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회동…‘전기차 빅텐트’ 가시화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세계 미래차 시장을 선도할 국내 재계의 ‘거목’들이 ‘원 팀’(one team)을 결성하게 될지 시선이 집중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난 데 이어,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회동도 끝마치면서다. 이들이 머리를 맞댄 목표는 단연 전기완성차와 전기차 배터리의 ‘세계 일류’ 기술력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최태원 회장과의 만남에서 이를 “인류를 위한 혁신과 진보”로 규정했다. 재계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자동차 산업계 혁신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4각 동맹’이 실제 기업의 진보가 아닌 인류의 진보를 이룰 단초로 작용할 수 있을까. 세간의 관심이 남다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7일 회동을 갖고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 및 미래 신기술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 했다.
“인류를 위한 혁신과 진보”

“인류를 위한 혁신과 진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 7일 최태원 회장과 회동한 이후 밝힌 말이라고 한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만난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소위 ‘전기차 배터리 동맹’으로 불리는 그간의 행보가 기업발전에 그치지 않고, 인류 진보의 밀알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 5월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한 때부터 일각에선 국내 기업끼리의 전기차 ‘동맹’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이어 6월 충북 청주시에 소재한 LG화학 오창공장에 방문했을 때에는 ‘전기차 빅텐트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현대차측은 최근 이례적으로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K전기차 동맹’ 실현 가능성을 가시화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만남은 충남 서산에 있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생산 공장에서 이뤄졌다. 자리에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 김걸 기획조정실 사장, 서보신 상품담당 사장, 박정국 현대모비스 사장 등이 함께 했다.

이에 SK측에서는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장동현 SK㈜ 사장,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대표 등 그룹의 핵심 경영진들이 총출동해 현대차 경영진들을 맞이했다. 두 회사의 임원진들은 “미래 혁신기술 분야 리더십 확보”를 공통의 목표로 삼고 전기차 배터리 관련 신기술들을 두루 살폈다고 한다.

SK이노베이션이 주력 개발 중인 ▲고에너지밀도, 급속충전, 리튬-메탈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과 ▲전력반도체와 경량 신소재, 배터리 대여·교환 등 서비스 플랫폼(BaaS) 등 미래 신기술에 시선이 모아졌다고 알려졌다. 양측은 해당 신기술의 개발 방향성을 논의한 한편 협력을 약속했다는 전언이다.

눈에 띄는 점은 SK 주유소와 충전소 공간을 활용해 전기·수소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안이 도출됐다는 대목이다. 전국의 SK주유소가 전기차 충전소로 탈바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실화한다면 당장 미래차 시장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 중인 충전소 등 인프라 부족 현상이 기업 자체 노력으로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로 현대차와 SK의 전기차 협업 사례를 고려하면 이런 구상의 실현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일찍이 현대기아차는 2021년 양산 예정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1차 배터리 공급사로 SK이노베이션을 선정했다. 해당 플랫폼 기반의 전기차에 탑재될 SK이노베이션 제품은 성능이 대폭 향상된 차세대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로 전해진다.

이날 정의선 수석부회장 등은 SK이노베이션 서산 공장 내 배터리 셀의 조립 라인도 둘러봤다. 전기차 ‘니로’에 공급하는 배터리의 생산라인으로서, 지난 2012년 준공했는데 현재는 연 4.7GWh 규모의 배터리 공급이 가능한 생산규모를 갖춘 공장이다. 참고로 현대차는 자체 생산 중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와 쏘울 EV 등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적용하고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미래 배터리, 신기술 개발 방향성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며 “현대차그룹은 인간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열고 인류를 위한 혁신과 진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할 것이며,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과 협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세계 전기차 시장 선도할까…“테슬라도 잡자”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한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 3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어섰다. LG화학이 22.9%, 삼성SDI가 5.1%, SK이노베이션이 2.8%다. 단연 최상의 성능을 확보한 데 따른 결과다. 현대차가 이들과 협력하면 전기차에 최적화된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기업들도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가능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현대차와 SK, 삼성SDI, LG화학 등의 4각 동맹은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한국으로 옮겨올 수 있다는 기대를 낳는다. 배터리 생산 기업들의 경쟁력이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완성차를 만드는 현대기아차 또한 전기차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지속 내고 있어서다.

2011년 첫 순수 전기차를 선보인 현대기아차는 지난달까지 국내외 누적 28만여대 판매를 기록했다. 글로벌 전기차 전문 매체인 ‘EV세일즈’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올해 1분기 순수전기차 판매량은 총 2만4116대로 집계됐다. 이는 테슬라(8만8400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3만9355대), 폭스바겐그룹(3만3846대)의 뒤를 잇는 세계 4위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가 한창인 와중에 현대차가 이와 같은 미래전략을 본격화한 대목을 묘수로 바라본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이후 시장의 우려를 대비하는 현대차는 전기차 양산과 계획이 타이트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 기업가치의 구조적 증가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한편 현대기아차는 오는 2025년까지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3종을 순수 전기차로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측은 “2025년 전기차 56만대를 판매해 수소전기차 포함 세계 3위권 업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기아차는 전기차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2026년 전기차 50만대(중국 제외)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