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갈등·코로나19 침체.계속되는 규제신설…끙끙앓는 재계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대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가 산다”. 이 공식이 꼭 옳지는 않다. 다만 “대기업은 힘들지만, 나라 경제는 호황이다” 이런 말은 성립하기 어렵다. 한국을 포함한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때문에 국가 주요 산업을 이끄는 기업의 성과는 나라 경제에 있어서 일종의 ‘필요조건’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의 마련 여부는 올해 들어 중요성이 무척 커졌다. 미중 무역갈등 등 가뜩이나 대외여건이 안 좋았던 상황에 코로나19 여파까지 더해져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어째서인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 옥죄기가 한창이다. 사업 추진 동력의 발목을 잡는다고 숱하게 지적돼 온 각종 규제가 되레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신설될 조짐마저 보인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기조가 정부의 경제실책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말로만’ 경제 활력…현실은 ‘빈손’

지난해 8월 국내 산업계에 의미가 큰 일이 있었다. 현대모비스가 중국 한 공장의 생산시설 중 상당부분을 한국으로 옮긴 것. 그런데다 3000억 원을 투자해 울산에 친환경차 핵심부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도 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착공식에 직접 참석해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정부는 국내복귀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1호 유턴기업’으로 지정된 현대모비스는 정말 정부의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을까. 현재 재계의 분위기가 그에 대한 답을 대신해준다. “이럴 거면 왜 왔나”라는 시각이 다수다. 당초 국내 복귀(리쇼어링)에 따른 인센티브로 국고보조금 약 100억 원이 지원될 줄 알았으나 무산됐고, 그 외 각종 세제지원 혜택 역시 누릴 수 없게 돼서다. 현대모비스는 전기사용료 등 일부 비용측면에서만 감면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야 대외적으로는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사례가 재계 사기저하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인건비와 판매관리비 및 여러 세제비용 등 해외에서 누릴 수 있는 이점들을 포기하고 리쇼어링할 유인 요소가 크지 않음을 확인시켜준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모비스는 이번 조치로 1만명 수준의 취업 유발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나, 당장 ‘상시고용인원 20인 이상 추가’ 단서를 만족하지 못한 까닭에 보조금 지원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높은 법인세에 각종 규제…“올 리가 있나”

리쇼어링은 각국 정부가 지속 목표로 삼는 기업정책이다. 한국 역시 2013년부터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 시행에 따라 역점 추진 중이다. 하지만 국내 성과는 미미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4~2018년 리쇼어링한 우리 기업 수는 연평균 10.4개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미국은 연평균 482개의 유턴기업이 있었다. 법인세와 각종 규제 등 양국의 기업 정책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미국은 2010년 비영리기관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를 창설, 이곳은 상무부의 파트너기관으로 선정해 기업 리쇼어링을 적극 촉진했다. 이에 더해 최대 35%였던 법인세는 일괄 21%로 낮췄으며, 해외수익송금세도 35%에서 10%로 대폭 축소했다. 이밖에 상속세 면제 한도 역시 560만 달러에서 1120만 달러로 완화한데다, 신규규제 1건 당 기존 규제 2건을 폐지하는 ‘규제비용총량제’(Two for One)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한국은 기업에 각종 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해당하는 한국 법인세는 유명하다.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2019년 제조업체 기준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27.5%·지방세 포함)은 OECD 평균(21.7%)을 크게 웃도는 게 현실이다. 아울러 미국(21%), 일본(23.2%), 독일(15.8%)보다도 크게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는 토로가 나오는 주요 배경 중 하나다.

더 큰 문제는 ‘흐름’이다. 세계 각국이 여러 경제 여건을 고려해 법인세 인하 추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은 지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법인세율은 36개 회원국 가운데 법인세율 상위 9위 수준이다. 지난 2010년 22위에 불과했던 순위가 10년 사이 13단계 점프한 셈이다. 재계에서는 “큰 거 바라지 않는다. OECD 평균 수준까지만 낮춰달라”는 말이 많다.

물론 언뜻 보면 이 같은 현실에도 한국이 ‘연평균 10.4개’ 리쇼어링 실적은 낸 대목은 일정 부분 효과를 본 듯 비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전체 기업 수 차이 등을 감안하면 이는 성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표를 자세히 뜯어보면 실상은 다르다. 국내로 돌아온 기업의 절대 다수가 실은 중소기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고용창출 등 실질적인 경제효과를 견인하는 대기업이 유턴한 사례는 작년 현대모비스가 유일하다.

자연히 이 같은 흐름은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감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미국 리쇼어링 기업이 창출한 신규 일자리 수가 애플이 2만2200여개, GM이 1만3000여개, 보잉이 7700여 개 등이다. 반면 한국 유턴기업의 신규고용은 5년 간의 누적기준 975명으로, 연평균 약 195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1개 유턴기업 당 일자리 창출 수가 한국 19개, 미국 109개로 유턴기업 당 고용효과부터 6배가량의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유턴기업 성과 저조, 해외투자금액 급증, 외국인직접투자 감소를 모두 관통하는 하나의 이유는 국내 기업 경영환경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 등의 체질 변화를 이뤄야 유턴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국내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에 계류 중인 유턴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와 함께 유턴기업 종합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기대하기 힘든 현실…오히려 ‘새 규제’ 도입 가능성

현실은 기대를 외면하고 있다. 유턴법 개정안 통과는 고사하고 되레 새로운 규제 법안이 통과할 가능성이 생겼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상법 일부법률개정안’이 이제 재계 화두로 떠올랐다. 법안 뼈대는 ▲다중대표소송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사해임요건 마련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전자투표제 도입 등이다. 이 법 통과를 지지하는 이들은 “방만 경영을 예방,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항의 공통점은 기업 대주주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대신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대폭 확대한다는 것이다. ‘공정경제’라는 미명 아래 추진 동력을 얻은 정책인데, 문제는 자칫하다간 기업이 통째로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항간에서는 “대형 로펌이 헷지펀드 분쟁을 떠오를 대목으로 보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무엇보다 180석을 확보한 집권여당이 추진 중인 정책인 까닭에 재계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 ‘0.000002%’ 지분으로 90개 상장사 흔들

기업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다중대표소송’는 회사 임원이 배임과 태만 등을 저질러 기업에 손해를 입힐 경우, 지주사 등 모회사 주주가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다. 겉보기에 기업의 윤리의식 제고 등의 효과가 있을 하지만, 배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까닭에 경영권 침탈 행위가 잇따를 소지가 있다. 적은 지분을 가진 이들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과도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8년 12월 발표한 ‘다중대표소송 도입의 영향’을 보면 그 위험이 작지는 않다. 당시 기준 상장한 지주회사 시가총액 184조원의 0.000002%에 해당하는 금액(350만 원)만으로 90개 상장 지주회사 소속 1188개 전체 계열회사 임원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 기업으로 예로 들면 6만8100원(2018년 11월 13일 종가기준)인 ㈜LG 주식 한 주 만 있으면, 모든 계열회사(65개)의 임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중대표소송을 명문으로 입법화한 나라는 전 세계에 일본밖에 없다. 미국, 영국 등은 판례로 인정한 바 있으나, 완전 모자회사 관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험적인 입법의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어려운 경영상황 속에서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기업에게 또 하나의 족쇄가 될 것”이라며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제도를 도입할 때는 구체 영향 등을 종합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 ‘KT&G와 현대차그룹 피해봤었는데…’

그 외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마찬가지다. 이는 주총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한 주에 1표를 주는 게 아니라 선임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가령 이사 5명을 뽑는다고 가정할 시, 한 주를 보유한 주주는 1표가 아닌 5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다 이를 1명의 후보에게 집중해 투표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이 소위 ‘밀어주는’ 후보를 정해 그를 이사진에 합류시킬 수 있는 구조로서, 단연 제도도입 취지 역시 소액주주 영향력 확대다.

하지만 이 또한 기업 침탈 우려를 낳는다. 결정적인 사례가 있기도 하다. 2006년 ‘기업 사냥꾼’이라 불린 영국계 헤지펀드 칼 아이칸 등이 KT&G 사외이사 1명을 이사회에 넣은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칼 아이칸 등이 보유한 KT&G 지분은 6.59%에 불과했으나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 같이 할 수 있었다. 유사한 일이 더 있다. 2018년 현대차그룹을 집중 공격하던 미국계 벌처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당시 요구했던 게 이 ‘집중투표제’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경영진 의사결정 악의적 제동…정보유출도’

민주당이 밀고 있는 상법개정안의 골자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역시 대주주의 의사결정권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도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감사위원을 아예 분리해 뽑을 경우, 경영진 의사결정에 악의적으로 제동을 걸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각종 정보가 유출될 소지마저 있다. 감사위원은 회사의 거의 모든 사항들을 열람할 권한이 있다.

보완책도 마련해야…‘차등의결권’ 및 ‘포인즌필’ 대두

상법개정안이 만약 통과할 경우를 전제한다면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등의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대표적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꼽힌다. 경영진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를 차등 적용해 영향력을 보다 확대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도 올해 말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적용될 예정인데, 미국과 일본 및 유럽 등지에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제도를 상당수 도입한 상태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M&A 시도 때 공격자 외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을 헐값에 대량 발행하는 조치다. 주가가 대폭 하락할 여지가 있는 만큼 ‘독약처방’으로 꼽힌다. 다만 2006년 KT&G 사건 등을 겪은 뒤 도입 논의가 활발히 진행된 적이 있다. 당장 공정위는 “국내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M&A 위협이 크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이런 대안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재계에서는 만에 하나의 일이라도 여파가 크므로 도입이 꼭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어떤 형태든 대주주 견제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재계의 분위기다. 한국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대주주 의결권 제한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제도”라며 “이는 적대적 M&A 등 경영권 위협세력이 연합하는 역효과·역차별이 나타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부 주주 또는 단체 등 특정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는 오·남용가능성을 제한할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