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앱티브사와 합작법인 ‘모셔널’ 론칭…SAE 기준 4단계 기술개발 추진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흔히 현대차를 떠올리면 ‘수소차’를 떠올리지만, 최근에 실제 성과가 빛을 발한 분야는 순수전기차다. 이른바 ‘K-전기차 배터리 동맹’에 대한 기대감이 커가는 배경이기도 한데, 정작 현대차는 특정 한 분야에 주력하지 않는 모습이다. ‘새로운 모빌리티’를 슬로건으로 한 현대차인 만큼 전방위 혁신이 지속 단행 중이다.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다. 수소차와 전기차 등 미래차 업계에서 개척 속도가 가장 느린 편에 속한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당기고자 본격 시도에 나섰다.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 설립이 그 첫발이다.
2019년 고속도로에 등장한 현대차 자율주행 대형트럭.
SF영화 보는 듯…혼자 달린 대형트럭

지난해 8월 현대차 로고가 박힌 40톤급 트럭이 의왕~인천 간 약 40km 구간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운전석에는 한 남성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의 양손은 핸들에 위치한 대신 팔짱을 낀 채 머물렀다. 화물 운송용 대형 트레일러가 혼자 주행한 것이다. 이 똑똑한 화물차는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 시연 당시 등장한 자율주행 트럭 ‘엑시언트’다.

그 시기 현대차는 “자율주행 기술은 승용차에만 국한된 기술이 아니다”라며 이 같이 나섰다. 상당한 자신감을 보인 셈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엑시언트에는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3단계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됐다. 이는 대부분의 주행을 시스템이 책임지고 특정 위험시에만 운전자 개입이 필요한 수준이다. 대형차의 자율주행은 엑시언트가 국내 최초다.

대형트럭 자율주행은 보다 높은 기술력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트레일러가 결착된 대형트럭의 경우 일반 준중형급 승용차 대비 전장은 약 3.5배, 전폭은 1.4배 크고, 차체 중량은 9.2배가량 무거워 더욱 고려할 사항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차량의 크기가 커지면 별도의 면허나 높은 운전숙련도를 요구하는 것처럼 자율주행기술도 더욱 고도화되고 정밀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당시 대형트럭 자율주행 시연을 위해 기존 자율주행 기술과 차별화된 센싱 기술을 비롯해 정밀지도, 판단, 제어기술 등을 대거 적용했다고 알려졌다. 현대모비스가 신규 개발한 조향 제어 시스템(MAHS)까지 탑재했다. 전자제어 장치가 내린 판단에 따라 자율주행 대형트럭의 조향 각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모습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게 그 덕분이다.

이어 그해 11월에는 자율주행 대형트럭들이 일정하게 간격을 맞춰 일렬로 달리는 모습도 선보였다. 이른바 자율주행 기반 ‘군집주행’에 나선 것으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군집주행 진영은 물론 다른 차량이 끼어들거나 빠져나가는 경우 대응, 군집주행 자동차의 동시 긴급제동 가능 여부 및 군집주행 자동차 간 통신 기술 등을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차가 자율주행 기술을 굳이 대형트럭으로 선보인 배경이다. 이는 화물차 교통사고의 치명성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화물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비율은 전체 교통사고(1.9%)보다 약 2배 높은 3.7%에 달했다. 결국 화물차 자율주행에 따른 사고 감소는 현대차가 줄곧 말하는 ‘인류를 향한 진보’와도 일면 맞닿은 것이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Aptiv)의 자율주행 합작법인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신규 사명으로 ‘모셔널’을 공식 발표했다. 모셔널은 현대차그룹과의 파트너십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모셔널 브랜드를 래핑한 제네시스 G90를 공개했다.
자율주행을 위한 회사 ‘모셔널’

이런 배경과 함께 현대차는 자율주행 기술 투자에 탄력을 더하기로 했다. 최근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을 공식 론칭한 게 대표사례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해 9월 세계 3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개발업체 중 한 곳인 앱티브와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에 출범한 모셔널은 앱티브와 합작해 만든 회사다.

두 회사는 “사람들의 이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야심찬 출발을 알렸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반세기 이상 현대차는 인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모셔널은 차세대 혁신 영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최첨단 자동차 기술의 역사를 써온 현대차는 이러한 유산을 모셔널과 함께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모셔널에는 자율주행 기술 개척자들이 대거 포진했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 등에 참가한 경험을 갖췄고, 자율주행 기술 태동기부터 활동한 스타트업 ‘누토노미’와 ‘오토마티카’를 설립한 주역들이라고 한다.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란, 미국 첨단 군사기술 개발 연구소 다르파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한 자율주행기술 경진대회다.

모셔널을 공식 론칭한 일 자체가 현대차의 자신감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많다. 사실 모셔널 설립은 지난 3월 이미 이뤄졌다고 전해졌다. 다만 공식 발표가 늦춰진 것인데, 이를 두고 칼 이아그넴마 모셔널 사장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이동수단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정부와 소비자는 더 많은 신기술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는 지속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로보택시 서비스 상용화 시도에서 자율주행 기술의 비약적 도약을 실현해 왔다는 평가다. 라스베이거스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서비스는 10만회 이상 고객에게 제공됐으며, 탑승자의 98%가 서비스 만족도를 5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모셔널은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레벨4(미국자동차공학회 SAE 기준)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를 추진한다”며 “올해부터 완전자율주행 시스템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으로, 2022년에는 로보택시 및 모빌리티 사업자에게 자율주행 시스템과 지원 기술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셔널을 기반으로 한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 연구 등은 국내에서도 이뤄질 전망이다.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모셔널은 피츠버그, 라스베이거스, 산타모니카, 싱가포르에 거점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에도 거점을 추가로 개소했다. 현대차측은 “서울 거점은 또 하나의 핵심 기술 허브이자 자율주행기술 테스트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