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차남 조현범 사장을 사실상 후계자로 지목한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의 속내는 다소 씁쓸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장남보다 경영 역량이 낫다는 판단에 이 같이 결정했다는 게 업계 전언인데, 실상 조현범 사장도 그렇다 할 성과를 보인 적은 없어서다. 특히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도덕성마저 치명상을 입은 조현범 사장인 까닭에, 재계에선 이번 지분승계의 배경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조양래 회장은 지난달 26일 자신이 보유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전량(23.59%)을 조현범 사장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형태로 넘겼다. 이로써 조현범 사장은 42.9%의 지분을 보유하게 돼 그룹사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의 형인 조현식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 19.32%의 두 배 넘는 수준이다. 이 대목에서는 향후 ‘형제의 난’이 벌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조양래 회장이 장남 대신 차남에 지분을 넘긴 이유는 경영능력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개인 회사 ‘아노텐금산’(타이어 재활용기업)을 10년 동안 이끌면서도 자본잠식 상태를 못 벗어났다. 2016년에는 사재를 털어 100억 원 넘는 유상증자를 단행했음에도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했다. 장남이 이렇게 회사를 이끈 탓에 차남이 후계자로 지목됐다는 게 이번 지분 승계를 바라보는 업계 분석이다.

하지만 조현범 사장이 나름의 역량을 발휘한 사례 역시 눈에 띄지 않는 탓에 관련 시선이 긍정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그가 최근까지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의 실적만 보더라도 줄곧 내림세다. 2016년 7934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7026억 원으로 하락했고, 작년에는 5439억 원까지 내려앉았다. 형과 함께 이끈 그룹사 역시 지난해 170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전년 대비 400억 원 이상 실적을 내렸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경영실패’를 낳은 장남보다 ‘아직은 성공 못한’ 차남이 유력 후계자로 부상한 셈이다. 물론 구체 배경은 조현범 사장의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앞서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4월 실형을 선고받은 조현범 사장은 지난달 ‘일신상의 이유’로 경영에서 손을 뗀 바 있다. 업계에서는 “검찰이 제기한 항소심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많은데, 지분승계를 계기로 언제 복귀할지가 남은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조현범 사장의 최대주주 등극에 차후 형제의 난 발발 가능성도 예상한다. 조양래 회장이 단숨에 블록딜을 실행한 게 ‘서열정리’ 일환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긴 하나, 조현식 회장이 경영에 워낙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온 바 있어서다. 특히 두 누나인 장녀 조희경(0.83%) 씨와 차녀 조희원(10.82%)씨 지분이 조현식 회장에 더해질 경우 30.97%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당장 한국타이어측은 세간에 떠도는 해석들을 경계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조양래 회장 지분의 이전사항 등 공시내용 외 전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또 “형제경영이 지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부연했다. 공시에 따르면 조양래 회장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을 차남에 옮김으로써 보유 지분율이 0%로 낮아졌다. 이로써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최대주주는 조양래 외 12명에서 조현범 외 11명으로 변경됐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