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대표소송제.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기업의욕 꺾는 법안들 국무회의 통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정부는 코로나19발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줄곧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내놓는 정책들은 메시지와 따로 놀고 있다. 기업이 지속 부담감을 토로하며 반대해 온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국회에 발의된 여러 경제 법안 가운데서도 기업의 경영 위축을 야기할 수단이 많아 재계는 시름을 앓고 있다. 모든 정책을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만 설계해도 안 되겠지만, 악성 해외자본에 의한 경영권 침탈 등 기업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정책이 속전속결로 추진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산업계 고심 무거웠지만…국무회의 ‘가볍게’ 통과

“최근 코로나 재확산으로 경제 반등의 속도가 지연되고, 추가적인 경제적 어려움이 우려되고 있다. 방역과 경제는 반드시 함께 잡아야 하는 두 마리 토끼다. 방역과 경제 모두에서 범정부적 비상 대응이 요구된다. 필요하다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를 개최할 수도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이 같이 밝혔다. 코로나19 재확산이 가속화함에 따라 방역과 경제에 위기가 닥친 가운데, 둘 중 무엇도 포기해선 안 될 가치임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다. 특히 경제의 경우 리스크 관리를 잘못할 시, 두고두고 여파를 낳을 수 있는 만큼 장기적 안목을 바탕을 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과 실제 결정에는 괴리가 발생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제·개정안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들 정책은 일찍이 산업계에서 반대 뜻을 여러 차례 밝혀 온 사항들이다. 한국 경제 견인차 격인 기업들을 위축시킬 소지가 다분해서다.

먼저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뼈대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에 대한 감시망을 넓힌 게 핵심이다. 이 정책대로라면 기업의 가격 및 입찰 담합과 공급제한 등을 앞으로는 검찰이 직접 기소할 수 있게 된다. 또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도 2배로 높아진다. 현행법은 공정위의 고발 없이는 검찰이 기소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산업계는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토로한다. 기업 경영이 신상필벌 원칙도 지닌 만큼 반칙과 특권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지만, 기업에 대한 조사 기관을 확대한 조치는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어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잘못한 일은 벌을 받아야겠지만, 조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경쟁사의 고소고발 남발 등의 문제가 따를 수 있다”고 걱정했다.

우려가 현실로…경제위기인데 투자의욕 위축

다만 기업들이 더 걱정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개정안이다. 정부는 이 법에 대해 “방만 경영을 예방, 기업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예단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국내 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을 낳는다”고 우려한다.

구체적으로 ‘다중대표소송’는 회사 임원이 배임과 태만 등을 저질러 기업에 손해를 입힐 경우, 지주사 등 모회사 주주가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다. 이로써 기업의 윤리의식 제고 등의 효과가 예상된다는 게 정부 시각이지만, 현실에서는 해외투기자본의 이사회 진출 및 그들의 부당이익 수취를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2018년 12월 발표한 ‘다중대표소송 도입의 영향’을 보면 위험이 크다. 연구에 따르면 당시 기준 상장한 지주회사 시가총액은 184조원이었는데, 이 중 0.000002%에 해당하는 금액(350만 원)만으로 90개 상장 지주회사 소속 1188개 전체 계열회사 임원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나타났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도입도 결이 비슷하다. 이 법은 감사위원을 이사회가 아닌 주총에서 선임하도록 한다. 주주들의 견제 권한을 높인 셈인데, 반대로 보면 경영진 의사결정에 악의적으로 제동을 걸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특히 외부에서 선발한 감사위원으로 하여금 회사의 각종 정보가 유출될 소지마저 있다.

재계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제출된 경제계 공동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통과돼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규제 강화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걱정…규제 법안 더 있다

정부는 이번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키며 당초 재계 반대가 컸던 집중투표제는 제외했다. 이는 주총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시 한 주에 1표를 주는 게 아니라, 선임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소액주주들이 한 후보를 정해 그를 이사진에 합류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우려가 따랐던 조치로서 특히 우려가 컸다.

때문에 언뜻 보면 기업들이 최악은 면한 듯 비치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치 못하다. 이밖에도 대기 중인 기업 규제 법안이 많다. 당장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사항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일부개정 법률안’이다. 1개월 이상 근로한 노동자에도 퇴직급여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이다.

취약 노동계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게 해당 법안의 대의명분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헌법까지 거론하며 이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헌법재판소는 유사 사례에 대한 판시에서 ▲1년 미만 근로자를 퇴직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한 것 자체를 평등권 침해로 볼 수 없으며 ▲그들에 대한 퇴직급여 의무 지급은 지나치게 과중한 부담이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에 경총 관계자는 “취약 근로계층 보호가 개정안의 주요 취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추가 인건비 부담은 고용회피로 이어질 것” “1년 미만 단기 아르바이트에 종사하거나 임의·일시적 경제활동을 희망하는 청년, 여성, 고령자 등 취약 근로계층의 고용기회를 오히려 감소시킬 소지가 높으므로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