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지수가 금융위기 때보다 낮지만 팬데믹은 전세계 중앙은행의 노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어

사스(SARS)의 추억
2003년 지구촌 전체를 뒤흔들었던 사스(SARS)는 약 10개월 동안 생명위협에 대한 공포를 주었지만, 증시의 측면에서는 그 이후 약 5년간 유동성 장세를 이끌었다는 특색을 보인다. 사스에 가장 시달렸던 홍콩의 항셍지수(Hangseng Index)를 보면 8,000선까지 급락했다가, 약 4년 반 만에 3만선을 상향 돌파하는 등 공포의 시기가 장기 바닥 다지기의 원동력이 된 것을 보인다. 이 같은 반등의 가장 큰 기여는 유행병(pandemic)에 대한 당시 전세계적 공조에 따른 조기진압이었고, 또한 긴급 투입된 재정 및 통화정책이 가져온 초과 유동성이 추진력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금번 코로나19 사태 또한 증시는 전대미문의 폭락과 급등장세를 보이고 있는 바, 시점과 속도를 달리할 뿐 양태가 유사하다. 오히려 코로나19를 전후한 상승폭의 가파르기는 한국의 코스피(KOSPI)를 보면 더 급격함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급반등장은 여러 가지 작전명이 달려있는 정부주도 유동성 공급정책이 그 주된 추동력이 되었다. 2008년부터 애용해 왔던 QE(양적완화)를 위시로, 21세기판 뉴딜, NIRP(마이너스 금리정책), YCC(수익률곡선 통제), MCCS(다자간 통화스왑) 등 정책이 암호처럼 불리며 때로는 대중의 시각으로부터 은폐와 엄폐를 하고, 때로는 공개적 구두개입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하는 등 진화한 수단으로 시장개입을 해 온 것이다. 정확한 수치는 국가별 비밀에 속하겠으나, 현재로서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여 투하된 통화 및 비통화 재정정책의 총량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규모에 최소 3배에서 최대 6배로 추정된다. 이는 사스(SARS) 당시 단방약 처방수준의 재정정책의 최소 10배 규모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같은 ‘비이성적 과잉(irrational exuberance)’의 국면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적 비관주의자 누리엘 루비니(Nuriel Roubini) 교수가 있다. 루비니 교수는 최근, 마치 화초에 비료를 과잉 공급하면 잡초가 더 자라듯 현재의 강세장은 사상누각으로, 금년부터 10년간 전대미문의 불황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다. 작금의 상상불허 과잉 유동성이 하루아침에 축소되면 전세계 시장은 그에 따른 금단현상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니, 앞으로 약 10년간 작은 규모의 불황으로 잘라서 견뎌나가는 정책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논리이다.


글로벌 일국양제(一國兩制) 갈등
시국이 어려운 땐 ‘한 지붕 두 가족’은 더욱 어렵다. 여러 면에서 홍콩과 미국 미니애폴리스(Miniapolis)와 한반도에는 일국양제 갈등의 닮은꼴이 존재한다. 홍콩 민중의 보안법에 대한 저항은, 본토가 50년 동안 유지하겠다는 일국양제를 그대로 지켜달라는 외침이고, 미니애폴리스로 상징되는 미국의 흑백갈등은 법 집행이 일국양제처럼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폐지해달라는 비명이다. 한편, 한반도는 열강들의 남북한 갈라치기가 빈번하다. 존 볼턴(John Bolton) 회고록에서 일본은 볼턴과 공조하여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파국으로 몰아 남북한 일국양제를 지켜낸 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홍콩 르와르의 대표작 중경삼림(重慶森林)의 무대인 미드레벨 에스켈레이터마저 최루탄에 뒤덮이고, 쇠파이프 시위대와 전투경찰의 등장은 갈등을 넘어선 시가전 양상을 보인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팻말을 들고 수개월째 시위를 이어가는 미국 주요도시의 모습 역시 미니 전쟁의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하노이-싱가포르-판문점으로 이어지던 일련의 남-북-미의 무대에 세계 각국 최고의 정보자산들이 이합집산을 통해 펼쳤던 것도 일반인에게는 낯선 가공할 외교전이다.

갈등과 대응의 색깔은 상황별, 국가별로 다르다. 홍콩인들은 본토인들에 비해 우월의식이 지극히 강하다. 본토인들이 들고 들어오는 돈은 좋아하지만 하류취급하기 일상이다. 이는 본토 공산당의 ‘일국양제가 홍콩에 오히려 치외법권적 특별대우를 부여한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이다. 공산당은 이 참에 홍콩에 부여된 말도 안 되는 특권을 바로 잡는 것이 곧 정의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홍콩상황이 쉽게 종결되지 못할 이유이다.

흑백갈등이 미국을 둘로 갈라놓을 듯 한데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는 여전히 40%를 넘나든다. 영혼 없는 통계는 누가 주류인지를 조용히 드러내는 법이다. 무고한 흑인신자 9명이 살해되었던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이매뉴얼 아프리칸 교회 사건 당시,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진 오바마 대통령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이번에 없다. 다만,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촉발된 1992년의 LA폭동 같은 난장판도 없다. 흑백문제 본질보다는 공동체의 파괴와 같은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막는 것이 트럼프의 주된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흑백문제가 해결되기 난망인 이유다. 한반도의 문제해결 시점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정치적 휘발성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피할 수 없는 상수이다. 금융시장은 통상 정치적 갈등에 맷집이 상당하나, 금번의 삼각 파고는 높이와 깊이가 정례적이지 않다. 미국은 특별지위 박탈을 위협하며 홍콩을 지렛대로 시진핑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고, 한반도 데탕트의 가장 큰 암초로 드러난 일본은 남북 갈라치기의 패를 포기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흑백문제 거리두기’ 전략을 통해 하층백인(White Trash)의 표를 구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와 희망의 공존
이렇듯 날개 접은 철새가 된 블랙스완(Black Swan)이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금융시장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반면에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의 난항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흐르고 있다. 이 같은 거대한 인지의 괴리(decoupling)에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VIX 가 시사점을 준다.

그래프를 보면, 한국경제에 가장 큰 공포였던 IMF 사태(1997~1998년) 당시의 공포지수는 48에 불과했다. 한국만이 IMF 신탁통치에 빠져든 공포와 트라우마를 겪었을 뿐, 세계금융시장은 같은 수위의 공포를 전혀 느끼고 있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오히려 아시아가 상대적 평온함을 유지했다는 글로벌 금융공황(2008년)에 VIX는 역사상 최고치인 81을 기록하였다. 리만 브라더스의 부도, 베어스턴즈의 해체 등 미국발 신용위기는 세계를 진정한 공포로 몰아갔음을 보여준다. 작금의 1차 코로나19 사태는 지난 3월에 최고조를 기록한 바 당시 VIX는 66을 찍었다.

반면, 2020년 7월초 기준, VIX는 28에 불과하다. 이는 20년전 닷컴버블 붕괴 시 기록한 43~48 수준의 VIX 보다도 현저히 낮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의 전운이 있었던 2012년 말에 기록한 26 전후 수준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의 오늘은 당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육박하는 수준의 공포에서 벗어나 2012~2013년 우크라이나 사태의 국지전 발발 위기 수준 정도로 긴장도가 줄어들었음을 나타낸다.

다만, VIX의 분명한 한계는 선행하지 않고 후행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VIX가 과거의 추이를 보며 작금의 좌표를 반추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결코 미래를 비추어 주는 수정구슬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미국의 코로나19 환자 예측치가 최대 2백만이라던 것이 이미 3백만명에 육박했고, 사망자가 13만명을 넘었음(worldometer 참조)은 2차 코로나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이 같은 준위기 국면은 공포지수(VIX)를 언제든 위아래로 크게 스윙시킬 수 있다. 경제가 어렵사리 코로나 동면에서 깨어날 때, 바보 같은 리더십 하에 바이러스의 준동은 소리 없이 멀리 퍼져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중앙은행과 재정당국의 올인 배팅에 마침표를 찍고 이 같은 극한의 노력마저 한 줌의 신기루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 팬데믹(Pandemic)이다.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이 원하는 것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천냥 빚을 갚은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의 재출현이다. 이와 더불어 캡틴 코리아(Captain Korea), 캡틴 차이나(Captain China) 및 캡틴 유럽(Captain Europe) 등등이 동 시대에 탄생하기를 희구한다. 21세기의 20%가 지났고, 2020년도 하프타임에 접어든 지금, 부디 난세의 영웅이 나서, 제 2차 코로나 위기는 한낱 기우에 불과하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kong) 최고 투자책임자(CIO)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리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은행,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 외환, 파생상품 및 M&A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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