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2분기를 보내는 현 시점이 반도체 최저점의 통과 구간으로서, 심각한 수준의 2차 팬데믹이 없는 한 4분기쯤 V자 회복이 가능할 것”이란 식의 전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야를 국내 바깥으로 넓혀보면 한국 반도체는 정상화와는 살짝 거리감이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켓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2010년 14%에서 2018년 24%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상승 곡선이 작년에 19%로 꺾였다.

이 기간 중국은 2%에서 5%대로 시장을 넓혔고 미국은 50% 안팎을 줄곧 유지 중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인데, 우리 정부 움직임이 경쟁국들에 비해 굼뜨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며 “기민하게 대응하려면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규모가 미국과 중국 등 경쟁국들에 비해 작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사업장에서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점검 중인 모습.
한국 기업 홀로 고군분투

이런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눈에 띄는 분석보고서를 내놓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 대한 각국 정부의 지원규모 등을 정리한 결과물인데, 한국의 경우 기업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과 다름없는 현실로 나타났다. 상당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정부 지원 규모가 매출액 중 3%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은 0%대에 그친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4년~2018년 21개의 주요 글로벌 반도체기업 중 매출 대비 정부지원금 비중이 가장 높았던 상위 5개 기업 중 3개가 중국 기업이었다. 가장 비율이 높은 SMIC는 매출 대비 6.6%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았고, 화홍(5%), 칭화유니그룹(4%)이 뒤를 이었다. 스위스(ST), 네덜란드(NXP) 국적 기업도 3.1~4.3% 수준의 정부 지원을 받았다.

주목되는 지점은 이미 세계 시장 선두에 있는 미국 또한 주요 반도체기업에 세제혜택과 연구개발(R&D) 등의 명목으로 상당 수준의 지원을 제공 중이란 사실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대비 정부지원금 비중은 마이크론 3.8%, 퀄컴 3%, 인텔 2.2%에 달했다. 그 외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라이벌로 일컬어지는 대만 TSMC 역시 3%를 나타냈다.

한국 기업은 외롭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0.8%, 0.6%에 불과했다. 이처럼 0%대에 그친 기업에는 반도체 패전을 겪은 일본 업체가 많다. 도시바와 르네사스가 각각 0.2%, 0.4% 의 수치를 보였다. 참고로 일본 반도체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0년 20%에서 지난해 10%까지 반토막 난 바 있다.

반도체 산업 성장에 있어 정부 지원은 중요하다. 예컨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반도체 굴기’ 계획을 뒷배로 삼아 세계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은 물론,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공격적인 M&A도 단행할 수 있었다. OECD의 ‘반도체 해외기업 인수 기업 통계’를 보면 중국은 2015년부터 4년 동안 약 30개의 기업이 외국 반도체기업 M&A에 뛰어들었다.

中 기술추격 우려는 아직… 그래도 정부 지원은 확대해야

물론 한국이 당장 중국의 추격을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여전히 양국의 기술력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3~5년 정도 한국이 앞선 상태다. 또 최근 본격화한 미국의 대(對)중국 IT산업 견제 기조는 이 격차를 더욱 확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반도체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가 요구되는 이유는 업계에 발생한 지각변동 현상이 분명해서다. 미중 간 무역갈등이 소위 ‘반도체 신냉전’으로 비화한 만큼, 업계에선 중국의 반도체 굴기 170조원 지원에 대응한 미국의 지원규모도 지속 확대될 것으로 내다본다. 실제 미국 의회는 반도체 연구 등에 대한 지출 1000억 달러(120조원) 확대 법안도 준비 중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중국이 5년 전부터 반도체에 국가재원을 투입해왔고 미국조차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한국 반도체는 지금의 세계적 입지를 갖추기까지 기업 홀로 선방해온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일본 수출규제 등 여러 악재 속에서 우리도 R&D, 세제혜택 등의 뒷받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고질적인 인재부족 현상 등 보다 장기적인 해결책을 바라기도 한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과의)기술력이 아직은 객관적으로 격차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YMTC나 허페이창신 같은 곳에서 현세대 최고 기술인 128단 수직적층 낸드 10나노급 D램 등을 개발했다고 발표해 긴장을 늦추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워낙 오랜 시간 동안 기술이 축적되고 인력도 많은데, 국내는 정부의 미흡한 지원에 더해 고급 전문 인력마저 부족한 데다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도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공대나 소프트웨어 분야의 학생 수가 줄다 보니, 박사 진학하는 이들부터 교수진도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