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빚잔치…코로나 장기화로 재정지출 폭증, 지난달 부채비율 GDP 대비 128%

상반기 세계 경제는 코로나19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올해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선진국 부채는 2차 세계대전 직후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주요 선진국 부채도 동반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직후 선진국 부채가 세계 GDP(국내총생산) 대비 124% 수준을 기록했는데, 지난달 기준 선진국 부채는 세계 GDP 대비 128%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심각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39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IMF는 내년에도 이 비율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선진국 ‘돈 풀기 정책’ 내년에도 지속

일단 급격한 코로나19 확산으로 각 경제 주체들의 대면활동이 감소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요 위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이 수요가 가장 크게 위축된 시기로 판단되는데, 6월부터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제는 선진국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은 코로나19 경기부양책 때문에 2020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 연방적자를 2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많은 3조7000억 달러로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코로나19로 거의 전쟁에 준하는, 오히려 더 큰 경기 부양책이 쏟아지고 있는 것.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강력한 ‘돈 풀기 정책’은 올해 하반기는 물론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하반기에도 글로벌 확산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 상반기에 유례없던 강도로 취해졌던 각국 경기부양 및 통화완화 정책이 유지돼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금융자산 시장 과열 위험을 경계하면서도 통화정책의 전반적인 기조를 초완화 정책의 지속에 두는 모습이다. 특히 총수요와 고용이 상당한 정도로 회복되고 물가상승률이 안정목표인 전년 대비 2% 수준을 넘어서더라도 곧바로 긴축으로 전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강한 2차 확산이 현실화되거나 현재 개발 중인 치료제 및 백신들이 무위로 돌아갈 경우 금융시장은 다시 한 번 지난 상반기와 같은 폭락사태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자산별 차별화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재정을 비롯한 국가별 대응능력 또는 산업별 수요 강도나 기업별 경쟁력 격차에 따라 주식, 채권 등의 가격이 차별화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진국 부채 폭증, ‘뉴노멀’ 되나

현재 선진국 부채가 2차 세계대전 직후보다 심각하다고 하는 것은 단지 부채비율 때문만은 아니다. 선진국 부채가 줄어드는 속도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약 10년 후 선진국 부채 비율은 50% 미만으로 대폭 떨어졌지만 현재 상황은 선진국의 폭증한 부채가 ‘뉴노멀(New Normal,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에는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일본 등이 연 4~8% 수준으로 성장하는 등 높은 경제 성장이 가능한 시기였지만 최근 주요 선진국 연평균 GDP 증가율은 1~2% 수준에 불과하다. 전쟁 이후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던 시기와 달리 최근 선진국에서는 저출산으로 노동력이 감소해 고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성장동력이 전무한 상태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전쟁과 달리 끝나는 시점이 명확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각국 경기부양책이 언제 중단 가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나마 초저금리 시대라 이자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 각국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 부채비율 폭증 문제는 국내에서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국가 예산안과 결산을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특위)가 정부에 구속력 있는 국가채무 관리목표를 설정하라고 주문한 것.

예결특위는 “정부가 국가채무 관리목표의 구속력 확보를 위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재정운용계획(5년 주기)상 국가채무 관리목표는 선언적 의미의 목표치로 정부는 그동안 목표치를 예외 없이 후퇴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OECD 단순평균치나 IMF 통계를 살펴보면 정부 부채 증가속도는 한국이 OECD 평균보다 가파르다. 예결특위에 따르면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40%가 적정 국가채무비율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에 한국이 코로나19 때문에 무작정 선진국 부양대책을 따라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정부가 기업도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 통화금융정책을 내놓고 실효금리가 낮으니 양적 완화적인 부분까지 선제적으로 한 것은 잘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전체적으로 재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말 해야 할 곳에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선진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그래픽 주간한국 편집팀)
한국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50% 육박 예상

이미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로 선진국 명목 GDP 성장이 침체되고 재정적자가 크게 확대되면서 부채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현재 상황이 당시 무디스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14개 선진국 GDP 대비 부채 비율이 평균 약 19%P 상승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초래한 충격의 극심함과 방대함을 감안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할 때 부채 부담은 더욱 즉각적이고 광범위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채가 가장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로는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영국, 미국이 꼽혔다. 이 중에서도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미국 등은 거의 전적으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정책으로 인해 부채가 증가하고 유럽과 일본은 재정정책과 함께 명목 GDP 성장 둔화도 부채 증가에 일조해 등급 강등에 더욱 취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디스는 명목 GDP 성장률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다면 2021~2022년 이들 14개 선진국 부채는 높으면서도 안정되겠지만 GDP 대비 부채비율을 다시 하향 추세로 반전시키지 못하는 국가는 향후 경제 충격에 취약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IMF ‘재정 점검(Fiscal Monitor)’ 통계를 보면 각국 GDP 대비 일반정부부채(D2,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10%P 이상 급증하지만 내년에는 다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호주, 캐나다, 영국, 한국 등을 포함해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36개국 평균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105.2%에서 올해 122.4%로 17.2%P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IMF가 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국가채무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에 재정 상황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국들과 달리 한국은 큰 폭으로 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세입 확충 여건이 내년에도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가 확대 재정정책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 급증, ‘재도약 날개’ 꺾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제 주체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당연히 각국 기업 부채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발표된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선진국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10%P 증가해 95%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2009년 금융위기 때의 정점을 넘는 수준이다.

애덤 슬레이터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차입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부채 비율 급증은 투자와 생산성을 저해하는 잠재적인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선진국과 신흥국 사례에서 높은 기업부채 수준은 성장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충돌이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며 “이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물론 미국이 강력한 대중 무역 제재를 취할 경우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여러 국가들도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특히 중국산 수출품 내 부가가치 부품을 생산하는 한국과 대만 등의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로 선진국 명목 GDP 성장이 침체되고 재정적자가 크게 확대되면서 기업부채 부담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G2 무역충돌과 세계 주요국의 보호무역 기조로 인해 각국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각국 인프라 투자 확대 계획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다만 이런 경기부양책이 하반기보다는 내년 경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인프라 투자 확대를 통해 경기를 빠르게 반등시키려고 하지만 유럽, 미국 등 선진국들은 당장 소비회복에 집중하고 있어 인프라 확대는 연말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내년 세계 경제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백신 개발과 관련한 긍정적인 결과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불확실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연말에 백신 공급이 시작되더라도 통상 5년 이상 걸리는 백신 개발이 1년 미만의 짧은 기간에 이뤄지는 데 따른 부작용 등을 고려할 때 내년에도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영향이 장기적으로 고착될 우려가 있다는 것.

LG경제연구원은 “비대면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IT 기술발전이 가속되는 효과가 기대되지만 이는 노동에 대한 수요를 떨어뜨려 고용을 위축시키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 온 수요부진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극심해지는 미국과 중국 무역충돌 확산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번지는 보호무역주의로 세계 경제 예측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상태다. 여기에 각국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부채비율 상승이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까지 ‘빚잔치’를 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단시일 내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제 위기가 극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호세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무작정 재정 상태만 걱정할 수는 없겠지만 정부부채 급증은 분명히 조만간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재도약을 시도할 때 우리의 날개를 무겁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