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의 협업 사례 ‘눈길’…임병연 대표 “세계 7위 화학사 만들 것”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필수지만, 반대로 거리 좁히기를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선 사례가 최근 눈길을 끌었다.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던 롯데케미칼과 한화종합화학이 상생의 길을 걷기로 약속한 것.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동맹’을 재계에선 롯데케미칼의 남다른 승부수로 해석한다.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오전의 적도 오후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모습을 롯데케미칼은 이전부터 보여준 적 있어서다. 이 같은 행보에 롯데케미칼의 ‘비전2030’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간의 여러 공격적 행보에 견줘 시장에서도 청신호를 예상하는 분위기다.
롯데케미칼 울산공장.
“경쟁 관계도 언제든 협력 관계로”

"급격한 산업 환경 변화에서 경쟁 관계도 언제든 협력 관계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사 간의 유연한 생각과 행동이 기업 경쟁력 향상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임병연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한 말이다. 이날 석유화학 업체를 비롯한 산업계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석화 업계에서 짧지 않은 기간 라이벌로 맞서온 롯데케미칼과 한화종합화학이 돌연 손을 맞잡더니 “함께 가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날 임종훈 한화종합화학 대표 역시 "글로벌 경기침체와 코로나19 등으로 석유화학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산업 위기에 대응하고자 기업이 자율적으로 뜻을 모아 협력을 추진한 사례“라면서 ”롯데케미칼과 상생을 통해 양사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생의 꽃은 울산에서 우연히 피어났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의 울산공장이 ‘붙어있다’고 할 만큼 가깝다”며 “양측은 이전부터 서로 크고 작은 거래가 있었는데, 한화종합화학이 최근 운휴에 들어간 와중에 두 회사 관계자들끼리 이런저런 사항들을 논의하다가 업무협약으로 발전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회사 대표의 몫. 임병연 대표는 롯데케미칼의 ‘세계 TOP7’ 진입을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임종훈 대표는 PTA의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가 가능해 협력서약서에 사인했다는 전언이다. 실제 PTA 시장은 중국의 대규모 생산시설 증설로 인해 공급과잉 등 불균형이 빚어진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종합화학은 PTA만 생산하는 회사인 까닭에 이번 협약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라며 “롯데케미칼 역시 믿을 만한 공급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두 기업 공장이 걸어서 이동 가능할 만큼 가까운 까닭에 물류비도 사실상 공짜”라고 덧붙였다.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 고순도 테레프탈산)는 합성섬유 및 페트병(PET)의 중간원료인데 롯데케미칼 역시 이 부문 사업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중국발 과다공급 등의 여파로 1톤당 가격이 2013년 1000달러에서 최근 약 600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불안요소가 적지 않았다. 특히 올해에는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가격반등 요소가 더욱 낮아졌다.

때문에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PTA 생산을 중단하고, 고부가가치 소재인 고순도 이소프탈산(PIA) 생산에 집중할 방침을 세워둔 상태였다. PIA는 페트나 불포화수지 등의 원료로 쓰이는 제품으로, 전 세계에서 7개 업체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이번 한화종합화학과의 협약으로 PTA를 활용한 생산도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이번 협약은 두 회사의 시너지뿐만 아니라 국내 석화산업 전반에도 긍정 요소가 크다. 아직 중국 업체의 생산품들이 국내에 대거 진입하진 못했다. 한화종합화학이 지속적인 원가 개선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온 영향이다. 다만 우리 기술력에 기반한 거래 선순환은 저가를 앞세운 중국 등 해외 제품의 난입을 ‘선제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임병연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대표.
GS·현대오일뱅크도 협력…“세계 top7 목표”

최근 부쩍 롯데케미칼 옆에는 ‘시너지’란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롯데케미칼이 다른 기업과 함께 뜀으로써 시너지 발휘에 힘을 쓴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도 GS에너지 및 현대오일뱅크와 합동사업을 벌이기로 약속하고 현재 순항 중이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7월 GS에너지와 손잡고 8000억 원 규모의 대형 석유화학사업 투자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비스페놀A(BPA, Bisphenol-A) 및 C4유분 제품을 생산하는 합작사 ‘롯데GS화학 주식회사’(가칭)를 설립키로 한 것이다. 롯데케미칼이 51%, GS에너지가 49%의 지분을 소유할 업체로서 2023년 공장이 완공될 전망이다.

당시 임 대표는 “당사는 석유화학산업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품 포트폴리오 최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국내 최고의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장 운영 노하우를 보유한 롯데케미칼의 역량을 바탕으로 정유·석유화학 분야의 새로운 사업의 시너지를 이끌어낼 것"이라 밝혔다.

실제 롯데GS화학에 대한 업계 관심은 남다르다. 시장에서는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이 1조 원, 영업이익은 1000억 원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 두 회사의 합작 사업에 따른 직·간접적인 고용 창출 효과도 77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보여 지역사회의 기대가 크다. 공장은 롯데케미칼 여수 4공장 내 약 10만㎡의 부지에 들어선다.

그보다 두 달 전인 5월에는 현대오일뱅크와 손잡고 HPC(정유 부산물 기반 석유화학 공장) 건설 프로젝트 나서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20만평 용지에 들어설 HPC 공장건설은 약2조7000억 원의 투자비가 투입됐고, 건설기간 인력 포함 약 2만6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전망된다.

임 대표는 현대오일뱅크와의 투자합작 체결 당시, 기업 간 협력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렇게 제시했다. “HPC 공장의 본격적인 건설과 더불어 울산과 여수공장의 생산설비도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원료다변화를 위한 글로벌 생산거점 확대와 더불어 국내투자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 2030년 매출 50조원의 세계 7위 규모의 글로벌 화학사로 성장해 나가겠다.”

임 대표의 이 발언을 골자로 한 이른바 ‘비전2030’의 세부안이 현재 마련 중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비전2030의 뼈대는 기존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포트폴리오 최적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확대”라며 “한화종합화학 등과의 협업은 이런 비전에 잘 맞아 떨어지는 만큼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